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네 식구는 자주 여행을 간다. 코로나 전까지는 한 달에 한번 간 것 같다.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춘기 오기 전에 가족과의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선배맘의 조언을 듣고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여행이 설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때 되면 가는 여행.. 형식적인 가족 모임 같은 느낌이랄까.. 잘 기억도 안 난다. 어딜 다녀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그저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정확히 20년 전 그해 여름..
"옷 여벌 챙겼어? 오늘 못 돌아올지도 몰라~ 배가 끊길 예정이거든...." 우리가 가는 곳은 배가 없는 차로 갈 수 있는 대성리였다. 그는 누구나 눈치챌법한 뻔한 농담으로 오늘의 여행을 이야기한다. '나도 기다렸다는 말이다' 라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여벌을 준비했다고 대답은 안 했지만 여벌을 뭐뭐 챙겼더라? 속으로 한번 더 되새겼다. 우리의 짜릿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한테는 고은이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지만 우리는 성인이었다. 괜찮다.
교회에서 친구 초청 예배에 내가 초대받게 되어 가게 되면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그 당시 절친이었고 내가 이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할 때 나를 예배에 초대한 것이었다. 그는 친구가 "오빠 머리 떡졌어"라는 말에 바로 화장실로 가서 세수룰 하고 앞머리를 물에 적셔왔다. 그런 행동이 어수룩하고 멋져 보이진 않았다. 근데 순수해 보였고 그날 그의 커다란 눈이 자주 마주쳤다. 말 그대로 그 위험하다는 교회오빠.. 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만나고 나서 두세 달 후였다. 여행 간다고 안 입던 나시를 입고 나와 운전대를 돌리던 그의 팔뚝이 단단하진 않고 허얫지만 싫지 않았다. 나도 여행 간다고 모셔놨던 나시에 쪼리를 꺼내 신고 조수석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기분 좋은 바람 냄새와 아름다운 풍경들이 지나갔다. 그냥 다 좋았다. 달달거리는 아반떼였는데 에어컨은 시원하지 않고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것도 좋았다. ‘아반호’ 아반떼라는 배를 타고 대성리에 도착했다. 뜨거운 여름에 각자 쉼 없이 일하다가 맞은 주말이었고 시원한 계곡을 보자마자 둘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이 너나 할거 없이 계곡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곡물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차갑다고 하면서도 첨벙첨벙 둘이 파닥대며 놀았다. 그는 판때기 하나를 어디서 구해 와서 나를 미끄럼틀 태우듯 태워줬다. 계곡 미끄럼틀의 재미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신밧드의 모험보다 재미있었다. 나를 태우고 항해하는 든든한 잘생긴 뱃사공이 있다는 것. 그 배는 나만 탈 수 있다는 것. 그 재미는 나만 아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도 좋고 이 남자 제대로 놀 줄 아는구나 싶어서 더 멋있어 보였다. 물놀이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그는 수영을 배운 적도 없고 개헤영도 어푸어푸 잘 못 하는 거 보니 물에 빠지면 내가 구해줘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물놀이 내내 '안 춥냐' '깊은 데 가지 마라' 나를 챙기는 모습이 그렇게 듬직하고 든든했다. 대략 이상형은 듬직한 남자였기에 이 정도면 평생 나를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라군이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땐 딱 내가 블루라군에 브룩쉴즈 마냥 수영을 하며 놀았다. 아니 그에게는 내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도 허연 팔뚝으로 수영을 어푸어푸하는데도 멋있는 남자 주인공 같았으니 말이다. 그냥 낯선 곳에 단둘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초창기 사랑이 넘실댈 때의 단둘이 물놀이는 너무 신나고 행복했고 한여름보다 뜨거웠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놀았다. 지금의 양양이라면 모를까 계곡에서 그러고 놀았다.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둑어둑해졌고 무계획 여행이었기 때문에 숙박도 정해야하기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물에서 나가자고 했다. 배도 많이 고팠다. 그리고 곧 우리는 알게 되었다. 앗 주머니 속 차키!! 차키를 계곡에 주고 왔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외박도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그와의 첫 여행은 얌전히? 집에 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둘이 손잡고 쫄쫄 굶은 상태로 버스를 타고(버스는 어떻게 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에 왔고 그는 다시 여분의 차키를 가지고 혼자 대성리를 다녀왔다고 했다.
최근 가족이 되고 십 년간 다녔던 여행은 기억에 가물가물한데 더 오래된 연인 시절 남편과의 대성리 여행은 어제 일처럼 글로 쓸 만큼 생생하다. 그날은 지나고 보니 짜릿하다 못해 호되게 매운 여행었다. 그렇게 나는 그 뱃사공의 배를 타고 지금까지 흘러가고 있다. 가끔 일상이 권태롭고 설레지 않을 때 이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짓는다. 그때로 가끔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안전하고 든든하게 배가 여전히 잘 항해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