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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내가 영어선생님이 되게 한 나의 남편

by 민혜숙


부모님이 나를 낳아 키우셨고 결혼 후 나를 키운 사람은 나의 남편이다. 나의 영어 선생으로서 경력은 남편 때문에 시작되었다. IMF 외환위기 때 남편은 첫 직장이면서 11년이나 일한 직장을 떠나야 했다. 회사가 부도가 났다. 그 이후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대기업에 들어가 1년 정도 일하더니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하고는 사표를 냈다.


IMF 경제 위기로 아버지 사업도 어렵게 되셨고 남편 회사도 부도나는 불행이 겹쳐 나도 프랑스 문학 박사학위 공부를 때려치웠다. 다니던 대학이 구조조정이 되면서 불어불문학과와 불어교육학과과 통합되고, 프랑스어가 제2외국어 과목에서 없어지는 바람에 학위를 받아도 강사자리도 얻기 힘들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었지만, 하고 있던 문학비평연구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읽고 쓰고 있었던 것에 대해 전혀 확신이 없어서 그만두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려워하는 공부여서 외환위기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공부였다.

그러던 중 남편은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회사에 취업했다. 그 바람에 학위 공부 그만두고 동시통역대학원 준비하고 있던 것마저 포기하고 나는 6개월 된 딸을 데리고 싱가포르로 갔다. 아이가 하루 자라면 나는 하루 도태되는 것 같은 절망스러운 날들이었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월세를 절약하려고 주공 아파트에 입주했다가 6개월 만에 쫓겨났다. 외국인은 집 전체를 빌릴 수 없었는데 괜찮겠지 하고 집 전체를 다 쓰고 있다가 집안의 안전검사를 한다고 온 공무원들에 의해 적발된 것이다. 외국인이 사는 아파트로 집을 구해 나가면서 몇백만 원 됐던 보증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30일 안에 퇴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사 가는 것도 서러운데 나쁜 집주인은 벽에 얼룩이 생겼다는 둥 거실 바닥에 흠집이 생겼다는 둥 트집을 잡아서 내 보증금을 몽땅 가져갔다.

다시는 주공아파트에 안 살겠다고 다짐한 후 월세는 비싸지만, 외국인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아파트 1층에 있는 게시판에서 영어 개인 교사 광고를 보더니 나더러 해보라는 것이었다. 원어민을 구한다고 되어 있었고 나는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라고 남편이 부추겼다. 그 아파트에는 미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선교사 자녀를 위한 학교가 아파트 옆에 있어서 그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 미국인 중 누군가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남편이 당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고 해서 그럼 생각 좀 해보자 했더니 ‘지금 당장’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당장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나 :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영어 개인 교사를 구하시나요? 저는 2층에 사는 한국 사람인데 제가 선생님과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미세스 왕 : 아 난 중국본토에서 온 공무원이에요. 나는 영어를 잘 못해요. 아 이웃이군요! 지금 와서 차 한잔 할래요?

나 : 지금요?

미세스 왕 : 네 시간 되면 어서 오세요. 여긴 502호에요.

5층으로 올라갔더니 내 학생은 50대 후반의 부인이었고 남편과 함께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그렇게 그 부부와 대화 하면서 면접시험을 봤고 원어민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 외국인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남편이 지금 당장 하라고 해서 바로 전화했고, 학생 될 분이 곧 올라오라고 해서 난 일사천리로 선생님이 되었다.

미세스 왕은 중국본토에서 온 공무원이었는데 내가 처음 갔을 때 남편과 함께 있었던 것은 휴가 때문이었고, 혼자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수업하다가 잘 생긴 청년의 사진을 보고 아드님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그 외동아들이 스물 두 살에 미국 유학 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한편 그녀가 나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22년 전의 오래된 일이라 무슨 교재로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는 가족의 사랑과 자녀 양육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당장 전화해 보라는 남편의 충고를 따라 어쩌다가 개인 수업 하나를 하다 보니 용기가 생겨서 영어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프랑스어나 영어 가르치는 특례 입학학원을 알아보고 영어 강사 자리도 얻게 되었다. 신문 광고란을 뒤져서 프랑스어 개인 과외수업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지나서는 싱가포르 주재 한국 기업에서 한국어도 가르치고, 싱가포르 한인 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도 할 수 있었다. 미세스 왕과의 수업을 시작으로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기회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아직 어린 딸을 돌봐줄 가사도우미의 월급을 벌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전일근무가 아니라 프리랜서 개념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일할 수 있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일이라도 당장 시작하면 무언가 얻을 수 있다. 경험이 없어서 못 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새로운 시작할 수 있겠는가? 거절당하는 경험도 좋은 경험이다. 거절을 여러 번 당하고 수락을 받으면 더 기쁘다. 한스 컨설팅의 한근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라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니까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고. 나는 영어로 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통역대학원을 준비한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 정도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3년 동안의 싱가포르 경험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할 수 있었다. 프랑스어로 먹고 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영어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지정의 知情意를 가진 존재라고도 한다. 지식과 감정과 그리고 의지. 우리는 어떤 정보나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그런 다음 다리를 움직여 행동으로 옮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수단으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세 가지를 구분했다. 연사의 논리, 청중의 감정, 그리고 연사의 인격을 말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우리 신체의 머리, 가슴, 다리의 비유라고 생각하고 싶다. 머리로 이해했고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면 다리로 행동해야 한다. 머리-가슴-다리로의 이행은 ‘지금 당장’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성질 급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기회를 얻기에는 유리하다. 나는 미세스 왕을 만나게 해 준 남편에게 늘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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