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후배가 아침에 카톡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모니터에 떠있는 시험 합격 확인 화면을 찍은 것이었다.
물끄러미 보다가 축하한다는 말을 깜빡했다는 것이 퍼뜩 떠올라 890타/분의 속도로 카톡을 보냈다. 이런 일은 반응 속도가 그 본질에 우선하는 법이므로.
"축하축하."
"겁나 좋아요 진짜." 보내 온 답장에 순수한 기쁨이 가득했다.
무대예술 전문인 자격시험 무대음향 3급.
국립중앙극장이 검정하고 문화체육부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이다. 1년에 한 번 시행되는데 자세한 통계는 모르지만 얼추 10퍼센트 내외가 합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년 층의 문화, 공연, 방송 등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후배와는 교회에서 관련 부문 업무를 함께 맡아 봉사한다. 이왕 하는 김에 전문성을 높였으면 했고, 앞으로 있을 교회의 큰 일에 일정 부분 힘을 보탰으면 해서 자격증 공부를 권유했다.
누군가는 '솔선수범하여 내가 먼저 공부를 하거나, 함께 도전하거나 하면 더욱 좋지 않았겠느냐'할 것이다. 그러나 본디 나는 남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더욱 큰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이며,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야매"적 성향이 강하므로 분연히 '네가 먼저 그 길을 가라'고 하였다...는 아니고 공부가 무섭다. 소싯적 문일지십(聞一知十)의 빛나는 영광을 찰나처럼 즐긴 바 있었으나 어느덧 독일망백(讀一忘百)의 경지에 등극한 지 오래되었다.
후배는 열심히 공부했,나 보았,다. 직장인으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공분야도 아니다. 다른 할 일도 많다. 게다가 옆에서 나는 잦은 협박으로 스트레스를 주었다. 떨어지면 시험 본 거 다 알릴테다 등등의. 이를 이겨내고 지난 6월에 필기를 패스하고, 얼마 전 8월 초에 실기 응시하여 '에듀윌이 없이도'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대견한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와 교회일을 함께 하면서 몇년 째 콘텐츠를 만들고 음향기기를 관리하고 영상과 소리를 다듬었다. 처음 시작은 "야매"가 조금 앞서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천양지차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끔 나를 능멸하게 만들 단초를 제공했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일 때면 나는 짐짓 지상 최악의 퀄리티로 패악을 부림으로써 서열을 분명히 하려고도 하지만, 그보다 청어람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다시금 축하한다. '나 이런 전문가 알아'하며 자랑 좀 하도록 더욱 정진하여 주기를 바라는 속 마음을 숨기지 않으련다, 순전히 나를 위해!
이달 말일에 오랜 친구 박 대기자가 정년퇴임을 한다. 불꽃같은 20대에 의학전문지의 전문 기자로 시작하여 경향신문의 의학전문기자로서 축복의 자리를 맞게 되었다. 30여 년을 오직 한 길 공부하며, 쓰며, 돌아보며 걸어왔다. 존경과 축하를 보낸다. 친애하는 부인과 두 자녀에게도 박 대기자가 자랑스러운 남편, 존경받는 아버지 그리고 훌륭한 기자로 자리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기도해준 데 대하여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젊은 날 나는 박군과 함께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오직 꿈과 열의로 질박한 청춘의 시간을 보냈으나 그 길은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후 가뜩이나 힘들던 언론사 입사의 벽은 더욱 강고해졌다. 매번 몇 천 대 일의 경쟁률을 확인하며 1차 필기시험장에 앉으면 시험감독관들은 사뭇 친절했다.
"이 교실에서 한 명이 1차 통과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빙긋.
알아서 다른 길을 찾으라는 듯한 넘치는 '친절'과 빙글거리는 기름진 웃음이 묻어있는 그들의 신분은 부러움이자 악착같이 닿고 싶은 피안의 꿈이었다.
열 몇 차례의 낙방을 함께 겪었다. '李花月白'과 '朴酒山菜'라고 새긴 목도장을 서로 선물하며 후일에 잘 되어 기사에 낙관처럼 쓰기를 희망하고 격려하였다. 해질녘의 남산도서관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호랑이의 조급증만 닮았다. 1년 만에 언론고시의 동굴을 뛰쳐나가 봉급생활자의 길에 들어섰다. 박 군은 곰의 지혜로 이겨냈다. 얼마 후에 박 기자의 명함을 받았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고, 미안했고, 선망했는가!
어렵고 척박했던 길을 박 대기자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걸어왔다. 셀 수 없는 많은 기사를 썼다. 이 달의 기자상을 비롯한 여러차례의 우수기자상을 수상하여 살피고 쓰고 경계하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책을 썼다. 그 기사들과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랑스러웠다.
기자의 길에 섰기에 뿌듯하고 벅찬 시간도 있었을 테고 때로 시대와 스스로에게 속상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 앞에 펼쳐졌을 수많은 가지 않은 길을 지나 지금 정년을 맞는 박 대기자로 서있다는 것이 위대함이다. 영광이고 기쁨이다. 축복의 정수이다.
퇴임 이후에 그의 전문성과 장기를 필요로 하는 여러 제안이 있는 줄 안다. 그가 오랜 시간 그려온 그림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이제까지 처럼 모든 시간이 유의미하게, Comme d'habitude.
축하하고, 존경하네. 젊은 날, 잘 깎은 밤톨 마냥 단단하고 해사했던 박 군을 떠올리며 잠깐 미소지었네.
나이가 들어가면서 축하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의례적인 축하가 아닌, 축하함으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윗대에 비해 적은 것 같다. 내가 잘못 살아와서인가. 미니멀화 되는 라이프 스타일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삶 자체가 어려워졌나보다. 호흡이 길고, 흐름은 늦어졌다. 예전에 전형적으로 축하하던 여러 이벤트는 빈도도 적고 색이 바랬다. 하긴, 사람이 살면서 온전한 주인공의 자리에 서는 일이 몇 차례나 될까, 그중 특별한 몇몇 세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두 분께 감사한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귀한 축하의 기회가 고맙다.
나를 살펴본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는가. 계획과 꿈을 그리며 그에 발맞추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축하의 기회를 앞으로 나는 만들 수 있을까.
춘천 방향으로 전철을 타고가다보면 itx열차와 나란히 달릴 때가 있다. 나도 앞으로 가고 있는데 정지되었거나 후진하는 듯한 착시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나아간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상대적으로 늦을지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