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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해 뭐해. 동해에 핑계 댔다.
by
이치혜
Aug 15. 2023
8월 15일 공휴일.
새벽에 집을 나서, 방송 송출을 하고, 아침 일곱시 십분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고 동해로 와서 저녁 일곱시 오십분의 우등고속을 타고 귀경한다.
일할 겸, 쓸 겸, 쉴 겸.
어느 하나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냥 집에서 빈둥거릴 걸.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동해 가는 버스 맞나요? 묵호역 가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른 한 명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물회 하나, 맥주 하나, 소주 하나요. 카스 프레쉬요. 얼만가요?
오늘 하루 종일 내가 한 말의 전부. 상투적인 몇 마디를 더 붙이고 나면 나의 오늘은 끝이 나리라.
말이 뭐가 중요해. 하루 종일 말 거는 이 없으니 이리도 편하다. 머리속 복잡한 거야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몇년 만에 묵호에 왔다. 벽화마을 군데군데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분이 좀 묘하다. 이미 공사가 끝난 집을 보니 벽화마을 분위기에 맞춘 듯 하다. 공사중인 집도 그런듯 하고. 막연하게 재산권과 공동체로서의 책임 같은 것들을 뒤죽박죽으로 생각해 본다.
땀 흘리며 오르던 벽화길에 두둥~ 구조물이 휘황찬란하다. 한시간 걷던 길을 엘리베이터로 교환하니 편하되 매양 편치만은 않다.
풍랑주의보에 큰 파도가 이어진다.
파도는 권태롭지 않을까? 무한반복에서 비롯되는 권태.
아저씨들은 안다. 무심한 척 작은 권태에 실어보내는 자신의 큰 나태를.
오늘의 파도는 권태로와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덩달아 마치 나도 그런 것처럼.
문어 안 먹으면 큰일 나겠다. 그런데 참 맛있다, 문어물회. 무코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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