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8

[5. 세 번째 현장 이야기]

by 종구라기

5-1. DC 4선 공통방식의 실패


정읍시 수성동 아파트 공사현장.

나는 그곳에서 잊지 못할 경험 하였습니다.

공사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공사를 진행하다가 건설업체가 부도가 났으며, 보증업체를 선임하여 공사를 재개하였으나 그 업체마저도 부도가 났습니다. 결국은 (내가 알기로) 발주자가 처음으로 직접 공사를 맡아 직영처리를 하여 공사를 완료하고 입주를 시켰습니다.

부도로 인해 공사를 타절(打切) 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폭력과 협박 등이 있었습니다. 건축 토목 기계가 한 건설업체로 계약되어 있어서, 직영 처리하는 동안 해당 공종 감독들이 직접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와서 인부들에게 서명을 받고 돈을 지급하였습니다.


내가 담당하는 정보통신공사도 인터폰 공사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인터폰 선로가 각 가정과 경비실이 직접 연결되는 1:1 방식이었으나, 우리 현장에서 시범사업으로 4선 직류(DC) 공통방식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경비실에 정류기를 설치하여 정류기에서 공급하는 DC 전원선 2가닥과 통신선 2가닥, 총 4선으로 각 가정과 경비실을 공통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원가절감과 시공성 향상의 장점이 있어, 기술이 안정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 현장에 시범 적용하였습니다.


전기는 거리가 멀수록 전압강하가 생기게 되는데 DC 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대에서 인터폰을 사용하면 전압강하는 더 떨어지게 됩니다. 이론상 계산된 정류기 용량을 각 경비실에 설치하였고 시 운전을 할 때는 이상이 없었으나 얼마 지나면 인터폰 전체가 먹통이 됩니다. 공사가 준공되어 입주가 코앞인데 인터폰은 계속 다운되어 책임자인 나는 애가 탔습니다. 인터폰 제조 회사에 계속 다운되는 상태를 알렸고, 인터폰 개발자인 공학박사들이 현장에 왔으며, 수급업체 직원들과 함께 며칠을 밤낮없이 씨름하였습니다.

결국 원인을 찾았는데 전압 강하 때문이었습니다.

전압강하가 심하여 몇 세대만 인터폰을 사용하면 다운되었기에 중간중간에 전원을 보강하였습니다. 정류기를 각 동 지하에 따로 설치해 봤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각 세대 인터폰 설치용 박스 안에 작은 크기의 SMPS(전원공급장치)를 넣어 전압강하를 해결하자 안정되었고, 무사히 입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4선 직류 공통방식은 없어졌고 인터폰 전원은 각 세대 콘센트에서 AC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며칠간 잠도 자지 못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여러 공부와 경험을 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공사용 자재는 사급자재와 지급자재로 나눕니다.

사급자재는 수급업체가 구매하여 사용하는 자재이며, 지급자재는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발주처에서 지급하는 자재입니다.

지급자재 지정은 중요한 자재이거나 중소기업보호 육성 등 국가 시책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급자재 중에 수배전반이 있습니다. 이는 한전으로부터 22,900V의 특별고압을 받아 380/220V로 변환하고 안전하게 각 세대와 설비에 공급하는 중요한 자재입니다. 그래서 기술력이 뛰어나고 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를 선정하고 설치합니다.

정읍 수성 현장은 건설업체 연쇄 부도 등으로 공사가 늦어져 준공일이 코앞이라 수배전반 설치 및 시운전을 새벽까지 하였고, 감독으로 끝까지 현장에 같이 남아 검수를 하였습니다.

마침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여 전주에서 산후조리 중이었기에,

나는 수배전반 업체 담당자와 함께 집으로 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 식사를 한 뒤 다시 출근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잠 못 이루던 그 며칠 밤,

저는 고장 난 인터폰보다 제 마음이 더 먹통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또 감독으로서 책임감과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 고생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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