2부. 전기인 이야기 - 4

[3. 첫 현장 이야기]

by 종구라기

3-2. 현장 사무소에 살림을 차린 소장


군산시 나운동 아파트 건설 현장은 신입사원이 경험하기엔 꽤 큰 규모였습니다. 건축소장님을 중심으로 건축 감독 3명, 토목 감독 2명(차장님 포함), 기계 감독 2명, 전기 감독 2명, 그리고 사무 업무를 맡은 여직원까지… 각자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의 현장을 완성하기 위해 모두가 협력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전기 감독으로 함께 일하게 된 동료는 대학 친구였습니다. 직장에 먼저 입사한 선배이기도 했던 그는 처음부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현장 업무를 빠르게 익혔습니다.


도면을 읽는 법부터 시작해 시방서, 상세도, 설계 지침, 견적 지침까지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자재가 들어오면 검수를 하고, 업체가 시공을 하면 현장에 나가 시공을 확인하며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체크했습니다. 수급업체 소장, 현장대리인, 작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하나하나 배웠습니다.

현장은 학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론만으로는 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해야 일이 풀렸습니다.

때로는 한전, 통신공사, 소방서 등 유관기관과 협의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친구 감독이 옆에서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공종별(건축, 토목, 기계, 전기, 정보통신, 조경 등)로 나뉘어 도면을 따라 작업을 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공종별로 연관되어 있고 또 도면에 일부 오류도 있어 실제 시공하기 전에 모든 공종이 모여 도면을 검토하면서 오류를 찾아내 재시공을 최소화합니다.

슬라브 위에서 전기와 정보 통신용 배관 시공을 확인하다 보면 철근에 걸려 바지가 찢기는 건 예사였고, 옷에 레미콘이 묻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찢긴 바지들은 내 성장의 표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기업체 사장이 돌연 잠적했습니다. 본사에서 지원이 되지 않으니 작업은 중단되었고, 현장은 순식간에 정체 상태에 빠졌습니다. 친구 감독과 나는 결국 사장의 집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연락도 되지 않았고, 사장이 돌아올 때까지 그 집에서 밤늦도록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사장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엔 오직 ‘일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친구는 1공구를 맡고 있었고, 나는 2공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공구 전기업체 소장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현장 내 전기사무실에 살림집을 차려놓고 있었고, 아침이면 작업자들이 그의 아내에게 식권과 간식을 받아 갔습니다.

심각한 건 시공 단계에서 드러났습니다. 레미콘 타설 전에는 전기, 정보통신, 소방, 설비 배관이 먼저 완료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에는 아직 전기 배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미콘 트럭이 오자 그는 “레미콘을 타설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타설 직전, 친구 감독은 우리 2공구 전기업체의 도움을 받아 급히 배관 작업을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시공을 확인했습니다.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배관 없는 상태로 콘크리트 타설만큼은 막아야 했습니다.

작업이 끝난 뒤, 친구는 소장에게 따졌습니다. “왜 배관도 안 한 채 타설을 하라 했냐"라고 묻자, 그는 믿기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콘크리트를 걷어내서 배관 공사를 하면 됩니다.”

친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크게 질책했고, 이후 문제의 전기 소장은 교체되었고, 현장은 다시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때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책임감’이었습니다.

현장에는 철근도, 콘크리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현장에 왔을 때, 친구가 내게 보여준 친절과 배려가 그랬습니다. 내가 시공을 확인하며 배운 것들, 밤새 사장을 기다리며 느낀 무력감,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용기까지. 모두가 결국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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