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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Sep 16. 2021

9월 2일. 고속도로 로망스.

    일상의 이야기.

    지난 토요일 오전의 찬양대회를 마치고 오늘은 대회 뒷마무리를 하기 위하여 지방으로 가고 있다. 평일의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막힘없이 달려가는 길. 그런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오늘과 내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바짝' 좀 하고, 여유롭자.


    결정장애자. 혹은 삶의 태도가 빠르거나 현명하지 못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서겠지만 내려가는 이 시점까지도 지방에서 하루 자고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오늘 밤에 올라왔다가 내일 다시 내려갈 것인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지방에서 하루 자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들르며 마무리를 하는 것이지만 서울에서의 일도 있고,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계속 망설이는 것이다. 차츰차츰 좀 더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리겠지만 저녁에 전주쯤에서 하루 자고 올라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시대를 맞아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 하고있다. 작년에 연합회 총무를 맡게 되었다. 기존에 연합회에서 주최하여 운영해오던 여러 가지 사업들이 있다. 모임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느 것 하나 예전처럼 진행할 수 없다. 물론 처음에 사업 계획을 잡을 때는 예전에 하던 것을 좀 더 발전적으로 새롭게 하려고 하는 그런 욕심들을 갖고 있었는데. 현실은 행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비대면 시대에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좀 더 잘해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받기도 하고 내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행 계획을 세우고, 실행 계획을 바탕으로 예측을 하고 또 모의 실험을 한다. 

    모의 실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점과 미처 짚지 못했던 그 생경한 부분들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제껏 어느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그런 일들을 처음 맡아 지나간다라는 사실에 나름의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있고 솔직히 자부심이랄까 혹은 우쭐거림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계획이 내가 구상했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내가 세부적인 계획을 짰기 때문이다. 나대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에는 코로나 시대의 행사란 내게는 잘 맞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온전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한다라는 점 때문에 부담도 많이 느꼈다. 


    일들을 나누어서 진행을 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문제는, 그냥 좀 건방진 판단이지만, 우리 조직 내에서 특정한 부분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상황이나 시간이나 능력이나 몰입의 여유가 되시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판단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떠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내 성향 상 내가 꽂힌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즐겁고 바쁘게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과가 나 혼자만의 만족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진행이 돼 왔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는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남들의 시점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궁금증 혹은 조바심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       앞장서서 일한다는 이유로 우리 회원들은 내가 듣기 좋은 쪽으로 얘기를 해주고 칭찬을 해 주시지만 사실은 늘상 칭찬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올 4월에 있었던 한 행사에서는 여러 가지 불만이랄까 혹은 보완 사항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기에 상당히 내상을 입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어쨌든 일은 진행되어야 하고 또 진행되었다.  

   

    이번 찬양대회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유튜브를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진행을 하였다. 감히 이야기할 수 있기는, 내가 농담으로 했던 얘기들이긴 하지만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이래 최초로 일어난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는 ‘뭘 어떻게 할까’하며 엄두도 못 내고 있었던 분들이 거의 대부분인 와중에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고 새로운 길을 갖추어 그 일을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또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많은 분들이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고 또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니 잘 모를 수 밖에. 유홍준 교수가 얘기했듯이 아는 만큼 보인다. 

    이번 행사는 열여섯 개 팀이 나와서 소규모로 진행이 되었다. 기술적인 문제로 초반에 방송사고도 약간 있었지만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잘 넘어갔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분들과 환경적인 부분들에 대하여 보다 냉정하고 철저하지 않게, 조금 너그럽게 판단하고 허용을 했던 것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에게 좀 더 반성을 강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상황들을 좀 더 촘촘하고 그리고 좀 더 알기 쉽게 풀어주고 다 끌어들일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데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안 되고 아쉬운 부분인데 현실이다.     


    무엇을 하든지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편이다.

    마감이 많이 남아 있으면 긴장이 되지 않고 아이디어나 실행 계획 등이 솟아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그냥 핑계에 불과하고 사실 그냥 내가 게으르다는 얘기다. 그런데 행사가 닥쳐하고 일이 임박하면 바짝 텐션이 당겨지고, 아이디어가 조금 더 날카로워지는 느낌은 갖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즐기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정말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게으름에 대한 뻔뻔한 핑계인지는 판단을 유보한다.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고 늘 이 태도를 놓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천성이라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천성을 핑계삼는 상황이 연속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남은 시기에서는 이런 습관이 고쳐졌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빈틈이 있고 실수도 많고 애초에 계획했던 부분을 다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도 많다. 미리 더 꼼꼼하게 체크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러지 못해 놓친다.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잘 못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일일이 내가 확인하고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시간과 상황에 쫓기곤 한다. 

    이 부분은 굉장히 큰 문제이다. 많은 경우 남들이 진행해 놓은 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계량화된 것이 아니고 상당히 느낌적인 느낌에 관계된 부분이 많다. 그 이야기로 갑론을박 하는 것이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분명하다. 그런 경우 나는 정말 기분이 언짢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일을 맡기고 결과를 받은 후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넘어가야 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 상황이 싫다 보니까 내가 손을 보태거나 그냥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은 많아지고 늘 일에 치인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든다. 또 내가 좀 교만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내 무능함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멍부’형인 것이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이래서 내 바쁨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인데. 자존심이 많이 상해서 인정도 못한다. 쯧쯧.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주위의 평판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쓴다. 겉으로는 제법 쿨하고 스마트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냥 소심하고 옹졸한 중년의 사내에 불과한 것이다. 용감하게, 겁 없이 ‘내가 이렇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런 컨셉으로 했으니까 나를 믿고 그냥 가십시오’ 라는 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측은...

     

    오늘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스트레스에다 최근의 마음 상태도 그리 썩 편치 않은 것이 있어서 겸사겸사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가면서도 지금 이렇게 가는 것이 나에게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우유부단. 이런 식의 망설임이나 긴가민가 하는 답 없는 의문은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겪었던 그런 일들이므로.

    오늘은 그냥 간다. 마치 당뇨를 친구처럼 안고 가듯이.    

 

홍성의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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