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쓰자!
적자 생존 즉 적는자는 살아남는다
엄마 : (하루 투어를 마치고) 아들아, 이렇게 멀리 좋은데 여행을 왔으니까 가이드님이 해설하는 걸 잘 들어야지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잘 안 들리잖아.
아들 : 엄마는 그렇게 많이 들으셨는데 뭐가 기억에 남으세요?
엄마 : 아 그러게, 많이 들었는데 기억나는 것 별로 없네.
며칠 전, 지인분이 해준 말씀이다. 유럽에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열심히 관광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고개도 많이 끄덕였는데 왜 뭘 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지 모르겠다 하셨다. 나는 해설을 그냥 들으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게 당연하고 뭔가 메모를 하고 그걸 다시 되씹어야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드렸다. 모든 학습이 그러하듯 단순히 한번 듣기로는 감당이 안 되고 손으로 적는 수고와 다시 읽고 그걸 또 내 언어로 쓰는 일까지 하면 좀 기억에 남아 시험이라는 관문도 통과하여 삽시간에 잊히는 망각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것 같다. 학자들의 망각 곡선에 의하면 한번 들은 것을 일주일이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0에 이른다. 그래서 뭔가를 써 두는 일은 단순히 기록의 의미도 있지만, 인생이라는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왜 쓰지? 기억하려고
나는 쓰는 것을 입시 교육을 통해 배웠다. 중고등학교 때 칠판에 선생님이 한가득 써 놓으면 그것을 열심히 옮겼다. 칠판에 쓰는 것도 귀찮아하는 선생은 나에게 공책을 내밀면서 날 더러 칠판에 쓰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칠판에 쓰고, 친구 공책 빌려서 똑같은 걸 내 공책에 한 번 더 썼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 수업 시간에 졸고 나면 공부 잘하는 친구의 공책을 빌려다 베끼고 졸음의 공백을 채웠다. 시험공부 할 때는 공책을 보고 달달 외우고 나서 다시 연습장 백지에 암기한 것을 다시 써 나갔다. 이런 공부법을 공신 (공부의 신) 강성태 선생은 백지 공부법이라 했는데, 그건 매우 클래식한 공부 방법이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복사기조차 없던 시절에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런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쓰는 습관은 평생을 가고 있다. 나는 모든 강의는 메모한다. 목사님 설교도 모두 적는다. 적어놓은 것을 다시 보는 일이 없을지라도 강의나 설교를 적으면서 들으면 고도의 정신 집중이 돼서 졸지 않는다. 노트 필기를 한다는 것은 현재 듣는 것을 이해하면서 들은 것을 요약해서 적는 정신과정이다. 단순히 베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듣는 것도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멀티 테스킹이다. 희한하게 나는 들으면서 쓰는 것이 몹시 즐겁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쓰는 것일까? 우선 기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도 찍을 수 있지만 어쨌든 사진은 순간에 지나지 않고 느낌과 여정의 세부 사항을 다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여행기를 쓴다. 사진이 순간의 점들이라면 점들을 이어서 선을 만들고, 선을 이어서 여행 즈음에 내가 읽었던, 또는 들었던 내용을 버무려 적어 놓으면 한편의 큰 집을 지은 성취감을 느낀다. 여행은 나에게 큰 비용을 치른 귀한 시간이라 뭐라도 남겨 놓아야 할 것 같아서 적다 보니 블로그에 여행기가 많이 쌓였다. 적을 것을 생각하며 보는 사물은 더 자세히 보고 관찰하게 되고, 적을 것을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의 말은 더 귀 기울여 듣게 한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쓰는 행위는 사람과 사물을 더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적기를 생각하면 좀 에너지가 들기는 한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건 늘 에너지가 드는 것 이니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사랑하는 존재에게서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은 이름이다. 미술관에 가면 작품의 제목이 있고 작가가 있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기억하는 것으로 감상이 시작되는데, 소박한 감상자로서 작가의 삶과 작품 해설을 소상히 읽어보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이번 여름 휴가로 진도 여행을 갔다가 들린 군산 근대건축관에서 강용면 작가의 <민족의 함성>이라는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사진으로 작품과 해설을 찍어서 집에 와서 강용면 작가를 검색해 보고 다른 작품도 보면서 작가가 울분을 작품에 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울분은 최근 김훈 선생의 <하얼빈> 작품에서 본 청년 안중근의 울분과 연결되면서 소설과 조각 작품이 중첩되는 감동을 받았다. 감동을 다시 반추하면서 기록하면 강용면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기억할 것이고 나의 여행은 세월이 지나도 기록은 가지런하게 남을 것이다. 써 놓았던 글을 몇 년 후에 읽어보면 사진만큼 선명한 감동의 선명함을 보고 나는 즐거워할 수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도 살아가지만, 미래에 내가 추억할 시간을 저장한다는 의미에서 적는 행위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사는 것이다.
왜 쓰지? 내 자식을 위해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내 아이를 위해서다. 고등학생들과 수능 기출문제를 풀다 보면 교육학이나 심리학 주제의 글들을 종종 만난다. 2019학년도 9월 모의고사 21번. 심리학자 에릭슨의 주장을 담은 글이었다.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돌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부모가 되는 것이고 에릭슨은 이 욕구를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런 돌보는 욕구는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나타나고, 부모는 이 책임을 완수하면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헌신적인 관계를 만들고 아이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한 인간으로 온전해지는 길이라고 나는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는 헌신적인 것의 한 형태로 아이에 대한 기록을 잘해 두는 방법을 택했다.
서천석 교수는 항상 말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라고. 좋은 부모로서 자녀를 잘 키우려면 자녀를 잘 알아야 하기에 열심히 적었다. 태어나서부터 육아일기를 3년쯤 썼는데, 하도 먹지를 않아서 우유는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려고 적기 시작했다. 쓰면서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에게 이유식을 더 잘 먹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등의 노하우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안고 서고 걷는 과정, 말을 배우는 과정 등을 적었다. 정보가 너무 없던 시절에 경험이 나의 선생이었다. 우유 먹이고 트림시키는 것도 몰라서 트림을 안 시킨 아가의 눈동자가 중앙으로 모여 사시가 되는 모습을 보고 큰일 난 줄 알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던 무지한 엄마의 소중한 정보통이 육아일기장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키가 작았는데 전교에서 1등으로 작았다. 4학년 봄 3월. 생일이 12월이라 만으로 9.2세 정도 되었을 때 키가 128cm. 겨울부터 5개월 이상 키가 전혀 자라지 않아서 동네 소아과에 가서 성장판 검사를 하고 예상키를 측정했는데 예상키가 147cm. 150cm도 되지 않아 이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 서울의 대형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아이가 작으니까 태어나서부터 매월 신장과 체중을 재서 엑셀 파일에 정리해 둔 것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9년간의 키와 몸무게 변화표를 보시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을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이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다고 했다. 그래프를 보고는 아이는 155정도는 충분히 자랄 수 있을 거라고 하셔서 우리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택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식물처럼 겨울에는 잘 성장하지 않고 봄과 여름에 많이 큰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자라지 않은 것은 정상이었다. 1년에 4cm 이상 자라고 있으니 정상이라고 결론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아이는 157cm의 성인이 되었다. 작은 키지만 나는 만족한다. 키와 몸무게를 꾸준히 적어놓은 이 숫자들은 내 아이의 사진과도 같다.
왜 쓰지? 과거를 보고 힘을 얻으니까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 나는 과외 수업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과 읽고 있는 책의 요약본을 열심히 쓰고 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다. 과거에 내가 했던 일들을 돌아보면, 그것도 적어놓은 것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게 한다. 미래의 계획으로 내 머릿속이 꽉 찼던 40대가 가고, 자꾸 추억을 소환해서 그리움으로 채우는 나이가 되었다. 육아에서 자유로워 져서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일만큼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일기, 독후감, 여행기, SNS에 올렸던 글, 기도문, 오래된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위기와 혼돈의 시기는 길었으나 기쁨의 순간도 정말 많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육아일기가 육아에 지친 나에게 힘을 주었듯, 요즘 쓰고 있는 나의 학생들과의 이야기가 미래에 힘을 줄 것으로 여기고 계속 쓰려고 한다.
지난달에 안도현 시인이 충남 예산 향교에 와서 강연하셨다. 강의를 마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제자매가 모여 어머니의 연표를 만들어 봤다고 했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나와 남편의 연표를 만들어 보려고 공책 하나를 샀다. 지난 수십 년간 쓴 수첩을 모두 꺼내 읽어보면서 써볼까 한다. 이 공책이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었다고 할머니가 된 나를 위로하고, 오래된 사진첩처럼 내 아이가 부모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일을 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