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줄을 매달고 수술실로 향하는 '성자'는 없다

필수의료 이야기

by 이지애 마리아

조무사 실습 첫날, 내가 본 것은 '의술'이 아닌 '사투'였다.


조무사 실습 첫날, 내가 마주한 외과 부서 병동의 풍경은 드라마 속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수액 폴대를 끌고 다니는 집도의, 그리고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그의 혈관을 잡고 상태를 살피는 동료 간호사들.


그는 환자가 아니었다.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였다.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수액을 맞으며 버티다, 호출 벨이 울리면 다시 마스크를 고쳐 쓰고 수술실로 향하는 뒷모습. 그것은 숭고한 사명감이 아니라, 시스템이 강요한 가혹한 십자가였다.




치료받지 못하는 치료자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이, 정작 자신이 아플 때는 제대로 된 진료 절차조차 밟지 못한다. 동료

의 등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이고, 스스로 처방한 약으로 통증을 누른다. 환자에게는 "가공식품을 끊고 충분히 쉬라"고 당부하면서, 본인은 말라비틀어진 라면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며 36시간을 버틴다.


이것에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민낯이다. 의료진 개개인의 영혼을 갈아 넣어 유지되는 이 기형적인 구조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실습 첫날부터 두려움이 앞섰다.




'2,000'이라는 숫자가 가린 현장의 비명


그러던 중 들려온 '의대 증원 2,000명 증원'이라는 기습적인 뉴스 보도는 나를 경악케 했다. 현장에서 수액을 맞으며 버티는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10년 뒤에나 나올 '숫자'가 이나라, "지금 당장 수술실에서 내려와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환경 시스템'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숫자에만 매몰된 정책은 독이다. 외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의사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수액을 맞아가며 라면 부스러기를 먹어야 하는 이 '무거운 십자가'를 아무도 대신 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껍데기뿐인 정책을 멈춰라


나는 조무사 실습생으로서 '그들의 굽은 어깨를 보았다. 그 어깨 위에는 환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국가 정책의 무게까지 얹혀 있었다.


정부는 숫자로 국민을 현혹하기 전에, 현장의 의사가 왜 스스로 환자가 되어 수액을 맞아야 하는 지부터 답해야 한다. 진심 어린 존중과 현실적인 수가, 그리고 인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 없는 증원은 결국 또 다른 희생양을 양산할 뿐이다. 더 이상 의료진의 사명감을 볼모로 잡는 '기만'을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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