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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ug 29. 2021

“자산어보”를 보고 떠올리다.


    2011년 초여름, 몹시 아팠다. 몇 달을 누워있다시피 했다. 실패와 궤멸에 동반하여 찾아온 병이었기에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었다. 몸무게는 15킬로 가량 빠졌고 살덩이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잠겨 들었다. 살아야한다는 생각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머리맡으로 햇살이 비치면 아침인가 했다. 아내와 딸애가 직장과 학교를 가고 홀로 남은 집. 졸며 깨며 하다보면 어느 결에 저녁 어스름이 불도 켜지 않은 방을 채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초겨울이 되었다. 조금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운동도 할 겸 느릿느릿 다녔다. “Queen, Rock Montreal"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이수역의 극장 구석자리에 앉아 프레디 머큐리를 들으며 울었다. 근 반년 만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에, 그냥, 들러보았다. 한창훈 작가가 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주저 없이 사들고 읽었다. 걸걸한 남도 사투리에 어우러진 갯것의 이야기가 생생하고 조밀했다. 남루하지만 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뭔가 기운 비슷한 것이 몸속을 돌았다. 마치 겨우내 뻣뻣하던 나뭇가지가 봄을 맞아 물기가 돌고 보드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현산어보를 찾아서(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 청어람미디어 출간)”를 빌렸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가 눈에 박히며 2004년 봄에 푹 빠져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총 다섯 권 중 두 권을 우선 빌려 가방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급했다. 내가 한창 건강하고 활기차던 2000년대 초반이 눈앞에 그려졌고, 목차를 펼쳤을 때, 이 책을 읽을 당시 느꼈던 감탄과 경이와 존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책은, 읽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근 한 달이 다되어 마지막 5권을 덮을 수 있었다. 보잘 것 없이 초라한 시기에 무엇인가 뜻있는 한 가지를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을 품은 충남 태안군 몽대 포구의 작은아버님 댁 앞바다가 그리워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거의 매년 여름방학이면 작은아버님 댁에 다니러 가서 며칠씩 있다가 왔다. 할아버지 제사를 겸해서 잡은 일정이었는데 제사는 어른들의 일이고 나는 작은집 바로 앞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보는 것이 좋았다. 20여척의 고깃배로 조직된 어촌계가 있었고 수협공판장이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물질을 나섰던 배들이 들어와서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그날 잡은 물고기들을 담아 공판장에 부렸다. 꽃게, 아나고, 주꾸미, 우럭, 도다리 등이 쉴 새 없이 퍼덕거렸다. 어부들의 어깨와 팔뚝의 굵은 근육은 구리색으로 번들거렸고 리어카로 바구니를 나르는 아낙들의 목소리는 분주하고 즐거웠다.

    작은아버님은 훌륭한 어부이자 성실한 농부였고 솜씨 좋은 배 짓는 목수였다. 가끔씩 작은아버님을 따라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도왔다.(도와드린 것이 아니라 걸리적거리기만 했을 것이다. 서울 사는 조카에게 실감나는 뱃놀이를 배려해 주신 것이리라.) 어느 해인가. 사촌 형의 이름으로 명명한 손수 지은 배에 형과 나를 태우시고 멀리 나갔다. 짙푸른 바다는 파도가 없었으나 긴 여울을 타고 작은 배는 울렁거렸다. 이물에 걸터앉아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조그만 물고기 떼가 배를 따라 헤엄을 치고, 꽤 멀리서는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 위로 물결이 들끓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커다란 갈매기들이 쏜살같이 그 위로 내리꽂았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바다를 가르자 우리 부표가 나타났다. 작은아버님은 배를 천천히 전진시키시며 형과 나에게 통발을 걷어 올리라고 하셨다. 배의 속도와 통발을 걷는 속도가 잘 맞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통발을 놓치거나 밧줄에 손이 걸리거나 심한 경우 바다에 빠질 수도 있었다. 조심조심, 신기함과 야릇한 두려움이 섞여 들뜬 상태로 통발을 걷었다. 빈 통발들이 몇 개 이어지다가 마침내 하나가 묵직하게 올라왔다. 푸드덕 푸드덕! 통발 안의 녀석이 어찌나 힘차게 요동치는지 온몸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통발주둥이를 묶은 끈을 풀어 어창에 쏟으니 아이 팔뚝만한 아나고 두 마리가 정신없이 어창을 누볐다. 바다였다. 이것이 바다의 힘이고 느낌이었다. 그날의 손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밤이 되면 방파제에 나가 앉았다. 오로지 달빛만이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위에서 찬란했고, 길게 뻗은 방파제 위에 떨어져 하얗게 부서졌다. 만조의 바다는 잔물결만이 찰랑거리는데 그 물결의 정수리에 은색 달빛이 내려앉아 가늘고 긴 실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서해 밤바다를 몇 날이고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시인이 되거나 철학자가 될 것이었다.

    오래전 작은아버님께서 작고하시고 고기잡이는 끝이 났다. 벌초하러 시골에 가면 잠깐 들러 인사만 하고 오는 작은집. 어로작업보다는 낚싯배로 주력하는 어부들.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북적이고 마을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마을 앞으로 펼쳐진 잔잔한 바다는 예전과 같다. 나의 어린 날의 기억이 그 속에 소금처럼 녹아있고 잘 염장된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을 더할 것이리라.     

    “자산어보”를 보았다. 이준익 감독은 좋아하는 분이니... 설경구 배우는 한참 만에 내가 좋아하는 그의 연기를 한 것 같다. 변요환 배우는 음... 잘 했다. 이정은 배우, 굿, 명계남 배우와 김의성 배우는 딱 그 당시 탐관오리의 ‘수학의 정석’이다.

    영화 줄거리를 말해서 무엇 하랴. 네이버, 유튜브 치면 다 나온다.

    다만 내게 중요한 것은 바다를 떠올려 주었다는 점이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변산”에서 -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썩 좋지 않았다 - 나는 내 젊은 날의 치기를 떠올릴 수 있었고, “자산어보”에서 내 어린 날의 주홍빛 노을을 추억했다. 흑백으로 찍은 것은 신의 한 수. 언젠가 감독이 “내게는 ‘자산어보’가 있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엄청난 축복일 것이다, 스스로 일군.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읽을 때 ‘창대가 말하기를’ 이라는 대목이 울림이 있었다. 흑산에서 만난 ‘상놈’ 어부인 창대와 어울리고 배우는데 거리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옥고에 그의 이름과 도움을 기꺼이 올린 정약전. 책에서는 그 울림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공감하게 되었다. 정약전 선생, 캡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이 되는 존재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의 유산에 작은 발자국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종속이거나 갑을이 아닌, 지적인 대화와 경험을 끝까지 배워 나가는 벗이 있을까. 벗이 될 수 있을까. 

“자산어보”의 감상평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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