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치혜 Sep 15. 2021

사(寫)진(眞)하고 묘사하다.

     많지 않은 블로그 이웃 분 중에 올리시는 글과 사진을 내가 참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분이 계시다.(이 이야기는 참 바보 같다. 게시물들을 좋아하니까 이웃하는 건데 ^^) 왜냐고 묻는다면 두물머리의 예전 그날 풍경과 정서가 떠올라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오늘은.


    오늘 두 장의 사진과 글을 올리셨는데 한 장은 그 이웃 분(“온이온이 할머니”, 댓글을 달지 못하게 되어있어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했음을 사과드립니다.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의 블로그 이웃(“후수”님이시란다)께서 찍으신 낡은 문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온이온이 할머니께서 그 사진을 소재로 그리신 그림의 사진이다. 왠지 마음이 찡했다.

후수 님의 사진
온이온이 할머니 님의 그림 사진

   온이온이 할머니 님의 '기억'을 주제 삼으신 글이 깊게 공감되었고, 사진도 각인되듯 선명했다.


    어린 시절 곳곳 골목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쪽문. 필경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멀었을, 주거의 옹색한 방편으로서의 문. 온이온이 할머니 님의 글처럼 여러 기억을 소환하는 문. 

    문은 닫힘과 열림이고 곧 단절과 소통이다.

    사진 속의 문은 단절과 닫힘, 괴로움으로 보여 강렬했다. 그림 속의 문은 저녁이 되면 곧 열릴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사진 속의 문보다는 창의 색이 따뜻하고.

   사진의 문은 단단히, 굳게 닫혔는데 그림의 문에는 디귿자 손잡이에 우편물(처럼 보이는  무엇)이 끼워져 있다. 그것으로 미루어 저 문은 힘든, 또는 희망이 담보된 곤한 밥벌이를 끝낸 이 집의 주인이 안식처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다.

   문앞에 그려 놓여진 꽃은 그리신 분께서 보내시는 사랑과 희망인 듯.




    사진과 그림을 본 오후 내내 쭉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사진을 찍으신 분과 그림을 그려주신 두 분 모두가. 십 수년 전의 두물머리 햇빛과 찰랑거리는 예쁜 물소리가 떠올랐고, 잊고있었던 세 번째 소원도 흠칫 되살아 났다. 어차피 꿈일테지만, 닫힌 문인지 열릴 문인지는 보기에 다름이니 애니웨이 오케이.

  색연필로라도, 펜으로라도 차분하게 그림  한 장 그려보고 싶다.

  아니다. 유화물감 듬뿍 찍어 거친 붓길로 쓱싹쓱싹 해보고 싶은 밤이다.


  오래 전, 한 십 오륙년, 어지러운 마음에 무작정 차를 몬 곳이 양수리의 두물머리였다. 목요일. 경치 좋은 강가가 호젓하여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무그늘 아래 앉아 물끄러미 살랑대는 물결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백곰부인 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조금 있으니 버스 한 대가 사람들을 풀었다.  삼십 여명의 제법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각자 화구를 챙겨 나무 주위와 물가 여기저기로 흩어져 앉았다. 곧 일대는 알록달록하게 채워져 나가는 크고 작은 캔버스 밭이 되었다. 깔고 앉은 의자 등받이에는 “목요화가회”라고 인쇄되어 있었는데 몹시 보기 좋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분들의 여유로움과 몰입과 재능과, 그것들이 두 줄기의 강물이 만나 펼쳐놓은 경관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풍경’이. 


    강물은 찰랑이고, 오후의 햇살은 따갑게 반짝이고, 강물과 햇빛과 나무를 바라보는 눈길은 모자챙 아래에서 부드럽게 날카로웠고, 삭~삭~하는 붓 소리와 물감의 냄새는 도발적이었다. 나의, 영원히 꿈으로만 남을 것이 자명한, 세 번째 소원이 배태된 순간이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내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 독립이요

.

.

.

.

.

.

라거나 그에 필적할만한 심대하고 거룩한 내용은 절대 말할 수 없다. 주지하는 대로 나는 그저 제 살길 찾기에 쩔쩔매는 필부에 불과한 때문이다. 그나마 어느 때인가 부터는 꿈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버겁게 되고 말았다.

  이런 나도 한때 낭만적인 소원을 품은 바 있으니 그 첫째는 ‘음악실’이 있는 막걸리 집을 차려 그곳을 터전삼아 자원방래(自遠方來)하는 고우(故友), 주우(酒友), 문우(文友), 학우(學友), 농우(籠友,농구친구), 남우(男友), 여우(女友), 노우(老友), 소우(少友)들과 놀이터에서마냥 소요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내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그림을 그리며(정확히는 ‘유화’) 한갓지게 사는 것이었으되, 아무것도 이룬 바가 없으니 통탄할 뿐이다.


    첫째 꿈은 이무기가 용 되는 것 보다 어려울 듯하다. 다른 모든 여건이 마련된다 해도 ‘놀이터에서마냥 소요’하며 주향(酒香)에 빠지는 나를 용납할 이가 없을 것이다. 엄마와 예수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두 번째 꿈은 조금 더 아주 많이 노력하면 한 권쯤은 가능할 법도 싶다. 비매용으로 낸 100쪽이 채 못 되는 한 권(“흑석동시대”)이 있고, 편집저작한 두 권(“나들이, 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의 경험이 있으니... 물론 이 또한 장담은 못 한다.


    세 번째 꿈은 단언컨대 끝까지 꿈으로, 동경으로 남을 것이다. 분하고 안타깝지만 분명 그러할 것이다. 사실은 가장 폼이 나고, 수없이 여러 번 머릿속에 떠올려 왔던 꿈이지만 이제껏 살아온 꼴과 성정을 보건대 지긋이 화폭을 채워나가는 정중동이란 내게 과분한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각종 교내외 미술대회를 입선이상으로 섭렵한 바 있고(큭큭, 소싯적에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이후로도 여러 장면에서 제법 끄적끄적 거리거나 소위 재능기부(씩이나!!!)도 해보았다.  ‘어쩌면 내게 감추어진 엄청난 화가로서의 재능이 미처 발현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망상해수욕장 같은 생각에 홀로 즐거워하기도 여러번! 


    아닌 것은 아닌 법이다. 정말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낭중지추(囊中之錐)로 삐져나왔을 텐데 내 주머니는 여전히 튼튼한 것을 보면.

(2020. 7.)

작가의 이전글 능소화 필 무렵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