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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Mar 07. 2024

감정과 장소의 유형학: 최유정의 회화 세계

최유정의 회화는 미학의 범주나 기술적이며 개념적인 방향성을 추구하지도, 최근 재조명된 '리얼리즘'의 경로를 따르지도, 특정한 사회적 이슈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회화는 작가 자신 혹은 특정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 감각의 재현이다. 그의 이미지는 ‘시리즈’나 ‘연작’으로 분류되기보다는, 그가 4개국에서의 생활에서 경험한 ‘집'이라는 특정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소간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의 변주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최유정의 회화는 감각과 장소의 유형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재현된 이미지들은 특정 감정, 감각 그리고 특정 장소에 귀속된 인접(neighboring)의 이미지이다. 이러한 ‘인접된 이미지’와 감정, 감각, 장소에 귀속된 이미지들은 유형적 특징을 지닌다는 점은 그가 4개국을 이동하며 거주해왔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며,  '디아스포라적'[1] 이주에서 경험할법한 특정 지리적 또는 문화적 속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리적, 물리적인 특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도, 그렇다고 어떤 단서를 제공하지도 않으며, 캔버스는 진공 상태에 매달려 외부 세계보다는 내면에 집중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자아의 탈구와 방향감각 상실에 관한 것으로, 작가의 전환에 대한 탐구와 현실과 구성 사이의 긴장을 반영한다. 이러한 긴장을 작가는 자신 스스로 자신이 가졌던 특정 장소에 대한 감정이나 감각을 평면으로 소환함으로써, 자신 기류에 흐르고 있는 무언가[2]를 평면으로 토해냄으로써 작가는 자아와 감정, 감각과 장소 사이의 관계를 꿰뚫고자 하는 것이다.


최유정은 이러한 관계의 탐구로 특정 장소에 대해서 “집착적으로”[3] 반복하며 등장하는 소파, 화분 등처럼 일상의 물체들을 통해서 형체 없는 감정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다시 평면으로 끄집어낸다. 스마트폰에 의해 무감각한 느낌(numb feeling)에 빠져 있는 무기력한 인물들은 이러한 인접된 이미지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이다. 예를 들어, 화분을 살펴보면,〈Planting Money Tree (Daniel)〉(2022)에서는 집 안에서 화분에 돈나무를 심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이 인물의 포즈는 조심스럽게, 아마도 그의 소중한 식물을 다루는 모습으로 보인다.〈Frame of Matters〉(2023)에서는 큰 창문 앞에 위치한 화분이 중심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 뒤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한편 무기력한 신체는〈Modern Man Enclosed by Four Walls III〉(2021),〈Modern Man Enclosed by Four Walls II〉(2021)에서 볼수 있는데  스크린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소파 위에 누워 있으며, 외부로 통하는 창문을 통해 다양한 시간대와 자연의 풍경이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의 표정에서는 침묵과 동시에 익숙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똘복이와 윤진〉(2021)에서는 윤진이 스마트폰을 보며 소파에 누워 있으며 그 맞은편에 똘복이 자리잡고 있다. 〈Jungle Garden From French Window Bedroom〉(2022)에서는 베란다에 펼쳐진 정원을 내다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Room 716〉(2023)에서는 호텔 방 같은 공간에서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인물이 소파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기력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최유정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이로, 작가는 사진을 참조하지 않고, 이들이 머물렀던 장소, 흔적과 일상의 물체를 작가의 기억으로부터 구축해 다시 그려낸다.[4] 이러한 시도를 작가는 자신을 “존재하는 방식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주(당)했던 공간의 “손님이 아닌 주체자”[5]가 되어 끊임 없이 상실할 수 밖에 없었던 장소나 물건을 보존하려는 강인한 의지와 함께,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평면에 재구축하며 그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라지는 무언가에 대한 집착, 혹은 애정, 들러붙고자 함, 결국은 시간으로 사라져버리는 장소, 사람, 감정, 감각들을 다시 평면으로 소환하여 그것들을 다시 붙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자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장소와 감정 사이의 연장선을 그리며, 유형학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사할 때 마다 집착적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6]들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형체 없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작품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유사성에 연유한다. 이런 점에서 특정 감정과 장소에 기반한 최유정의 회화에서 '유형학적'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 이것은 회화에 내재된 구조와 내용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유형학적 접근은 특정 현상이나 객체의 일반적 특성이나 특성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접근법은 최유정의 작품에서 그가 그린 장소와 감정의 일반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그의 작품은 개별적인 장소나 시간에 국한되는 듯 보이지만, 현실의 유사한 형태나 상황을 연속적으로 재현하면서 인물의 표정과 얼굴을 지워 이들의 무표정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는 유형학적 접근법이 그의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이다. 


유형학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도구로 최유정의 작품은 이차 프레임[7]을 통해 주변 환경과 대상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그것을 복잡한 감정의 구조와 결합시킨다. 그의 작품에서의 구조적인 요소, 예를 들면 자신의 “신경질적”[8]이고 강박적인 성향을 반영한 창문이나 문, 그리드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유형학적 접근법은 작품 내의 특정 구조물이 단순히 물리적인 표현이 아닌, 감정적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특히,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창문을 통한 풍경은 실제 세계와 작품 속 세계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Frame of Matters〉(2023),〈To an Unknown Destination〉(2022),〈Jungle Garden From French Window Bedroom〉(2022),〈Sunday Afternoon〉(2019)와 같은 작품에서 프레임을 통한 풍경은 단순히 풍경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실제 세계와 작품 속 세계 사이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오소독소 vs 오소독스》(성북예술창작터, 2023.10.6~11.30.)에서 새롭게 선보인 〈Untitled〉(2023)에서 이러한 이차프레임의 경향은 보다 두드러진다.〈Untitled〉은 건축의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를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즉각적으로 사로잡는다. 작품 내부에 다중 프레임을 겹치는 방식으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구조는 전통적인 풍경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의 공간감을 제시한다. 푸르고 서늘한 파스텔 톤의 색상과 미묘한 그림자의 조화는 작품에 평온하면서도 깊이 있는 무드를 부여한다. 이미지 하단에 자리 잡은 인물은 열린 문 앞에 서 있어,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자신만의 평온한 공간을 찾아낸 듯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이차 프레임을 넘어서서 삶의 복잡성과 그 안에서의 인간의 존재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색을 묘사한다. 


이처럼 최유정의 회화에서 중첩된 그리드가 만들어낸 프레임은 작품 내에서 이차 프레임의 역할을 하며, 보는 이에게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의 경험을 제공한다. 즉 여기서 프레임은 그 안에서 숨겨진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작품에서 개인적 감정과 경험을 찾아낼 수 있게 되며, 이는 최유정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최유정의 이차 프레임 활용은 작품의 다양한 감정적 층을 탐색하면서 동시에 관람자와의 동적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며, 자신의 과거의 기억와 과거를 소환하는 현재, 현실과 상상, 실재와 비실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예술적 탐구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이차 프레임의 존재는 최유정의 작품이 단순히 그의 경험이나 감정만을 중심으로 유형학적으로 분류되는 것을 뛰어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감정의 공간을 창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최유정은 관람자에게 자신만의 감정과 경험을 회화에 투영할 기회를 제공하며 그의 작품이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감정’과 ‘경험’의 재창조를 목표로 하는 것임을 확고하게 해준다. 작품과 관람자 간의 상호작용을 증진시켜 새로운 감정의 공간을 창출하며, 그의 예술적 탐구는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 보다 광범위한 감정의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제시한다. 이로써, 관람자는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작품에 투영하며 새로운 감정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1] 여기서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디아스포릭적’인 경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의 평면에는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귀속되지 않은 무형의 어떤 특질이 묻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만 경험할 수 있는 냄새들, 그가 거주했던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한국 등을 상징한 만한 무언가나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또 다른 에너지가 아니라, 오히려 진공 상태의 방 안에서 촬영한듯한 일련의 회화들이기 때문이다. 

[2] 예컨대 멜랑꼴리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감정이나 느낌일수도 있다.

[3] 작가 스테이트먼트 및 작가와의 인터뷰 (2023.06.21)

[4] 작가와의 인터뷰 (2023.06.21)

[5] 작가 스테이트먼트

[6] Ibid.

[7] 이차프레임(cadre second)은 회화나 사진, 영화같은 시각예술에서 다양한 효과를 위해 화면 안에 삽입되는 프레임 형태의 이미지를 가리킨다. 주로 창, 문, 거울 등이 이에 해당하며, 다양한 방식의 이중프레이밍 작업을 거쳐 작품 안에 형성된다. 이차 프레임은 특정 이미지를 가두는 단순한 틀의 기능을 넘어, 내부와 외부 혹은 그림과 현실 등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이어주는 ‘이중적 경계’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림 내부의 여러 영역들을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하고, 회화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동시에 이어주며,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혹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 사이에서의 중개 역할을 이행한다. - 김호영, ‘초기 르네상스 회화에 나타난 이차 프레임의 의미작용 연구’,  『한국예술연구』, 2020, 제28호, 71-92쪽 https://doi.org/10.20976/KJAS.2020..28.004

[8]  작가 스테이트먼트 및 작가와의 인터뷰 (2023.06.21) 



*본 원고는 2023년 성북문화재단 성북예술창작터 N리뷰어로 선정되어 쓰여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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