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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가르쳐준 친구 글렌

달리면 복이 와요

by 민혜숙

나는 마라톤 42.195km라는 거리를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써왔다. 예를 들어 중1 되는 아이에게 고3을 지나 수능까지 가는 긴 레이스는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너무 전력 질주를 하면 안 되고 6년을 잘 계획해서 뛰어야 한다는 식이다. 자주 마라톤을 비유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실제로 그 긴 거리를 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마라톤 선수는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운동을 정말 싫어했던 내가 마라톤까지는 아니지만 5km를 30분 정도에 뛰는 달리기 애호가가 되었다. 그것은 다 친구 덕이다. 그 친구의 닉네임은 글렌.


남편이 5년 전쯤 마라톤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냥 살을 좀 빼려고 하나보다 했다. 처음 10km에 도전할 때는 그냥 반가웠다. 그러다가 하프코스 즉 21km에 도전할 때는 조금 걱정도 되고 그게 최고의 목표인 줄 알았다. 그런데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할 때 처음에는 말렸다. 그건 보통 사람들이 하는 목표가 아니라 정말 전문가에게 코치를 받은 선수만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취미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중에 풀코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다. 뜯어말려야 할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어야 할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친구 덕이다. 바로 글렌! 글렌은 마라톤 정도가 아니라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산을 달리는 산악마라톤까지 하는 내가 보기엔 마라톤의 산신령이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코치가 선 선수의 기본기 훈련을 무려 7년이나 했다는 것을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에세이집에서 읽고 너무나 놀랐다. 2~3년만 기본기 연습을 해도 길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들인 것이다. 축구 경기를 뛰기 위해서는 수년에 걸친 기본기 훈련이 필요하듯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개인 훈련이다. 기초체력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근력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서너 명이 뛰는 동호회 활동을 했다. 남편은 그 동호회에서 글렌을 만났다. 주중에 한 번 만나서 뛰고. 가끔 토요일 새벽에 만나 뛰고 나면 글렌은 우리 집에 와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다가 저녁 식사도 같이하고 차도 마시면서 남편과 나와 글렌 세 사람은 음악 미술 체육으로 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고 미술관 가는 걸 좋아하고 달리기를 좋아하니 음미체 찰떡궁합이었다.


글렌은 나에게 달리기가 얼마나 몸과 정신의 건강에 좋은지 설명해 주었고 3~4km 정도면 지치는 나에게 5km까지 뛰도록 격려해 주었다. 나에게 2016년 불면증이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운동을 안 할 뿐 아니라, 운동경기 중계방송도 안 보고, 운동선수 이름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불면증은 내 삶을 황폐하게 했다. 잠을 잘 잘 수 있게 하는 건 뭐든지 한다는 생각으로 절박해진 나는 헬스장에 가서 주야장천 러닝머신에서 러닝은 안 하고 워킹만 하던 나에게 달려 보라고 한 건 남편이었다. 뛴다고? 고등학교 다닐 때 체력장 하면서 오래달리기 해본 것이 나의 마지막 달리기 기억이었다.

남편의 강권에 못 이겨 집 근처 공설 운동장으로 갔다. 한번 달려 보니 할만해서 운동장 400m 트랙을 처음에는 두 바퀴. 점점 늘려서 10바퀴도 달리게 되었다. 러닝머신을 뛰다가 땅을 밟고 뛰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축구장의 초록 잔디는 힘이 나게 했다. 남편이 몇 바퀴 돌았는지 세지 말고 그냥 몸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 달리라고 해서 그냥 달렸던 그 날. 생애 처음 2km를 달렸고, 돌이 된 아이가 생애 첫걸음을 디딘 것처럼 기쁘고 놀라웠다. (내 딸은 걸음마를 할 때 함박 웃음을 지었다. ) 달리는 기쁨을 조금 알게 되었을 때 글렌은 우리집을 자주 방문해 주었다. 글렌은 여행을 가면 나와 딸을 위해 작은 기념품을 세심히 골라 선물해 주었다. 더 잘 뛰라는 격려로 생각했다. 글렌이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리기하면서 나는 달리는 것이 삶을 가장 밀도 있게 사는 것이라 느꼈다. 사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변하는 오색 창연한 꽃들과 나무를 품고 있는 아산 신정호를 달리는 것은 이어령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밀’한 삶을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5월 말부터 붉은 장미가 피어나 그 향기에 취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연꽃이 한 송이씩 피어나고 있다. 정말 꼼짝 않고 집에 누워 있고 싶을 때도 밖에 나가 뛰면 정신이 번쩍 난다.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서 뛸 때, 내 몸을 감싸는 바람과 나의 숨소리가 하나 될 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글렌은 2019년에는 딸아이와 남편이 릴레이로 마라톤 풀코스를 뛰라고 권해주었고 딸아이를 주말마다 만나 22km를 뛸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 주었다. 그래서 남편과 딸아이 세린이는 2019년 서울 국제 마라톤대회(구 동아 마라톤대회)에서 잠실 운동장의 결승선을 넘는 영광을 누렸다. 아빠가 처음 20km를 뛰고 세린이는 두 번째 구간 22.195km를 달렸다. 남편은 딸아이가 지칠까 봐 마지막 7km 정도를 같이 뛰어주었다. 부녀가 잠실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달려올 때 사진을 찍는 내 가슴은 사정없이 뛰었다. 심장이 귀에 달린 줄 알았다.


C.S.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에서 우정에 관한 부분을 보면 우정은 ‘생존 가치’가 아니라 ‘문명 가치’라고 정의했다. 에로스가 없다면 생존이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해야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우정이 있기에 개인은 자기 세계에 ‘문명’을 만들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남편은 글렌을 만나 마라톤을 할 수 있었고 나는 곁다리로 옆에 있다가 마라톤까지는 아니지만 10km까지는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꾸준한 연습과 노력. 이것은 우정의 힘으로 가능했고 우리만의 ‘문명’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글렌은 우리 부부에게 큰 나무와 같다. 글렌은 올해 여름에는 유럽으로 날아가 몽블랑을 뛰는 산악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그냥 그 옆에만 있어도 클 것만 같다.

박노해의 시 <진실>는 이러한 성장의 맛을 보여준다.


큰 사람이 되려고 까치발 서지 않았지

키 큰 나무숲을 걷다보니 내가 커졌지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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