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존을 위협하는 성분명 처방 32년 약물 사고 기록

성분명 처방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

by 이지애 마리아

1994년 고등학교 3학년, 평범한 감기약 한 알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그날 이후 32년 동안 저는 '약'이라는 공포와 사투를 벌이며 살아왔습니다. 22세의 나이에 '치료할 마취제조차 없으니 임신과 운전도 포기하라"는 가혹한 선고를 견뎌야 했고, 생살은 꿰매는 수술도 마취 없이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런 제게 지금 국가가 추진하는 '성분명 처방' 정책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닌, 거대한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저는 32년간의 처절한 약물 사고 기록을 품에 안고 대한의사협회로 향하는 등기 우편을 보냈습니다. 소수의 생명도 국민의 생명임을, 누군가에게는 이 정책이 곧 사형선고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1994년, 평범한 감기약 한 알의 배신


20260328_145538.jpg 이지애 마리아 작가의 32년 약물 알레르기 사고 기록


고3 수험생이었던 나는 시험공부에 지친 몸으로 삼킨 감기약 한 알이 독약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불과 몇 분 뒤, 기도가 부어오르며 숨이 막혔고 온몸은 불에 타는 듯한 발진으로 뒤덮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약'이라는 공포와 처음 마주한 19살의 기억입니다."


22세, 마취 없이 견뎌낸 수술의 기억


"의사는 내게 사형선고 같은 말을 던졌습니다. '쓸 수 있는 약이 없으니 임신과 출산, 운전까지 인생의 평범한 행복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취제조차 쓸 수 없어 생살을 가르고 꿰매는 고통을 맨 정신으로 견뎌야 했던 수술대 위에서, 저는 국가가 말하는 '평균적인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성분병 처방이 가져올 '도박'같은 일상


"2015년 어느 제약회사의 세파클러캡슐 항생제 쇼크로 전신 두드러기와 극심한 피부 가려움증 그리고 불에 데이는 듯한 느낌을 5일 이상 겪으며 사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제게는 단골 의사가 고심 끝에 처방해 준 '그 제약사의 그 약'만이 유일한 생명줄입니다. 이름과 성분이 같다고 해서 제조 과정의 미세한 첨가물까지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성분명 처방이라는 이름 아래 무작위로 건네질 '모르는 약'은 제게 치료제가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평범했던 시작, 겨우 감기몸살이었을 뿐인데...


"2014년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지독한 감기몸살로 찾아간 어느 병원에서 저는 평소처럼 제 알레르기 이력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건네받은 처방전 한 장이 제 생사를 가를 도박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속도


"약을 삼킨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온몸의 피부가 뒤집히고 기도가 조여왔습니다. 20년 전 고3시절의 그 공포가 다시 저를 덮쳤습니다. 응급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저는 제가 부모님 곁을 영영 떠나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왜 성분명 처방이 위험한가


"믿고 찾았던 의료기관에서 그날의 사고는 제게 명확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성분이 같다고 해서 모든 약이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제약사마다 다른 공정, 미세한 첨가물의 차이가 저 같은 환자에게는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듭니다. 국가가 지정해 주는 '성분명'이라는 이름의 무작위 복권에 제 목숨을 걸 수는 없습니다."


"이런 끔찍한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저는 결국 오늘 대한의사협회에 서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친구였던 약의 배신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던 제게 10년 넘게 평온을 주었던 약이 있었습니다. 늘 먹던 그 성분, 늘 가던 동네 의원이었기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을 삼킨 지 30분 뒤, 거울 속의 제 모습은 괴물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눈, 기도를 죄어오는 공포가 다시 저를 덮쳤습니다."


전문가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저를 오랫동안 보아온 의사 선생님도 아연실색했습니다. '10년 넘게 아무 문제없던 약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함께 당황하셨죠. 성분은 같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제 몸이 거부한 것은 제약사가 바꾼 미세한 첨가물이었을까요, 아니면 공정의 변화였을까요? 그 누구도 답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의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 같은 환자를 마주해야 하는 의사의 진료실 책상은 얼마나 무거울까요. 펜 끝 하나에 제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분들이 느끼실 중압감과 책임감을 생각하면, 환자인 제 마음도 함께 무거워집니다.

성분명 처방이라는 이름 아래 의사의 처방권이 제한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행정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환자의 체질을 가장 잘 아는 의사가 마지막 보루로 지켜온 '안전한 약'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의사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약을 환자가 믿고 삼킬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생명을 온전히 이해하고 책임지려 고뇌하는 의사의 그 무거운 중압감을 신뢰합니다."


성분명이라는 이름의 '러시안룰렛'


"10년을 먹은 약도 이토록 위험할 수 있는데, 국가가 지정해 주는 무작위의 '성분명 약'을 어떻게 믿고 삼킬 수 있겠습니까? 저 같은 환자에게 성분명 처방은 매일 아침 목숨을 걸고 돌리는 러시안룰렛과 같습니다. 효율성이라는 숫자에 가려진 소수 국민의 생명권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성분이 같으면 같은 약입니까?


이런 끔찍한 불확실성을 안고 살기에, 저는 오늘 대한의사협회에 제 생존의 기록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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