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프랑스 문학
아버지: (퇴근 후 현관문을 여시며) 어! 집안에서 담배 냄새가 나네.
나 : 아 그게 남자 동창 친구들이 왔다가 갔어요.
아버지 : 그래도 방에서 담배를 피우진 말아라.
나: 네...
(몇 시간 지난 후)
나 : 아버지, 아까 그게... 제가 담배 피운 거에요.
아버지 : 그래? 담배 피우면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니, 아니면 가슴이 시원해지니?
나 : 머리가 띵하고 속이 약간 울렁거려요.
아버지 : 그럼 끊을 수 있는 때니까 어서 끊어라. 중독되기 전에.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 몰래 담배를 피워보았다. 아버지는 나를 혼내시지 않고 초장에 금연하라고 충고하셨다. 담배를 산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문학가들이 담배를 물고 또는 손에 들고 흑백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였다. 프랑스 문학을 하는 나는 담배를 꼭 피워야 할 것만 같았다. 담배는 사고의 돛대라고 친구가 부추기기도 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인간의 조건>를 쓴 앙드레 말로와 내가 일견에 반해버릴 만큼 잘 생긴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의 사진에도 담배가 있었다. 여성이 버젓이 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기시된 한국 사회에서 담배를 숨어서 피우는 건 불편한 일이라 나의 담배 일탈은 중독으로 가지는 않았다. 20대 나의 프랑스 문학에 대한 애정을 독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나타내고 싶어서 담배도 피워봤다.
프랑스 문학연구 포기
열정을 바치던 프랑스 문학 공부를 그만둔 지 25년이 흐르고 프랑스 문학은 나에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며칠 전 정지우 작가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읽다가 라캉, 들뢰즈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이 나와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너무 오랜만에 나를 괴롭혔던 헤어진 옛날 애인을 느닷없이 만난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지만, 복잡하고 심오한 그 심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헤어져야만 했던 그 애인을 주말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만난 느낌이랄까. 프랑스 철학자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문학이론가들은 나의 옛 애인들이다.
90년대에 대한민국은 인문학 연구로서 구조주의라는 열풍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90년대 중 후반 동안 불문학 공부를 하면서 대학원에 있을 때 학위논문을 쓰기 전에 이수해야 하는 세미나 과목들이 있었다. 언어학자, 철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의 글을 그것도 ‘프랑스어’로 읽는 독서의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라캉이나 크리스테바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읽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을 찾아서 읽었다. ‘이해시킬 수 없으면 교란시키라’는 프랑스인들의 농담을 적용한 해설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해설서도 이해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가지고 공부할 때, 교수님이 영어로 된 해설서를 읽어보라고 하셔서 그 책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영어영문과 갈걸’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극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나선형 DNA처럼 복잡한 이론을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영미권 학자는 이해가 되도록 글을 써 주었다. 프랑스어가 나선형 구조라면 영어는 직선형 구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프랑스어를 읽다가 영어를 읽으면 왠지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다가 주머니를 떼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문법과 어휘 같은 언어적 차이도 있지만, 미국인들과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의 차이인 것도 같다. ‘프랑스인들은 사변적이고 미국인들은 실용적이다’라고 감히 일반화시켜본다. 이건 미키김이 프랑스인은 why에 관심이 많고 미국인들은 how에 관심이 많다고 한 것과 통하는 말이다. 아무튼, 프랑스어는 복잡하다. 프랑스어는 음성적으로 아름답지만, 결코 외국어 학습자에게 아름답지 않다.
대학원 2년 차 즈음, 이어령 교수님이 만든 기호학회에 우리 학과 교수님이 참여하고 계셔서 기호학회에 갔다가 느낀 건 ‘아 국문과 갈걸’였다. 어떤 문학작품을 분석하려면 일단 그 작품을 수십 번 읽어서 훤히 꿰차고 있어야 하므로 모국어로 작품을 읽고 연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국문학자에 대해 부러움이 가슴에 일렁거렸다. 그날 학회에 참가한 다른 교수님들의 이론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어령 교수님의 김소월 시를 분석한 발표는 가장 잘 이해가 되었었다.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처음 배우고 좋아서 시작한 불문학은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었다.
고등학교 때 초보 프랑스어를 겨우 배우고 대학교 3학년부터 문학작품에서 비평이론으로 넘나드는 것은 엄청난 비약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파파고가 없던 시절, 번역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아마 번역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도움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공 서적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줄을 치는 게 아니라 이해한 부분에 줄을 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매일 울고 싶었다. 나는 박사 논문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된 시점에서 이 애인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버리고 나서 얻은 것
결국 나는 문학 공부를 그만두고 잠시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긴 세월을 낭비했다고 생각했다. 박사과정에 있는 똑똑한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나를 선택했을 텐데 공부를 포기한 나를 보고 ‘사기결혼’이라고 하지 않아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공부를 포기할 무렵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아 정신없이 육아하면서, 새로운 경력을 만들어야 했다. 가르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한국어 강사, 직장인반 강사, 노인복지관 강사, 검정고시반 강사와 과외선생님을 했고 통역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월이 흘렀다. 10년 전 쯤, 풀지 못한 수학문제에 대한 미련 때문에 끄응하면서 문제를 들여다보듯, 우치다 타츠루의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를 읽었다. 푸코,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을 쉽게 읽도록 만든 책인데 이론을 잘 정리해 놓아서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리고 나서 라깡이니 바르트니 다 잊어버렸다. 다 잊어버렸어도 남은 것이 있다. 쉽게 읽히든 아니든 책들을 공책 정리하면서 읽는 습관은 아마도 학위논문을 쓰느라 애썼던 부산물인 것 같다. 문학 연구가의 꿈은 깨졌지만, 나는 독서가라는 깨진 꿈 조각을 얻었다. 가르치는 사람은 계속 뭔가를 읽어야 한다. 투입이 있어야 산출이 있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깨진 꿈 조각은 내가 읽고 쓰는 것을 계속하게 했고, 읽고 쓰는 행위는 소비행위를 할 시간을 줄여주어서 나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예전에 나는 글쓰기의 꽃은 학위논문이라고 생각했다. 논문은 양반의 글쓰기이고 에세이나 일기 같은 사적인 글은 그냥 아무나 쓸 수 있는 일반인의 글이라고 생각했다. 글 어떤 ‘소속과 지위’를 가진 사람만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21세기가 되고, 글의 매체가 다양해지고 ‘소속과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책으로 나오면서 텍스트 권위주의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책들이 나오고 어깨에 힘이 빠진 다양한 글들을 읽으면서 독서가 더 풍성해지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랑하는 프랑스 문학이라는 애인과 헤어진 슬픔을 과외 선생님이라는 남편을 만나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시적 언어와 문학 언어에서 일상어로 내려오니 날아갈 것 같았다.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로, 영어가 아니라 나의 모국어로 내려오는 이 하강의 기분은 아마도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에서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다. 어려운 외국에서 편안한 모국어를 만난 기쁨, 어려운 논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쁨. 하강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