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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Nov 03. 2022

환갑(還甲) 환장(換腸)..

 

  10월 30일 환갑이 되었다. 31일이었나?

  말도 안 되게.


  어느 날 동생에게서 함께 밥 먹자는 이야기를 듣고 손가락을 꼼직여보니 환갑이었다.  멍청하게 들리겠지만 꽤 전부터 정확한 내 나이에 대한 셈이 무뎌졌다. 쉰 지난 거야 이미 오래이니 '아~ 예순 무렵이구나' 하며 그저 지냈다.

  게다가 나는 내 생일을 챙기는 주변머리가 못 되어서 - 다른 사람의 이벤트나 여타 행사 따위는 최대한 잘 준비하려 무진 애를 쓴다. 그리고 그 이벤트의 중심에서 주인공을 빛내려는 진행병도 도지곤 한다. 그러나 내가 무언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도무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부끄럽고 어색한데 자격지심 혹은 자괴감마저 들어 가능한 한 피하려 온갖 '짓거리'를 마다않는 것이다 - 가을이면 그저 딸애가 챙겨주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나누는 것으로 족하였다. 더욱이 음력생일이니 오늘이 몇일 인지도 까먹는 게 다반사인 주제에 하물며. 홍시의 냐옹송과 딸애의 소박한 선물은 땡큐, 이때의 캔맥주 하나는 따봉인 것이다.   

   

  올해는 달랐다. 피할 수 없었다.

  동생이 가족 식사 이야기를 꺼내기에 21세기에 누가 환갑을 먹냐며, 고맙지만 그럴 일 아니라고 했는데 엄마가 바라시고 - 노인네, 이런 때 힘이 세다 - 아내가 23일로 예약을 해버렸다. 식구들 시간 조절하여 앞당긴 이벤트. 일에 치이다 뒤늦게 살펴보니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소박한 곳으로 장소를 바꾸자 얘기했다가 아내에게 타박을 받고, 드디어 열 한명이 모여서 식사자리를 가졌다. 모든 가족들 감사하다. 바쁜데 와 준 조카님들, 미안타. 어색해서 환갑상이 제사상 될 뻔했다.




   누이가 말하길, 다른 선배들도, "환갑 지나며 여기저기가 아팠어."

   미 투인가? 많이 아팠다.

   2년에 세차례 꼴로 찾아오는 허리 염좌가 마침 이 무렵 전후 도졌다. 주사 몇십 방에 물리치료, 파스와 스프레이 파스, 허리아대를 차고 병원비만 펑펑.. 이 정도면 차도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욕도 좀, 아니 조금 더, 하면서 견뎠다.

   이빨과 잇몸에 통증 만개. 주말을 꼬박 매저키즘적으로 지내다가 개벽의 월요일을 맞았다. 발치하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다.

   마음은 더 아팠다. 좌절과 참담으로 점철된 쭈그리 주말. 2년간 쏟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참담한 마음에 눈물을 비쳤다. 환갑에 개쪽팔림. 손이 많이 가는 뒤처리는 의당 내 몫이다. 문서를 쓰고, 보내고, 전화를 하다 보니 훌쩍 이삼일이 지나갔다.

   3 킬로그램이 빠지고, 진통제에 쩐 상태로 이렇게 우당탕 환갑을 보냈다.

    



  소회, 회한, 감격 따위는 없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요새의 60은 옛날 아버지들 시대의 50에 남짓하다니 티낼 깜이 못 될 일이다. 그런데 스멀스멀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 형제들이 거의 환갑을 못 잡숫고 단명하신 집안의 자식으로서 우리 형제들에게 - 사촌, 육촌 포함 - 60은 알게 모르게 상징적인 나이였구나 싶었다.


  이십 대 때 친구들과 품었던 계획들은 일단 지금까지는 수포가 되었다.


  삼 사십 대를 지나며 그렸던 그림은 이미 망쳤다. 다 내 잘못.


  그나마 뒤늦게 발견 또는 집중하는 몇몇 가지 것에 대하여 나는 너무 어설프고, 천착하기에 이미 늦었나 싶은 것이다. (예전 기준 불과 50이라며...)    

  

  그럼에도 길은 이어진다.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을 주는 잔병치레 없기를.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하며 손을 놀리는데 게을러지지 않기를. 제발 이놈의 조급하고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소갈딱지 좀 다스릴 수 있기를. 피할 길 없겠지만 그나마 최대한 천천히 꼰대화 되기를. 뇌세포는 몸뚱아리보다 천천히 쇠하기를.     


  그리고, 비로소, 진솔한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 믿기로 한 지 스무 해도 못 채운 주제에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소임을 받는다. 감투 쓰고 완장 차기를 촐랑촐랑 기뻐하는 천성이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 분명 훌륭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누를 끼치지는 않기를.     



  

  "흑석동 시대"

  "가흔(歌痕)" - 노래, 흔적이 되었네.


  신작 출간 예정인 책 제목이다. (뻔뻔하기가 그지없이 가소롭도다)

  책을 내자. 말로만 말고 쓰자. 이미 두 개의 타이틀은 잡았으니 까짓 내용 채울 일만 남았다. 가뿐한 일이다 ㅠㅠ  올해 지나면 외부에서 맡았던 모든 자리가 끝나고, 끝낼 것이다. 핑곗거리도 사라지니 그저 내용만 채우면 되는 매.우. 쉬운 일만 남는다, 흠흠.. 쓰자.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해를 넘기고 하여 내 주민번호는 63xxxx으로 시작한다. 병원에 가니 'M, 59세'라고 표시가 되었다. 실제 63년생인 일부 어린 친구(라니 감히! 흠흠^^) 녀석들과의 오랜 논쟁거리였으나 이제부터 M, 59로 살련다. M, 60이 될 때까지 한 권쯤은 나오면 좋으리.  

   

  환갑(還甲), 헛헛한 웃음만 나오니 '오메, 환장(換腸)하겄네~'   


  

사족. 80년대를 지나며 나는, 우리는, 우리가 환갑 때쯤 되면 우리나라가 엄청 선진, 문명, 이성, 정의의 나라일 것으로 꿈꾸고 기대했다. 물론 많은 점에서 그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착시였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 박근혜 씨가 비교우위로 보일 수 있다는 2022년의 코메디라니 말이다.

                                                                                  - 환갑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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