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된 청춘, 그 시절 한문 선생님께

학창 시절의 추억

by 이지애 마리아

프롤로그 4월 1일의 발칙한 기억


닭머리와 선지, 그리고 교탁 위의 비명


인생은 때로 만우절 농담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중학교 3학년, 우리는 세상천지 무서울 것 없는 괴짜들이었다. 선생님을 경악하게 만들려고 재래시장에서 닭머리를 공수해 오던 그 뒤틀린 정성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가는 젊은 선생님을 보며 낄낄대던 우리들. 그 장난기 어린 교실 뒤편에는 양주병과 패싸움, 그리고 국회의원 자녀라는 서슬 퍼런 현실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느 괴짜 학생에 속하긴 했어도 성실하고 공부도 곧잘 했던 친구의 발칙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재래시장에서 닭머리와 선지를 구해와서 담임 선생님이 드나드는 교실 문에 대롱대롱 닭머리에 선지를 발라 매달아 두고 그 광경을 목격하면서 비명을 지르면서 들어오지 못하게 놀라게 했던 만우절날의 해프닝 모습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젊은 선생님의 비명소리와 교실을 가득 채웠던 우리들의 철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그런 날이다.



교실이라는 이름의 전장


양주병을 든 소녀들과 국회의원이라는 거대한 벽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그 당시 여학생만 다니던 중학교였다. 한참 질풍의 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지나간다고 하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일화가 기억나서 그 당시의 추억을 소환하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재학시절 우리 반에는 괴짜 학생이 몇 명 있었다. 그 십 대 소녀들은 패를 나눠 '파'를 결성하고 조직하여 화장실에 가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양주 술병을 남몰래 교실까지가 갖고 들어와 집단으로 술나발을 불기도 하는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든 거친 교실의 풍경이다. 그 괴짜 학생들 중에는 권력자의 자녀가 소속되어 있었다. 배경 뒤에 숨어 스승의 권위를 흔들고 일탈을 서슴없이 했던 괴짜들이었다.


깨진 유리창과 하얗게 센 머리카락


비극이 된 장난, 그리고 젊은 스승의 사투


어느 날 교실 청소 시간이었다. 그 괴짜 학생들 중 한 명은 짓궂음을 넘어,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장난으로 교실에 있는 책장을 넘어 뜨려서 책장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면서 그 책장을 청소하던 어떤 학생의 얼굴을 관통했던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재빨리 양호실과 응급실로 이송된 피해 입은 친구는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고, 특히 눈이 아프다고 해서 안과 검진도 받았는데 눈에 큰 이상이 없다는 전문의 소견을 우리들은 들을 수 있었다. 그 수습 과정에서 미혼이었던 젊은 여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기도 했었다. 스승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처음 목격한 순간이었다.


인생이라는 얄궂은 농담


턱걸이 합격생과 어느 집 '사모님'이 된 그녀


그 괴짜 학생 중 한 명은 선생님의 속을 그토록 썩여서 1학기 내내 매번 회초리를 맞곤 했었다. 그러던 그 소녀가 2학기에는 정신을 차렸는지 공부에 속도를 올리고 결국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하는 소식을 안겨주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끝내주는 신랑'을 만나 화려한 사모님으로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난 단 한 번도 지각 결석도 하지 않고 당당히 개근상을 거머쥐었었는데.... 참 성실한 살아온 나로서 느끼는 질투와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30년 만에 닿은 목소리


'끼리끼리'의 결혼식과 서른 살의 뒤늦은 전화


몇몇 학생들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나에게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고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통보만 하였다. 소외감을 느껴야 했었다. 하지만 서른 초반, 수소문 끝에 연결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선생님의 환희에 찬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던지"라는 말 한마디로 씻겨 내려간 해묵은 감정들이 생각난다.


여름 방학식날 조별로 앉게 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미리 준비물을 갖고 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별 김밥 만들기 대회를 열었다. 각자 준비해 온 김밥 식재료를 가지고 어느 조가 협동심이 강하고 단합과 결속력이 좋은지 평가하는 날이었다.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영차, 영차' 하면서 김밥을 만들고 싸서 담임 선생님 자리에 예쁘고 정갈하게 담아 제출하였던 추억이 오늘 만우절 날 아침에 새록새록 떠오른다.


선생님, 당신의 교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개교 중입니다.


이제는 정년퇴직하셨을 선생님의 연세가 되고도 남았다. 그때 그 시절 그 괴짜 학생 중 한 사람은 비록 얄미운 친구였고 사모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주부이자 작가로 살아가지만, 선생님이 심어준 '위트'와 '인내'는 내 삶의 가장 향기로운 자산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시던 아무쪼록 건강하고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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