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1년 임기의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이른바 '29의 법칙'이 작용했을까. 2025년은 무척 힘겨웠다.
12·3 사태의 충격과 걱정은 일 년 내내 나를 압박했다. 스스로 깨어 있으려 애쓰는 시민이고자 여겼건만, 대학생 따 이래 처음으로, 도도한 외침의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보도와 영상 속의 시민들께 죄송했다.
1월엔 회장 취임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구상하고 입안하고 실무를 챙겼다.
새로 도모했던 일은 아쉽게 접었고, 몇몇 거래처가 떨어져 나갔다. 경제적 타격이 일었다.
2월부터 가을까지 네 개의 교육사업을 연이어 주관했다. 전국연합회 사업에도 실무로 관여해야만 했다.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9월에 발간하기로 한 “50년사” 원고 쓰기는 진도가 더뎠다. 낮에는 쓸 수 없었고, 밤과 새벽은 야속하게 짧았다. 발간 관련 사무와 감사예배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관련 업무의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일은 내키지 않지만 피할 수 없었고, 늘 버거웠다. 좋은 기운보다 먹구름같은 무거움이 앞섰다. 에너지가 부족했다.
회장으로서 하고자 했던 사업계획 대비 실행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했기에 더 훌륭했어야 했다.
시간은 어느새, 어떻게 흘러갔을까.
오십 년 친구와 절연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겨울에 들어서며 나는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잘못을 범했다. 번 아웃 상태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불만이었으나, 여전히 칭찬받을 만하게 직을 수행했다. 천여 쪽에 달하는 “50년사” 책을 잘 써서 펴냈고 감사의 인사에 보람도 차올랐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 평점이다.
정기총회에서 회장 이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외롭고 아득했다. 때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실은 아무도 찾고 싶지 않았다.
겨울 이후 줄곧 무섭고 괴랄한 꿈에 시달렸다. 주마등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세월 동안 아쉽고, 죄송하고, 부끄럽고, 상처를 주고 받았던 많은 기억이 몇 배, 몇십 배로 증폭되고 신랄해져서 섬광과 폭음을 터뜨리며 밤마다 호러 영화처럼 상영되었다. 잠자리가 무서웠다. 반성과 기도는 요식행위였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구원 또는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지난 몇 년간, 꽤 오랫동안 나는 고무되었다. 나 자신에게, 보잘것없는 나의 성취와 주위의 상찬에 몸을 기대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늘 불안 혹은 의구심이 그림자로 있었다. 이것이 나의 실력인가. 올 것이 왔다. 나의 과장과 교만에, 흐릿한 실체에 응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Sweet Caroline의 가사를 떠올렸다.
Good times never seemed so good, I've been inclined to believe they never would.
좋은 일은 항상 좋을 수 없고 나쁜 상황이 항상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 제행무상, 물극필반, 회자정리 거자필반, 엘리엇의 ‘황무지’,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 모든 것이 이런 진리의 다른 표현일 것이리라.
나는 새해맞이 결심 따위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올해는 한다.
나 자신을 똑바로 보자. 결코 관대하지 말자. 바닥에서 벌거벗은 나를 바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회개와 용서와 또 다른 길이 열리리라. 그곳에서 앙상하게 시작할 수 있기를. 내가 주위 분들께 상처의 원인균이 되지 않기를. 교언영색으로 포장하지 않고 감정에 솔직해지기를.
언젠가 너무 까마득히 멀지 않은 날, 북극의 나라로 가서 오로라를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껏 한 번도 오로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상으로 보는 오로라는 왠지 오로라가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북극의 나라에서 꼭 실제의 오로라를 보리라. 그 신비와 찬란의 빛 아래에서 그를 빚어낸 절대자를 찬미하고, 나를 빚으신 뜻을 살피리라. 나를 오롯이, 온전히 바라보는 데 성공하고 나서.
https://youtu.be/sF6wGi6oh84?si=Ckul1eI8O7eeGI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