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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ug 18. 2023

 『오펜하이머』

성취의 욕망 vs 통찰의 의무 앞에 선다면?

   지난주, 오랜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제안 하나 할게. 내키면 응하길."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영화 『대부』의 명대사처럼 들려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그 친구가 ‘말론 브랜도’와 비슷하다거나 한 가지라도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내 또래의 애매한 나이가 되니 모든 제안이 솔깃하다는 것이다. 사추기마저 넘어선 외로움의 시대라서인가? 아니면 지치지 않는 호기심? 무엇이든 간에 이 나이대에 다단계나 금융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화 같이 한 번 보자."

   발그레 볼을 붉혔을 수줍은 소년의 마음이 읽히기에(^^) "콜"해주었다. 짚어보니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이후 21년 만에 함께 영화를 본다.


   『오펜하이머』

   개봉 소식을 듣고 보려고 꼽고 있던 참이었다. 부천 씨지비, 초행. 평일 저녁 시간인데 생각보다 관객이 많았다. 흥행 중이라더니 역시 그러한가. 대강 훑어본 영화평은 주로 호평이고 - 개중에 알바들의 '역작'으로 보이는 과도한 호평은 정말 언짢을 뿐이다 - 일부의 '지루하다'라거나 '광고가 과했다'라는 이야기도 보였다.

   순수한 성취의 욕망과,그 성취에서 기인할지도 모르는 반작용에 대한 통찰의 의무라는 갈림길에 선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에서 이 두 가지는 동일 시간대에 놓이지 않고 선후의 순서를 지닌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사전 공부를 하면서 -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하다니, 이 해괴망측한 세상^^ - 이 질문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2005년 간)라는 오펜하이머 평전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어느 독서 프로그램 방송에서 이 책을 다룬 내용을 듣다가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다. 안 사길 잘했다. 천 백 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일단 압도되었고, 진도는 더뎌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목차를 보며 발췌독했는데 그때 얻은 편린이 영화를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유년기를 건너뛰고 그의 케임브리지 대학 유학 생활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에 기술된 내용처럼 시간순으로 최대한 압축하여 풀어낸 것 같다. 그런데도 세 시간이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통섭형 천재인 이론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전쟁 상황에서 국가의 요구에 응하여, 또한 자신의 성취동기에 의하여, 수천 명으로 이루어진 핵무기 연구, 개발단지를 구축한다. 군부의 집중적이고 압박하는 지원을 바탕으로 원자폭탄의 개발에 성공하였으나 이론의 세계가 아닌 그것으로 인한 현실에서의 참상과 전 인류적인 위협을 깨닫고 파멸로 향하게 될 군비경쟁에 반대한다. 당시의 냉전과 매카시즘의 광풍 한 가운데로 휩쓸려 스파이로 몰리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한 천재가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역사의 총책임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물과 사건이 있겠는가. 과학 특히 물리학에는 까막눈인 나 같은 사람도 중고등학생 시절 한 번씩은 이름을 외워봤을 수십 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며 쌓여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영화의 축대를 쌓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의 흐름으로 구성되었다. 칼라 화면으로 표현되는 오펜하이머의 시점, 군비경쟁에 대한 의견 차이로 오펜하이머와 대립하는 스트로스 제독의 청문회 시점, 스파이로 몰린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시점이 교차 편집되었고, 두 청문회 장면은 흑백으로 촬영되어 이야기를 정교하게 이끈다. 이런 구성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인 '명작' 『덩케르크』를 떠올렸다. 같은 상황에 부닥친 육군, 해군, 공군 각 부대의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솜씨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 이 작품에도 흘렀다.


   중반까지 영화는 잠잠하여 때로 지루하기까지 하다. 위에 말한 대로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압축하여 쌓아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흥미와 주의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책과 기타 방식으로 사전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분명 졸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평전에 소개된 오펜하이머의 강한 개성을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 플로렌스 퓨와 킬리언 머피의 정사 장면에는,아마도,모든 관객이 깜짝했을 것이리라.


   영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내어 마침내 트리니티 실험(최초의 원폭실험) 장면에 이르면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며 호흡이 빨라짐을 느끼게 된다. 자세를 고쳐 앉고 눈을 크게 뜨고 화면에 집중하게 되었다. 성공 가능성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두근두근, 엄청난 폭발 장면.

   이 장면에서 많은 영화평과 블로거들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을 수 없다. 실사 촬영으로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준다고 인터넷에 도배했는데, 영화를 보면 적잖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과장광고라는 불만이다.

   사실은 이 장면은 폭발의 시각적 효과보다 음악과 음향이 압권이다. 둔탁하고 빠른 타격음이 점강법으로 울린다. 그에 따른 긴박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폭발. 화면은 눈이 부시게 빛과 화염으로 터지고, 귀를 찢을 것 같던 음악이 쿵쾅거리던 상영관은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오히려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 치솟는 불꽃과, 기뻐하고 놀라는 배우들의 모습이 화면을 차례로 메우다가 어느 순간에 굉음이 객석을 덮친다. 비로소 오감으로 느껴지는 충격과 위압감과 공포.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실험용 폭탄이 설치된 32킬로미터 지점에 관측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섬광 후에 폭발음이 들려오기까지 일정 시간의 정적, 그 시차를 이렇듯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다면 절대 OTT 서비스를 기다리지 마시라.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하여 기꺼이 극장으로 달려갈 가치가 충분하다.


   수십 명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내 비록 영어가 짧아 그들의 대사 처리와 호흡과 감정표현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척 보면 아는 거 아닌가^^ 특히 오펜하이머 역의 킬리언 머피와 스트로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누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로는 로다주를 응원한다. 신경질적이고 질투와 욕망이 번들거리는 노년의 정치인으로 완벽했다. 오펜하이머의 아내를 연기한 에밀리 블런트, 젊은 날의 빛남이 언제 있었냐는 듯 강한 캐릭터의 중년 여성이 되었다. 청문회에서 이를테면 검사 역인 로저 롭을 맡은 제이슨 클라크라는 배우는 내게 생소한 이인데 질문하고 윽박지르는 연기는 숨통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찬탄.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이슨 클라크
에밀리 블런트

  기록된 대로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이 있은 후 3주일 여 만에 두 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종전되었다. 알려진 바로는 당시 총 4개의 원자폭탄이 제조되었는데 나가사키 투하 이후 두 개는 실험용으로 사용되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첫 번째 원폭 "리틀 보이"는 오폭의 우려 때문에 지상에서 조립하지 않고 B29 전폭기에 실려 조립을 마쳤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었다.

   전 세계사를 바꾸고 온 인류를 공멸이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작전이 국제정치와 군부의 정략과 계산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영화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섬뜩한 일이다. 원폭 투하 이후의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상황과 변화, 의도를 영화는 청문회라는 장치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의지와 주관, 또한 그에 대한 흔들림, 믿음과 배신, 증오 같은 감정들이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일대기와 그를 둘러싼 인간군상의 면면을 생각해 보게 해준다. 역사는 과연 치밀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수한 성공에의 욕망(돈을 벌고 인기를 얻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성취"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공)과 그로 인하여 일어날지도 모를 반작용의 통찰이라는 의무가 내 앞에 나란히 선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세상일의 어느 것이든 100퍼센트 완전한 것, 100 vs zero는 없을 것이다. 효용과 성취의 족적을 위하여 일정 부분의 위험 또는 손해를 감수할 것인가, 그 반대로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성취 또는 효용을 포기할 것인가는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고민했던 내용이리라.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1940년대의 오펜하이머였다면 맨해튼 프로젝트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결론은 명쾌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상상이기로 내가 결코 그런 통섭형 천재로 태어날 일은 100퍼센트 없을 것이므로. 더욱이 양자물리학을? 에이~ 무슨 말씀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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