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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Jun 23. 2023

잔치가 끝났다. (1)

  "오늘 제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아쉬움의 날숨과 안도의 들숨을 동시에 쉴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강한 상대인 포르투갈이나 멕시코 같은 나라를 만나 격전 끝에 비겼을 때의 심정 같은 것이다. 안 진 것은 다행이다, 그래도 이겼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감정의 교차. 

  스스로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그만큼의 의구를 품고 진행한 일이 기대치를 넘어서지는 않은 만큼의 성과를 냈을 때 ‘잘됐다’ 하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한편으로는 ‘더 잘했으면’ 하는 남은 욕심이 발동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2주일 간격으로 두 개의 행사를 마치고 안도하며 아쉬워했다. 내가 속한 교회 교단에서 개최한 대회였다. 하나는 포항에서 열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워십 대회의 준비팀장(이라고 쓰고 연출자로 읽는다)으로, 하나는 서울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열린 찬양대회의 사회자를 겸하였다. 

   포항 행사는 참석자들의 이동 거리 부담에 따른 시간 준수가 중요했다. 결과는 Just in Time. 사백여 명의 참석자들이 두 시간 동안 즐겁게 대회를 즐겼다. 서울에서의 행사는 청소년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몰입하며 즐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만족스러웠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각각 2주가량의 준비 기간이 필요해서 근 한 달 동안 고단했다.

   코로나 팬데믹의 3년 동안 거의 모든 이벤트가 중단되었다. 간간이 몇몇 행사들이 마련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이 활개를 펴고 감염의 공포를 잊은 채 적극적으로 즐긴 것은 4년 만이었다. 반갑고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겸손만은 아니었다.     

  나는 행사를 기획하는 것과 마이크를 잡고 노는 것이 좋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이고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봉사라는 거창한 단어는 과분하지만,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맡는다. 잘 마치고 안도하며 뿌듯해하는 것은 나의 순전한 기쁨이다.

  20대 때부터 크고 작은 여러 행사의 준비와 사회를 맡았고 우연한 기회에 2014년 교회 관련 외부 행사의 사회를 처음 맡았다. 20팀 남짓 참가한 청소년 찬양경연대회였다. 당시는 교회를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기에 잔 실수 - 신앙의 바닥을 드러내는 - 를 할까 싶어 긴장을 많이 했고 덕분에 준비도 무척 열심히 했다. 이 노력이 "천부적으로 다재다능함" - 나름의 유머라고 쓴 것이니 웃어주시라 - 과 어우러져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리라. 

  그리고 2023년, 어느새 나이가 꽤 들었다. 기획과 진행에 대한 흥미와 욕심은 여전하다. 보잘것없는 재주를 잘 써주신 그분께 감사할 뿐이다.


  행사를 연출하는 것은 재미있다.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메시지를 담아 어떤 퍼포먼스를 꾸밀까, 생각은 꼬리를 문다. 가끔은 빨리 일하고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확장성과 다중지성의 문제 풀이 능력에 감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고 모든 스태프와 즐거운 강평을 하는 것도 연출의 큰 재미이다. 

   

  사회자로 무대에 서는 것 역시 재미있다. 모든 행사의 성패는 최종적으로 진행자의 어깨에 달려있기 십상이다. 관중을 눈앞에서 이끌어 가며 그들의 반응을 즐길 기회는 그리 자주 있지 않다. 시작할 때 다소 굳어있던 혀가 점차 풀리고 어느 때 쯤부터 대본과 애드리브가 나도 모르게 줄줄 엮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엔도르핀이 샘솟는 것이다. 출연자가 나의 멘트로 무대를 즐기고 힘을 받을 때면 뿌듯함이 차오른다. 물론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초긴장의 연속이다.

  

   연출과 사회를 굳이 비교한다면 연출은 재미있고 사회는 그보다 조금 더 다이내믹하게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연출한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것, 욕심은 늘 과하므로 욕심인 법. 하지만 모든 사회자는 연출을 일부 겸할 수밖에 없고, 모든 연출자는 사회자의 시각에서 행사장을 보아야 하니 과하기만 한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소심한 탓인지 예민한 탓인지 나는 행사 당일에는 물과 커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이 버릇은 두 가지의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하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엄청나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사를 마치고 먹는 밥이 그리도 맛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매번 좋을 수만은 없는 법. 행사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게 끝나면 그나마 없던 입맛이 싹 가신다. 또 하나의 안 좋은 점은 잘 됐든 안 됐든 끝나면 거의 탈진하는 것이다.


  가까운 이들은 말한다. 돈을 벌 욕심으로도 아니고, 대단한 찬미와 영광을 받는 것도 아닌 그 일을, 시간과 신경을 엄청나게 쓰면서, 왜 그리 열심히 하냐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멋있 - 다고 나 혼자 생각하 - 는 대답을 늘어놓지만, 정답은 모른다.


  나의 수준이 대체 불가 급의 대단한 것은 아니다. 꽤 하는 경험자라는 이유만으로 물길을 막는 효용 떨어지는 보가 되기는 싫다. '나이 들 만큼 들었으면 낄끼빠빠할 줄 알아야지'라는 지청구라도 들을까 움츠린다. 그렇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점잖게 지켜보는 유장한 중년미를 뽐내고 싶기에는 아직은 피가 덥기도 하다.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럽지만 그러기에는 생활의 벽이 두꺼우니 그런 욕심을 품는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다만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욕심을 부린다.


  이렇듯 내 마음은 두서없이 오락가락하지만 행사 하나를 마치면 존재로 남는 것은 있다. 깔딱고개를 헉헉대며 오른 뒤 툭 터진 조망을 볼 때, 숨이 끝에 닿도록 잠영한 후 '파아' 하고 솟구쳐 숨을 고르며 헤어온 거리를 가늠할 때,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궁리하다 마침내 유레카의 미소를 지을 때의 느낌과 같은 순도 백 퍼센트의 희열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모든 '부질없는 일'들의 공통 분모이다.    

  

  "그래서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라고 물으신다면, ‘그저 웃지요’ 할밖에...... .     


  이 재미있는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모른다. 단지 바라기는 몸과 아이디어와 정열이 고갈되어 목불인견의 초라한 꼴이 되기 전에, 박수칠 때 떠날 수 있기를.

 

https://youtu.be/AiziLje8W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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