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곳은 토론토였다. 스무 살, 큰 가방 하나 들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한국에서 ‘나 혼자 산다’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겁 없이 혼자 떠난 것이다. 살림과 거리가 멀어 처음에는 우왕좌왕 헤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재미있었다고 한다면 기억이 미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하고, 배우며 꿈 같은 1년을 보냈다.
나의 스무 살이 고스란히 담긴 도시라고 해야 할까. 토론토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10년 뒤에 다시 토론토에서 만나자, 약속했지만 가슴 한편에는 그 도시를 그 기억 그 자체로 남기고 싶기도 했다. 30대의 눈으로 그 도시를 다시 바라봤을 때 그 시선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10년 만에 캐나다로 혼자 출장을 가게 됐다. 오타와로 가는 일정이었지만 직항이 없어 한 도시를 무조건 들러야 했다. 토론토. 조금 주저했다. ‘다른 도시를 들를까?’ 싶어 항공권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피하고 싶지만은 않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정말 첫사랑을 마주칠 수도 있는 거리를 들어설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그래, 다시 가보자’ 싶어 토론토로 향했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해 오타와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까지 몇 시간 공백이 있었다.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만 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 가기 전에 토론토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한 명은 영어를 가르쳐줬던 이집트 출신 영어 선생님이고 다른 두 명은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된 쌍둥이 친구들이다. 도시 특성상 공부하러 온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도 10년 전 기억을 안고 한걸음에 나와준 친구들 덕분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토론토를 둘러볼 수 있었다.
덕분에 판도라 상자도 잠시 열었다. 시나몬 냄새가 가득한 에글링턴 역, 시청 앞 길거리에서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던 퀘백의 감자 요리 푸틴,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팀 홀튼,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그 거리를 힘차게 걷던 스무 살의 나. 반가우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주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토론토는 그대로였다. 나이 들어 달라진 첫사랑의 모습에 실망하는 그런 일은 다행히 없었다. 너의 그 시간을 내가 곳곳에 새겨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마음 닿을 때 또 오라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줄 것만 같다. 언젠가 그 상자를 다시 열어 새로운 기억을 담으러 토론토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