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다양성
공연계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객석의 열기만큼 논쟁도 끓어오른다. VIP석이 20만 원을 훌쩍 넘는 지금, 관객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가격이 정말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무대 위 배우의 이름값 때문일까. 현실은 씁쓸하다. 명망 있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희곡조차 티켓 파워를 가진 스타 없이는 객석을 반도 채우기 어렵다. 이제 작품은 무대를 살아 있게 하는 주체가 아니라 스타를 담는 화려한 액자처럼 느껴진다.
관객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값비싼 티켓을 지불하며 실패하지 않을 경험을 원한다. 그런데 그 보장책은 작품성보다는 이미 검증된 배우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합리적이라 믿는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산업 전체를 잠식하는 악순환이 된다. 스타 배우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제작사는 이를 회수하기 위해 더욱 스타에게 의존하며 작품 기획조차 배우의 스케줄과 이름값에 맞춰진다. 그렇게 희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예술성은 점점 뒤로 밀린다.
스타 중심 구조가 낳은 폐해는 다양성을 잠식한다. 자본과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신인 배우는 무대 경험조차 쌓기 어렵다. 조연이나 앙상블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신인과 달리 정점에 선 스타는 매년 여러 작품을 오가며 독점적 위치를 공고히 한다. 관객은 늘 비슷한 얼굴과 연기만을 소비하고 특정 배우가 빠지면 공연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숲 전체의 균형을 흔드는 듯한 연약하지만 확실한 질서다.
20만 원짜리 티켓의 가치는 과연 작품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작품이 아니라 스타의 희소성에 대한 대가다. 이 현상은 공연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각 예술에서는 유명 작가의 이름값이 작품을 압도하고 대중문화에서는 톱 연예인에게 모든 기회가 집중된다. 작품이 배우를 그림이 작가를 음악이 가수를 능가하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진정한 혁신과 깊이가 자리 잡기 어렵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일시적 흥행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배우를 성장시키고 배우가 작품을 완성하는 선순환 구조. 그 속에서 무대는 비로소 숨을 쉬고 불빛은 배우 개인의 화려함을 넘어 작품의 숨결을 드러낼 때 가장 찬란히 빛난다. 스타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무대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