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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Dec 12. 2021

제주도. 합쳐서 사백 육십 이.

    신기한 노릇인 것이 박주산채도 누구랑 어울리느냐에 따라 금준미주가 되는 법이고, 산해진미도 어떤 잔당들과 있느냐에 따라 걸인의 찬이 되는 법이다. 살면서 무수히 느끼는 진리.


    울산에서의 1박2일 출장을 하드 캐리한 후 부산에서 제주로 향했다. 전날 정석 군이 단톡방에 올린 화려한 식탁 사진을 감안할 때 이번 제주행에서도 회 만찬은 날아갔음을 능히 짐작하였다. 분명 이렇게 말할테지 . '꼬우면 어제 오지~'라고.

    제주공항에 내리니 저녁 6시 반. 목적지로 대중교통을 검색하니 2시간 남짓 소요. 택시는 40분, 3만6천원 예상. 택시승강장은 장사진. 그래.. 이렇게 힘들게 왕림해 주는데 취해 있거나 제대로 환대하지 않으면 절단 내리라.

    사위에 불빛이라고는 찾을 길 없는 시골길을 빠져나오니 달빛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길 옆에 외따로 서있는 마당 넓고 예쁜 집이 나타났다. 목적지. 강아지는 반가움에 짖는데 대문은 빗장이 걸려있고 의당 버선발로 튀어나와 2열 횡대로 도열하고 있어야 함이 마땅한 사람들의 자취는 없다. 스타일이 구겨졌지만 밥과 술이 고팠으므로 전화. "나 왔어."

    마중의 의전이라는 예의범절을 꿈에서도 몰랐을 무도한 그들을 대성일갈하려 심호흡을 했는데 어라? 처음 보는 얼굴이 앞장섰고 그 뒤로 그 무도한 무리들이 불콰해진 면을 후줄그레하게 든 채 뒤따랐다. 동방예의지국의 적통을 잇는 내가 어찌 초면의 분들이 중인환시하시는 중에 언짢은 내색을 하겠는가. 디제이, 최구, 깊은뿌리, 바른돌. 네 명. 네 번 '참을 인'자를 새겼으니 살인을 훌쩍 면했음과 같으리라.

    버선발 대신 양말쓰레빠발로 댓돌을 내려선 집주인의 가상함을 치하하고 거실로 들어섰다. 예상한대로 산해진미는 없다. 나쁜 인간들. 옐로우 테일 와인 한 잔을 '종이컵'에 자작한 후 세 분의 초면과 통성명을 하...려는데 이 냥반들. 멘탈과 말빨이 쎄다! 공격에는 닥공으로! 점잖음과 예의범절로 주석을 지도편달하려던 계획은 전면 보류하고 난타전 개시!


    재미있다. 평소의 작고 미천한 소망이 5인 이상의 회식 아니던가 말이다. 시간과 장소와 주석의 멤버와 유쾌하고 맑은 초면의 분들, 예쁘고 높은 천장의 거실이 한라산 세븐틴과 어울리니 자리는 곧 금준미주와 산해진미(인 척 하는)정갈하고 소박한 안주로 넘실거렸다. 말도 안되는 개그와 폭로와 웃음은 또 하나의 별미.


    층간소음과 이웃집의 안녕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분위기. 집주인장의 애장 노래방 마이크로 몇 곡을 선사하니 좌중은 숙연히 감동의 눈물로 뺨을 번들거렸다(는 올바른 기억과 객관적인 묘사가 아니지만 오늘은 그냥 눈감고 용인하자. 삼십여년 만에 가진 친구들과의 여행이고, 여기는 제주이므로.)

    아름다운 밤을 짧게 보내고 이틀째의 일정을 시작했다. 행선지는 가파도. 굳이 올레길 워킹을 주창하는 최구의 눈길을 살포시 즈려 뭉개고 해발고도 20.5미터의 예쁜 섬을 걸었다. 소라무침과 막걸리 일배는 참 여행자의 미덕. 제주 오일장(예상과 달리 기름을 파는 곳은 아니다 ㅡㅡ;;)을 오뎅 한 꼬치, 꽈배기로 마무리 하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해산.


보라. 웅혼한 포즈의 기상을... 혹여 자손만대에 부끄러움으로 남을까 저어하여 살짝 '기생충'처리를 하였다. 장담컨대 당신의 가족들도 결코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짧은 일정인데 여기까지 오는데 삼십 년이 넘게 걸렸다. 누구도 속마음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감개무량. 나는 더욱 감사. 그분의 은혜와 친구들의 헤아림과 베품덕분에 이 영광을 누린다. 되도 않는 소리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고, 특히 초면이신 분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결례를 범했지만, 너그러이 용서하시라. 천국이 당신들의 것이리니...

    늘 이런 말로 마무리 된다.

    "우리 언제 한 번 또 뭉치자."

    그러자.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삼십년도 훌쩍 이리 즐겁게 넘겨버렸잖은가. 가슴 속의 작은 소망과 약속이 때로, 아니 많은 경우 토니 스타크 가슴에 박혀 있는 초소형 원자로와 같은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니.

    "우리 언제 한 번 또 뭉치세~"

    연주 씨, 정란 씨, 두환 씨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많은 닭도리탕을 어이할까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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