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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Jul 04. 2023

잔치가 끝났다 – 2. “나는 다재다능하여 헛살았다.”

  나는 다재다능하다.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한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평한다. 그리하여 헛살았다. 

    

  어느 것을 잘하고 어느 것을 못하는지 보자면, 못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적으니 못하는 것을 꼽는 것이 빠르다.

  수학을 못한다. 수학의 수준이 아니라 산수도 못한다. 취학 전에 구구단과 사칙연산을 깨우쳤으나 지금은 계산기 없으면 바보이다. 영어를 못한다. 문맹의 수준은 아니어서 햄버거와 콜라 정도는 주문이 가능하니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못한다. 다른 외국어도 못한다. 구글과 파파고의 수혜족이다. 물리, 화학 등에 젬병이다. 양자물리학 기초를 다룬 과학 교양서를 읽다가 내 존재에 대하여 회의하였다. 냉정하게 살펴보니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영악하게 잇속 차리기에 서툴다. 밥이든 술이든 얻어먹기가 불편하다. 돈 버는 것, 관리하는 것, 불리는 것 못한다. 

  점잖고 의젓하고 우아하게 못한다. 낯 두껍지 못하고, 말이 막혀 좌중의 분위기 불편해지는 것이 힘겹다. 거절을 못한다. 용건이 없으면 통화를 길게 못한다. 다정하지 못하다. 특별한 이야깃거리 없이 세상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잘 못한다. 듣기 좋은 소리 한 번 하려면 단단히 마음먹어야한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너그럽게 넘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홀로 조용히 비분강개하는 것을 택한다. 낯선 사람이 두렵다. 쉽게 사귀지 못한다. 목소리가 크고 웃음소리가 호방한 중년 이상의 여성은 무섭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삼십 년은 됐음 직한 사내가 여전히 반장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롭다. 

  도박을 못한다. 영화 "타짜"를 보고 나도 엄청난 재능을 지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지만 일단 화투든 카드든 30분 이상 앉아서 버티지 못한다. 고스톱 쳐본지 20년쯤 되었나본데, 그 당시 노름판(?)에서 별호가 ‘Walking ATM’이었다. 골프를 못친다. 옛날에 열심히 배워볼까 해서 시도했는데 도무지 몸에 맞지 않아 내려놓았다. 오래된 CF 카피 같지만 "운동은 움직이는 거야!"

  찾아보니 못하는 것이 이것 말고도 엄청나게 많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을 꼽는 것이 빠를 뻔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것에 이렇듯 서툴다.  

   

   이런 못하는 것들 말고는 한 번이라도 해보았거나 관심 깊게 본 것들은 꽤 한다. 

  소싯적에 공부 좀 해서 부모님을 희망고문해 드렸다. 한때 동네 영재 아니었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예체능에 제법 소질을 보여 학창 시절에 상장깨나 품에 안았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짧게 배운 한자로 신문이며 문패와 간판들을 제법 읽고 다녔다. 

   부모님께서 큰 뜻을 품고 할부로 사주신 세계대백과사전 전집을 몇 차례 통독하여 홍동백서, 조율시이, '근계시하에 제례하옵고' 따위부터 동서양의 문화사와 남녀상열지사의 내밀한 이야기들에 이르는 잡다한 상식의 파편들이 무질서하게 머리에 꽂혔다. 장학퀴즈에 나가 장원을 하겠노라는 야심이 중학교 때까지 넘쳤다. (장학퀴즈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여러모로 다행스럽다)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과 역시 수십 권에 달하는 한국문학전집은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은 물론 사회생활을 할 때도 아는 체, 읽은 체의 든든한 갑옷이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눈이 조금 밝아졌고 영업, 관리, 기획, 홍보 등의 업무를 두루 거쳐 흐름과 제목 정도는 알게 되었다. 16비트 컴퓨터 시대에 회사에서 배웠던 로터스 1-2-3와 워드프로세서를 시작으로 어깨너머로 여러 프로그램을 익혀 제법 컴퓨터로 이것저것 하는 수준은 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짐작하는바 배우는 속도와 눈썰미도 다소 갖추어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아니 이런 것도?'라고 할 정도로 여러 일들을 할 줄 안다. 나름의 새로운 방법과 임기응변을 발휘하기도 한다.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의 '시다'로서 기와 얹기, 구들장 놓기, 새마을보일러 깔기, 도배와 장판 등의 수준을 섭렵했다. 대학 시절 시위용 현수막을 서른 개가량 써서 달았는데 나 스스로도 살짝 놀랐다)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은 어지간한 조직의 대표로 뛸 만큼은 한다. 아니 '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에서 '신(身)'이야 어쩔 수 없는 '신(神)'의 영역이지만 '언서판'은 크게 뒤처지지 않을 수준은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감사히 여긴다. 여흥과 이벤트를 이끌 줄 알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들을 궁색하게나마 표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     

   딱 여기까지이다. 나는 헛살았다.


   나는 적당히 아는 체 할 수 있고, 적당히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적당히 전문가를 흉내 내는 척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였으므로. 젊은 날과 그로부터 이어진 수많은 귀한 날들 동안 귀를 간지럽히는 칭찬에 과한 열의로 답했다. 그것이 선이라 말했지만, 실은 자만을 은폐한 재미의 추구일 뿐이었음은 모를 리 없었다. 아니면 성취욕은 강하나 무능력한 나를 부정하고 싶은 리플리 증후군이거나.

   간혹 운 좋게 얻어낸 작은 성취들이 나의 재능의 산물이라는 오해 속에 살았다. 그러한 성취가 계속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작동한 탓이었다. 그 바닥에는 나의 쓸모없는 다재다능에 대한 과신이 깔렸다. 나는 여태껏 죽을 각오로 달려들지 않았으므로 내게는 기회와 시간이 남아있다는 거대한 착각을 했다. 두려움에 그 실체를 대면하지 않았다. 마치 긁지 않은 한 장의 복권을 희망인 양 품은 노인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로서는 이루어 낸 것이 없다. 누군가의, 혹은 필요한 상황에서 대체재로서는 제법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독립재로서의 나의 존재는 초라하다. 아니, 없다. 되돌아보니 나는 헛살았음이 절절히 다가왔다.   

  

  아버지는 쉰하나에 돌아가셨다. 젊은 날에 나는 51이라는 숫자를 조심스레 경계하였다. 그 나이까지는 의무처럼 살리라. 그 이후의 날들은 선물로 여기고 살리라. 혼자 만족하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는 않은 선물을 남기리라. 다짐은 부질없었다, 현재까지는.


   얼마일지 셈할 수 없는 선물 같은 의무의 날들이 남아있다. 몇 안 남은 재능의 흔적과 성취의 다짐이 남아있다. 시간과 재능이 소진되고 다짐의 색이 바래는 것은 '아차' 싶을 정도로 빠르다. 최대한 붙잡아 보리라. 시간을 얇게 저미고 그 사이사이를 떨며 채워보리라. 조촐한 나의 요리 한 접시쯤 차려낼 수 있도록.


https://youtu.be/A7pI96Osp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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