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린: (카톡으로) 엄마! 계란 6개에 3,700원이면 비싼 거에요?
나 : 음... 하나에 600원이 넘으니까 좀 비싸네.
세린 : 그럼 좀 더 걸어가서 큰 수퍼에서 살게요.
나 :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데 그냥 거기서 사.
세린 : (10분 후) 엄마! 우산 두번 뒤집혀가며 샀는데 계란 10개에 4천원! 하하!
초보 엄마와 언어혼란
세린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어찌하는지 몰라 좌충우돌했다. 친정어머니가 며칠 도와주시다가 너무 힘에 부쳐서 1999년 당시 신개념이었던 집 근처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에 들어왔다. 엄마는 나에게 ‘딸을 낳았으니 평생 친구 하나 얻은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저 콩알만 한 아이가 어찌 나의 친구가 된단 말인지 아득하기만 했지만, 어느새 세월이 흐르고, 나는 성인이 된 딸에게 순두부에 넣을 계란을 사는데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일상 속에서 나는 딸아이를 친구로 여긴다.
평생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6개월을 지날 무렵 싱가포르로 갔다. 나와 아이는 싱가포르에 살고, 남편은 여객선을 타고 1시간가량 떨어진 인도네시아 바탐 섬에 있는 일본회사에서 일했다. 그래서 주말부부가 되었는데 바다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이 뛰어 달려올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심지어 남편도 없이 외국에서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육아를 혼자 하겠다고 용감히 떠났던 것이다. 이 상황은 박지현 작가가 <참 괜찮은 태도>에서 취재하며 쓴 조기잡이 하러 나간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새벽에 일어나 망을 바다에 던진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아내는 아이가 화상을 입었다고 전하지만 아버지는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책 속의 아내처럼 나도 아이가 응급실에 가야 할 만큼 밤에 열이 많이 났을 때, 남편에게 집으로 올수 없는 것을 알지만 전화를 했다. 싱가포르는 자가용에 세금이 하도 많이 붙어서 우리는 차도 없었고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거나, 유일하게 차가 있었던 장로님께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드렸다. 장로님과 병원에 다녀오면서 아이 바람이라도 쏘이라고 공원에 갔을 때 나는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열이 오르면 지옥으로, 열이 떨어지면 천국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지구로 내려온 기분이었다.
남편도 없는 ‘독박육아’는 나에게 완벽한 도전이었다. 하루 24시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와 함께 있자니 견디기 힘들었다. 우울감이 컸던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지 않았다. 그냥 밥을 먹이고 아이를 안고 업고 집안일을 했다. 초보 엄마는 아이에게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것도 모르고, 밤에 아이가 잠이 들면 나 혼자 책을 읽었다. 세린이는 만3세 까지 하루 종일 엄마와 단둘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활동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모국어가 결핍된 상황에서 아이는 영어를 접하게 되었다.
TV와 비디오에서 영어를 들었고, 아빠와 엄마에게 한국어를 들었고, 다섯 살이 돼서 어린이집에 가서는 중국어를 들었다. 이러다 보니 언어혼란이 생기고,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도 별로 자기표현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그 나이에 한글을 가르친다는데 세린이는 우리말 자체를 잘하지 못했다. 싱가포르를 떠나 뉴질랜드에 잠시 이민 갔다가 귀국해서, 유치원 생활을 마치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학교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아이의 어휘력이 너무 부족하니 어머니가 특별히 지도해 달라고!
아이와 같이 동화책 읽기
초등학교 1학년부터 나는 정신 차리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화책 읽고 이야기하는 학원에 보내면서, 나는 슬슬 동화책 읽는 재미에 빠져 아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종오 작가의 <시아버지 길들이기> 같은 책을 여러 번 같이 읽으면서 아이와 같이 킥킥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쁜 시아버지를 며느리가 골탕 먹이는 장면이 너무 통쾌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책을 다시 보면 웃음이 나온다. 시아버지가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며느리에게 문안 인사 오라고 하자, 아래 사람의 문안 인사를 받으시려면 시아버님 자신이 조상님께 문안을 드리는 게 예의라고 며느리가 주장한다. 산꼭대기에 있는 조상님 묘에 새벽부터 다녀오기를 며칠 하더니 시아버지는 새벽부터 너무 지쳐서 문안 인사를 그만하자고 한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불편한 편의점>의 주인공이 진상 손님들을 멋지게 휘어잡아 버리는 것처럼 통쾌했다. 나와 아이는 책의 주인공과 같이 공감하면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언어혼란을 빨리 평정해야 했기에 나는 부지런히 동화책을 읽고 나서, 아이에게 주인공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고, 주인공에게 편지를 써보라하고, 동화책 뒷이야기도 꾸며보라하고, 등장인물을 그려 보라고 했다. 유아기 때 엄마와 대화부족, 국어, 영어, 중국어가 혼재하는 바람에 언어혼란을 겪은 아이와 독후 활동을 충분히 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는 큼직한 공책을 사서 독서록을 만들고 계속 동화책을 읽어나가면서 아이는 국어를 정상적으로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동화책으로 언어혼란은 끝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어설프게 입력되었던 영어 중국어가 지워지고 모국어가 자리를 잘 잡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읽으면서 동화책 속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사랑, 우정, 희생, 정의 같은 가치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가치들을 부모로서 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동화책은 아이의 언어문제도 해결해 주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해주었다. 태어나서 0세부터 3세까지가 그렇게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이에게 무뚝뚝한 엄마와 함께했어도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란 것이 늘 감사하다. 심리학자 M 스캇 팩은 열악한 유아기와 유년기를 보내도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신의 은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에 열렬히 동의한다. 열악한 언어환경에 자란 아이가 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된 것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의지'라오
대학교 4학년이 된 딸아이는 아직도 나를 애먹이기도 한다. 기차 타고 집에 내려와야 하는데 기차를 놓치고 늦게 오거나, 기차를 타고 있어야 할 시간에 전화나 카톡이 안돼서 애간장이 타게도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도 잦고 방 정리도 잘 못 한다. 이런 아이에게 소리지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데, 오늘도 그만 전화에 대고 ‘도대체 너는 왜 그러니’하고 소리를 쳤다. 아침에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간다는 애가 늦잠을 자는지 10시가 넘어도 전화와 카톡이 불통이었다. 자취방 주인장이 깨워서 일어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전화를 끊고 곧 후회했다. 오후에 갈 수도 있는데 아침부터 안 일어난다고 소리를 질러서 미안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는 사실을 까먹은 나. 좋은 친구가 되려면 상대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봐야한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버럭 화를 내면 안 되지 않는가? 며칠 전 한 영상에서 미국 어린이가 이렇게 말했다.
친절함을 선택하세요. 특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
Choose kindness, especially, when you don’t want to.
딸 때문에 때로는 화가 나는 일도 있지만, 전화로 계란값을 물어올 때처럼 평생 친구를 얻은 느낌으로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다. 독박육아에서 동화책 읽어주기와 의지를 가지고 친절함을 택하는 노력까지. 내 딸은 나를 인내심이 제법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