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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May 26. 2023

숙제를 많이 내라 하시면

숙제는 예술이라고 말씀드려요


나 : (기쁨이 어머니께 전화하고) 요즘 기쁨이가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숙제를 잘 못 해 오고 있어요.

기쁨이 어머니 : 아 그게 다 핑계에요. 숙제 많이 내주시고 못 해 오면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선생님이 늘 너그럽게 대해 주시니까 엄살을 피우는 거예요.

    

숙제는 단순하지 않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부모님들께 상담 전화를 한다. 과외 선생님은 수업만 하는 게 아니다. 중학생이 100점 맞거나 고등학생이 1등급을 받으면 부모님과 상담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런 학생은 많지 않고 100점과 1등급을 향한 학생이 대부분이다. 그런 열망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두세 과목의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심하면 네다섯 과목까지 된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과외와 학원에 지치고 나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생님께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숙제도 안 해오고 교재를 집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거나 어린 중학생들은 답지를 베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가 숙제를 왜 못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어머님께 전화한다. 그러면 대부분 자신의 자녀가 엄살을 피우고 있으니 혼내주고 숙제를 많이 내 달라고 부탁하신다. 단지 숙제 많이 내주는 거로 아이들의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숙제를 잘 내는 것이 과외 선생님 최대의 ‘교육 역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맞는 황금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 숙제는 예술이자 기술, 영어의 art에 해당하는 말이다. 숙제는 처벌이 아니다. 처벌은 손쉽고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 같지만 성급함의 오류일 뿐이다. 과다한 숙제는 결국 아이들을 더욱 절망으로 내몰고 공부를 혐오하게 만든다. 학습 정서를 망치고 학습 결손을 일으킨다. 어차피 못할 숙제이니 대충한다. 다량의 감당하지 못할 숙제를 하는 것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과 같다. 적절한 숙제는 영양분 많은 음식인데 잘 씹어 먹으려면 오래 걸린다. 제대로 문제 풀려면 오래 걸린다. 답찾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답이 왜 그렇게 도출되었는지 궁금해하다 보면 단어 찾고 해석하고 끙끙거린다. 그런데 패스트 푸드 같은 숙제를 하다 보면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3월 전국 수능모의고사 성적에 놀라고 영포자(영어포기자)라는 질병을 얻는다.      


과다한 숙제가 별 효과가 없다는 건 이미 17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밝혀졌다. 몽테스키외, 루소 같은 철학자들이 목숨 걸고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교회와 권력을 향해 외치던 시절에 이미. 법학의 고전을 정리한 책을 보다가 ‘체사레 베카리아’라는 이탈리아 법사상가가 쓴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형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명제는 현대 형법학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한다. 또 형벌이 잔혹하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며 범죄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시민에게 훨씬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처벌의 공포감을 주어서가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고 했다. 즉 범죄를 저지르고 요행히 처벌되지 않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범죄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에게 무자비한 숙제를 해야 하는 처벌을 아무리 해도 숙제를 잘 해오는 아이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숙제를 많이 내고 심지어 답지를 빼앗는 과외 선생님들도 있다. 답지를 빼앗기면 아이들은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답지 파일을 다운받아 답을 베낄 수 있다. 답지를 베껴도 선생님께 들키지 않기를 기대하고 숙제를 다 한 연기를 하거나, 교재를 학교에 두고 왔다거나, 며칠 동안 아팠다고 둘러댄다. 그런 학생들을 무시무시한 숙제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많다. 친구들은 집에 가게 하고 혼자 남겨서 숙제를 다 할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는 방법은 수치심과 괴로움을 동시에 줄 수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도록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벌을 성급히 택하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숙제의 예술을 택하는 게 나의 운명이다. 학생이 성취감을 느낄 만큼의 숙제를 내고 조금씩 늘려서 공부의 근육을 단련해주는 섬세한 방식으로 숙제를 내야 한다. 숙제의 양과 질을 결정할 때 학생과 대화를 하게 된다. 숙제를 못 해 온 아이들의 많은 이유를 들어주고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인정해주고 숙제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해준다. 답을 베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문제를 푸는 것은 극기심을 사용한 것이니 칭찬도 해주어야 한다. 답을 베끼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SNS, 게임, 각종 동영상의 물결을 피해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은 것이기 때문이다. 40년 전 나의 남편처럼 놀다 놀다 정말 할 게 없어서 공부라도 하자하고 책상에 앉은 게 아니다.     


납득할 만한 숙제

칭찬도 해주지만 경고도 해주어야 한다. 숙제하지 않는 학생으로 살면 그 결과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나는 드라마틱하게 말해주곤 한다. 중학생이면서 유복한 아이들을 나는 가르치고 있다. 사교육비를 상당히 지출하는 가정들이고 40대인 부모님들은 안정된 직장에 문화와 레저가 있는 삶을 사는 분들이다. 비슷해 보이는 환경과 공부할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아이들의 대학진학 결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원하는 직장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아이들이 이런 좋은 환경과 기회를 놓치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거기다가 농촌에 살기 때문에 농촌 특례입학이라는 기막히게 좋은 대학입시 특권도 있고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시험문제라 노력하면 점수가 오르는 구조인데도 공부를 안 하는 중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베카리아의 말하는 형벌의 피해갈 수 없는 확실성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할걸’하는 것이 대한민국 20대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하는 후회라는 통계 증명 된. 끝으로 1등급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과정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인정해 줄 것이고 그래서 시험 끝나면 떡볶이 같이 먹자고 약속도 한다.      


이런 노력을 한다고 학생이 모두 내가 의도하는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숙제의 예술을 이해하는 학생을 만나는 것은 과외선생님이 느끼는 희열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매개로 하여 학생과 관계를 맺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내 인생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나는 교육과 양육은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님은 공유하는 바가 많다.


중학교 학생들이 보는 독해교재에서 본 글이다. 남아프리카의 잠비아에 사는 바벰바라는 부족은 낮은 범죄율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범죄자가 생기면 그를 마을 광장 중앙에 두고 모든 사람이 나와 그를 둘러싸고, 범죄자에게 그동안 그가 한 좋은 일들을 상기시키고 칭찬을 해준다고 한다. 피해 입은 사람까지 그를 용서한 것이니 이 마을 법정은 판사와 원고는 없고 피고와 변호사만 있는 법정이다. 특히 사춘기가 꽃피고 전두엽 대공사 중인 중학생들에게는 처벌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격려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바벰바 부족민같은 선생님이 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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