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주 생활 이야기]
6-1. 사직서를 회수하다
1996년 6월,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한 지 6년 만에 나는 제주지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고향에서의 안온한 시간, 익숙한 현장과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 뒤엔
섬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낯섦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왠지 ‘유배지’ 같은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며칠 먼저 제주지사로 부임하신 한 건축 소장님도
발령을 통보받자마자 사직서를 인사처에 제출하셨다고 합니다.
경기지사에서 어렵게 승진하신 직후였고,
승진을 위해 모 부장님과 동료들이 많은 양보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은 부장님은 화를 참지 못하시고 '제주도에서 1주일 근무하고 사표 내라'라며 인사처에 달려가 직접 사직서를 회수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요.
소장님은 막상 제주에 내려와 일주일 근무해 보시곤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하셨습니다.
넉넉한 자연, 조용한 근무 분위기, 무리하지 않는 일정과 사람들.
도시의 분주함에서 벗어난 삶은 그에게도 만족을 주었습니다.
그는 제주에서 만족스럽게 2년을 근무했고,
훗날 제주를 찾은 부장님께 차량에 과일과 음료를 가득 실어 빌려드리는 정성으로 그 은혜를 갚았다고 합니다.
나는 결혼 후 전세로 살던 집에 후임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혼자 먼저 제주로 건너와 사택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전셋집이 나간 후에 제주로 왔습니다.
제주지사는 막 신설된 조직이었고, 나는 기술부 내근 업무에 배치되었습니다.
현장 지원, 하자 보수, 사업승인 업무, 도청, 한전, 통신공사, 소방서와의 유관기관 협의까지 가릴 것 없이 여러 업무를 맡았습니다.
일은 많았지만, 책임감으로 즐겁게 일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도 즐겁게 하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 참석하였고, 사모님이 교회 봉고차를 운전하시며 성도들을 태우시는 모습을 보고 내가 직접 자청하여 새벽 차량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훗날 은퇴 후, 차량 봉사에 필요할 것 같아 운전면허 1종 대형도 취득하였습니다.
또, 교회학교 유초등부 교사를 맡아, 매일 기도하고, 매주 전화하고, 매월 편지를 썼으며, 공과 공부도 열심히 준비하여 아이들의 영적 양식을 공급했습니다.
제주는 처음에는 두려웠던 땅이었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낯선 섬.
하지만 제주도는 내게 새로운 시선과 여유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강요되지 않은 인간관계, 서두르지 않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바람 냄새.
“인생에서 가끔은,
억지로 밀려난 자리에서 진짜 내 자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나는 제주에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