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가이드님과 아침에 9시부터 점심시간까지 반나절을 가이드 관광을 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여유있게 하자면 7시30분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8시 10분에야 일어나 허겁지겁 준비했다. 늦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달나라로 간 사이, 옆 호실에서 잔 학철씨가 일어나라고 여러 번 카톡으로 메시지도 보내고 음성통화로 전화도 했지만 나는 계속 못 받았다. 항상 느긋한 김세린 양은 9시 출발이니까 8시10분까지도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면 저렇게 느긋할까. 기치 시간이든 약속 시간이든 정각에 맞춰 뛰어가는 습성은 언제 고치려는지 걱정이 많이 된다.
급히 일어나 사과와 빵과 요구르트 커피 토마토를 얼른 먹었다. 밤에 잠을 자주 깨서 늦잠을 잤다. 이상하게 여행 중에 먹고 있는 신경안정제는 효과가 전혀 없었다. 여행의 흥분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너무나 강렬한 감동을 주는 강한 예술적 감흥으로 인해 호흡이 곤란해지고 의식을 잃을 것 같은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 스탕달처럼 내가 숨이 멈추거나 쓰러진 건 아니지만 여행의 감동이 며칠 동안 차곡차곡 내 의식에 쌓여 계속해서 뇌가 활성화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
가이드님은 수요일 마운크쿡에 갈 때는 밴으로 우리를 이동시켜주셨는데 오늘은 택시를 몰고 오셨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옷을 두툼하게 입으라고 당부하셨다. 어제 헤글리 공원에 갔을 때는 30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 30도라 함은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40도는 되는 이상고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최저 온도가 10도 정도로 곤두박질. 아침 공기가 차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너무 추웠다. 여름에서 갑자기 초겨울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늦잠을 자서 정신이 없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에 더 정신이 없다.
우리는 편안하게 택시를 타고 우선 리틀턴 Littelton 이라는 항구로 갔다. 멀리 외국에서 들어온 크루즈 배들이 떠 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날씨가 바람이 불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다. 크라이스트처치는 25도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데 어제는 거의 30도에 이르러 어제처럼 더운날이 드믈고,또 오늘처럼 추운 날도 드물다고 하신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만큼이나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사람들이 여름옷 봄옷 초겨울 옷을 다양하게 입고 다닌다. 어제 트래킹할 때 거의 수영복 차림의 여성에서 경량 패딩까지 입은 사람까지 다양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다양한 패션 다양한 언어 다양한 자연 등 다양성의 극치를 보이는 이곳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편안하다. 다양한 것이 밖에서 보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편안하다.
갑자기 유현준 작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에나온 문화적 특징이 생각났다. 동양사람들은 논농사를 짓느라 서로 협동하고 살아가야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발전했다고 한다. 모내기는 여러 집이 모여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 하고 밀밭에 씨 뿌리는 것은 혼자서 바람에 날리며 뿌리면 된다고 한다. 태생적으로 동양인인 나는 사람들과의 조화를 나의 개인적인 생각보다 우선하는 성향이 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예산이라는 작은 지역사회에서는 더욱더 개성보다는 안 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멀리 여행을 나와 일상과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 나라에는 명품이니 브랜드니 하는 개념은 여기에 없는 것 같다. 피에르 브르디외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법칙이 소비를 통해 남과 구별되는 거라 했는데 여기 크라이스트처치에는 구별되려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각각 개인은 각자의 표현을 하며 사는 것 같다. 퀸스타운과 크라이스트처치 중심가뿐 아니라 공항에서도 명품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수퍼에서 파는 휘테커라는 상표의 초콜릿이나 뉴질랜드 특산품을 공항에서 팔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한마디로 자연이 인공물보다 우세한 지역이다.
바람 부는 리틀턴, 캐쉬미어, 섬너
리틀턴은 언덕 위에 집들이 총총 들어서 있다. 산동네 달동네 집이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고급 주택들이라고 한다. 마오리 문화를 대표하는 게이트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실제로 마오리 같은 사람들을 별로 만난 적이 없다. 위령탑이 있었는데 1차대전 참전자에 대해서는 정면에 그리고 측면에 2차대전 참전자에 대한 추모의 글이 있었다. 1차대전을 그냥 대전 great war라고 표현한 것은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2차대전이 일어날 것을 몰랐으니까 대전쟁이라고 했던 것이고,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세계대전이 또 일어나서 2차 대전이라는 말이 생겼다. 어리석음과 탐욕의 결과이고 죄라는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로마의 극악무도한 황제들, 히틀러, 일본 군국주의자들, 그리고 지금 전쟁 중인 푸틴까지 다 제정신이 아닌 미친 지도자들 때문에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라니 마음 아프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전장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이 편히 쉬기를 기원했다.
마을에는 책방도 있었고 마을은 강아지 동상도 있고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양초를 파는 작은 가게들 식당들 다 작고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어떤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의 기운이 없는 정말 한적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2층이 넘는 건물이 없고 차량도 별로 없는 그래서 활기도 없는 곳이었다. 열정적인 뉴질랜드 젊은이들은 모두 호주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떠난다고 한다. 시급이 17,000원이나 되고 대학생이 되면 100만 원이나 보조금이 나오고 대학가는 입시도 없고, 집을 짓는 목수나 요트 만드는 사람들이 은행원보다 급여가 높고, 의료와 교육이 다 무료이고 65세부터 연금 생활자로 살 수 있는 이곳은 유토피아와 같은 곳인데, 왜 청년들은 외국으로 나갈까? 뭔가 치열하게 열정을 바칠 것이 없어 지루해서일까? 지나친 경쟁도 지나친 편안함도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이동하여 캐쉬미어 Cashmere의 전망대에 올라가 크라이스트처치를 내려다보았다. 오종종한 주택들이 녹지 사이사이에 보인다. 아파트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네 풍경과 다르다. 전망대에 내려와서 타카헤 Takahe라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보고 정말 놀랐다. 이 작은 마을에 이렇게 오래된 건물의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이 있다니! 석조 건물은 우람한 2층 건물이었고 아름다운 창문이 발코니처럼 돌출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정면의 파란 유리문이 인상적이었다. 정원도 넓고 푸르르다. 결혼이나 파티 장소인가보다. 세린이도 이런 곳에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아빠의 진부한 논평을 거의 무시하는 세린이는 무심히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코발트 블루의 정문의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크리스마스 휴가로 모든 테이블과 의자가 안쪽에 마구 쌓여있고 문은 닫혀 있다. 지금이 여름이고 연말인데 12월 24일부터 1월 3일까지 열흘도 넘게 쉬다니 도대체 이 레스토랑은 장사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너무 긴 휴가에 어이가 좀 없다.
다시 Sumner라는 곳의 비치에 도착했다 .바위로 된 등대 위에 올라가 보니 이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서핑을 하고 있었다. 등대는 조세프 데이라는 사람을 기리는 표지가 있었다. 케이브 락 Cave Rock 이라는 동굴처럼 생긴 바위도 감상하고 카페에 들러 차도 한잔 마셨다. 바람불고 추운 날씨에 따뜻한 카페라떼가 기분좋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수수한 카페였다. 제주도의 카페들에 비하면 정말 소박하다.
가이드님과 한국의 정치, 교육, 의료, 부동산 이야기도 하고 다윈의 종의 기원도 이야기해주셨다. 다양한 지식과 견문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같이 대화하는 것이 즐겁고 좋았다. 한편 이 분이 없었다면 여행이 얼마나 밋밋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렇게 구석구석 시골의 아름다운 곳에 관광객으로서 오기 힘든 곳에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어 여름의 정취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New Brighton Pier 크라이스트처치 도서관을 둘러보고 도서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데크를 걸어가 보았다. 바다를 통창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도서관은 도서관계의 7성급 호텔이다. 날씨가 화창하면 책보다 바다에 시선이 더 갈 것 같다. 이렇게 해변에 위치한 도서관은 처음 본다. 내 소원이 걸어서 5분 이내의 도서관이 있는 곳에 사는 건데 이 동네 사람들은 정말 부럽다.
12시에 투어를 끝내기로 했는데 시간이 1시나 되어 호텔까지 데려다 주셨다. 점심은 호텔 근처 쌀국수집에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16불(13000원)이나 주었지만, 양도 적고 맛도 그닥 좋지는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인지 중국 사람들인지 이민 와서 자국어를 서로 쓰면서 일하는 모습에서 옛날에 내가 이민자였을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편 차를 시켰는데 얼그레이 티와 레몬과 꿀이 들어간 허니티는 직원의 실수로 식사가 다 끝난 후 내가 주문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고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리뷰가 좋다고 다 괜찮은 식당은 아니다. 리뷰는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믿을게 못된다. 허니티를 호텔로 가지고 와서 어제 산 레몬 파운드케익과 함께 마셨는데, 생각해보니 국수보다 차가 훨씬 맛있는 쌀국수집이었다. 백종원 선생님께 한 수 배워야 할 쌀국수집.
크라이스트처치의 아트 센터와 지옥 피자
식사 후 우리는 아트 센터에 갔다. 건물은 진한 벽돌과 흰색의 창문틀이 대조적인 건물이었다. 이게 건축양식은 ‘네오 고딕양식’이라고 한다. 1850년 영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리틀턴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였던 크라이스트처치니까 1800년대 양식일 듯하다. 아트 센터 첫 전시실에는 영국 지배하의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루터 포드의 실험실의 모습도 있었고 켄터베리 칼리지였을 때의 대강의실도 보았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강의실과 흡사했다. 책상에는 어마어마한 낙서들이 빼곡히 자리 잡아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센터의 전시실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 전시실에서 교과서나 미술사 책에서 흔히 보던 항아리와 항아리를 장식하는 사람과 동물을 보고 반가웠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필사본의 사본도 볼 수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전시해놓은 곳도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다시 지을 것이지 보수할 것인지를 놓고 10년도 넘게 논의하다가 최근 개축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팽팽한 양쪽의 의견대립이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으나 10년은 좀 너무 긴 세월이 아닐까 하는데 이것이 뉴질랜드인들의 일하는 방식인 것 같다.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이 에이번 강가에 설치된 벽에 쓰여있었다. 외국인일 경우 그 나라 문자로도 이름이 새겨졌는데, 한글로 써진 유길환 유나온 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검색해 보니 남매라고 되어있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면서도 지진의 상처를 안고 재생하는 도시의 모습은 용기 있는 시민들의 노력과 인내를 느끼게 해주었다. 천재지변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아트 센터를 나와서 우리는 아트 캘러리에 가서 현대미술을 보았다. 나는 현대미술은 도슨트의 설명이 없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뭔가 열심히 그림 아래 쓰여있는 글들을 읽어봤지만, 이해에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설치 예술이었는데 여러 개의 빨래건조대에 흰색 수건과 침대보가 늘어져 있었다. 작가는 그랜트 린가드 Grant Lingard 였고 34세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죽기 얼마 전에 제작한 것인데 제목이 백조의 노래 Swan Song이었다. 백조는 죽기 전에 아름답게 운다는 전설이 있다. 죽음이라는 dying과 건조대 drying rack의 drying이라는 두 단어가 운율을 이루면서 흰색이 처연하게 보였다. 강렬한 색조의 야수파나 표현주의 그림들이 많았고, 세린이가 관심을 보인 진동을 이용한 설치미술은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트 센터는 고대 미술과 전통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아트 갤러리는 현대적 미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작품들이 머리에 들어와 뇌가 얼얼한 상태였다.
갤러리에서 나와 어제 이불보를 하도 정신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사서 다시 백화점에 가서 영국 도자기 구경했다. 웨지우드나 로열 앨버트 같은 영국 도자기는 백화점에 있어도 되고 아트 갤러리에 있어도 될 물건들이었다. 몰스킨 수첩과 2023년 다이어리가 갖춰진 화려한 문방 제품 구경하면서 높은 가격에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튼, 살벌한 물가다. 백화점을 나와서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여행을 마무리하는 광장으로 갔다. 빅토리아 여왕과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조각과 에이번강이 흐르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조각상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은 우리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Hell 지옥 피자집에 갔다. 메뉴판을 보니 일곱 대죄에 해당하는 피자들이 있다. 그중 성적 욕망 피자 Lust Pizza를 작은 스낵 사이즈로 시켜서 호텔로 가지고 와서 맛나게 먹었다. 피자 이름들이 하도 재미있어서 메뉴판을 기념품으로 가져왔다. 저녁 식사는 과일과 어제 남겨둔 치킨 육개장 컵라면 2개로 훌륭히 마쳤다. 음식을 너무 많이 마트에서 입수한 결과 재활용할 페트병과 플라스틱 포장재료가 휴지통을 꽉 채우고도 남았다. 방청소 하시는 분들이 너무 놀랄 것 같아, 지옥 피자집 옆에 큰 휴지통에 있었다는 아빠의 정보를 듣고 우리는 저녁 먹고 나온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그 휴지통에 버렸다. 쓰레기 정리, 방 정리를 마치고 내일 떠날 짐도 쌌다.
만일 내가 뉴질랜드에 계속 이민자로 남았다면 하는 가정법은 계속 머리를 맴돈다. 뉴질랜드 사회는 정말 이상적인 곳인지, 한국 사회는 정말 문제적인 사회인지 양쪽을 비교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뉴질랜드와 한국 어디가 더 잘 맞는가 하는 질문도 해 보았는데, 내가 한국에 온 것은 모국어를 쓰고 싶어서라는 점은 여전히 확실하다. 영어는 나에게 넘사벽. 또 내 딸이 여기서 자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니까 가이드님 딸처럼 은행직원이 되었을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벌써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쉽지만 집에 가는 것도 반갑다. 이렇게 많이 걷고 잠도 잘 못 자고 있는데 왜 몸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을까? 좋은 공기와 물? 아니면 여행이 너무 좋아 흥분해서 그런가? 오후 2~3시면 밀려와야 하는 피곤함이 없었다. 집안일 하고 장보고 하는 일은 피곤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을 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귀국 길에 대형 물사고 발생
집으로 가는 31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가이드님이 아침에 호텔로 오셔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까지 데려다 주셨다. 공항에서 내리면서 같이 사진 촬영도 했다. 우리 여행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주셨고, 뉴질랜드에 행복하게 사시는 이야기도 잔잔하게 많이 해주셔서 고마웠다.
출국하는 것이다 보니 오클랜드에서 다시 짐 검사를 할 필요는 없어서 입국할 때보다 간편했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직원은 친절하게 우리 세 사람이 짐을 부치는 것을 친절히 도와주었다. 여유롭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기념품 가게에서 펌프 Pump라는 상표의 물과 위테커 Whittaker’s 라는 상표의 초콜릿을 사서 세린이 배낭에 넣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 오클랜드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보니 배낭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생수병 뚜껑이 어린이 음료수병처럼 생겨서 꼭지를 잡아당기면 열리고 꼭지를 눌러두면 잠기는 것인데, 누구의 실수인지 병마개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물병에서 물이 다 새어 나왔다. 책이 좀 젖은 것은 괜찮은데, 문제는 세린이 갤럭시탭이 젖었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얼른 물기를 닦고 화장실 핸드 드라이 기계에 좀 말렸다. 며칠 동안 전원을 켜지 않고 말리면 된다고 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혹시 물이 많이 들어가서 작동하지 않으면 내가 쓴 일기와 세린이가 저장해 놓은 모든 자료가 날아간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주저앉을 일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감동적인 여행에 검은 구름이 느닷없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괜찮기를 바라면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귀국 후 48시간 후 전원을 켰더니 기계는 다행히 별 이상이 없었다.정말 다행이라 가슴을 쓸어 내렸다)
11시간의 비행이었지만 1주일 동안 책을 읽지 못해서 책이 고픈 상태에서 책 읽고 밥 먹고 하다 보니 인천에 도착했다. 6년 전에 하와이 갈 때도 10시간 정도 비행시간이었지만, 허리도 아프고 발도 많이 붓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나의 체력이 좋아진 건지 좋은 여행이 나를 계속 흥분 상태로 유지하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무사히 힘들지 않게 귀국했다. 세린이는 뉴질랜드의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서, 서로 다른 상표의 쇼비뇽블랑 와인을 두 잔이나 마셨다. 유명한 만큼 맛이 좋았는데, 두 번째는 와인이 충분히 차갑지 않아 좀 아쉬웠다. 세린이가 어려 보였는지 여권도 보여달라고 했다. 와인과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면서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인천 공항. 피곤한 몸이었지만 우리말이 들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니 그간 영어 때문에 받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갑자기 긴장이 탁 풀렸다. 너무 반가운 우리말과 소리 한글에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