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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May 15. 2023

가르치는 즐거움

아름다움을 서로 알아볼 때

지우 : 선생님 이책은 재미있는게 아니라 아름다워요.

나 : 아릅답다구?

지우 : (책을 품에 안고) 표현이 너무 아름다워서 황홀해요.

나 : 맞아! 황홀하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야.

책 읽는 소녀에 홀딱 반하는 순간

지우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라 내 딸이 그 나이 때 읽었던 책인 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를 빌려주고 읽어보라고 했다. 영어 수업을 하면서 독서 수업도 도와주는 멀티 플레이어 선생님을 하고 싶어서 한 달에 2권 정도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 때 마다 아이는 감동의 눈망울을 하고 책을 어루만지면서 감탄을 한다. 자신이 감동한 문장을 손으로 꾹꾹 눌러 공책에 써오기도 한다. 그 문장 중 하나는 이러하다.


'먼 남쪽에서 온 제비의 날개짓은 지치기는 했어도 단호하고 확실하다. 이미 봄을 맞이 하였고, 겨울의 끄트머리 바람이 아무리 매섭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봄기운을 확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랄까?'


책을 꺼내 보니 나도 이 문장에 줄을 그어 놓았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문장에서 멈춰 서서 천천히 여러 번 읽었구나 하고 기뻐했다. 아이는 이 문장에서 평안을 얻었고 황홀했다고 독후감에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초등학생에게 지겨운 영어 공부에 무슨 양념이라도 하듯 독서수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공부에 흥미를 유지시키는 좋은 방법인거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소개해 준다. 20대 중반이 되버린 내 딸이 중 고등학생때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을 주로 권해주거나, 최근 신간 중에 내가 읽은 책도 권해준다. 학생들 중에 책을 좋아하는 학생은 공부를 잘 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수학의 신 현우진 강사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200권의 책을 읽고 읽기에 득도를 했다고 말하는 영상을 보았다. 수학도 글을 읽고 깨닫는구나 싶었다.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학생이 작가가 창조해 나가는 문체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너무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한다거나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면 그런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책에서 많이 읽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책을 주고 천천히 읽고 마음을 흔드는 문장이 있으면 밑줄을 치라고 한다. 그런데 지우는 그 문장을 손으로 필사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공책에 적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


한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면 다른 작품을 자연스럽게 읽게 된다. 지우도 역시 안소영 작가의 다른 책 <시인 동주>을 읽었고, 아니나 다를까 또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나에게 <별 헤는 밤>을 낭송해 주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책을 통해 학생과 공감하고 그 순수한 마음을 선물로 받을 때면, 가르치는 건 바로 이 맛이야! 라는 말이 나온다. 즐거운 마음으로 들뜨게 된다. 그래서 은퇴하면 놀러다녀야지 하다가도 가르치는 일을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 계속 하고 싶다.


나는 없고 아름다움만 있을 때

 ChatGPT가 다 지식을 정리해주고 글도 써 준다고 하지만. 지우처럼 문장을 보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태도는 AI가 만들어 줄 수 없다.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아닌 사물과 사람에 대한 학생의 태도는 인간이 가르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심미감도 아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능력이 행복이 된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2023년 수능특강 영어 4강 3번에서 발견했다.아름답고 위대하고 선한 것에 우리가 헌신한다면 우리 인생이 의미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콘서트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심포니의 선율을 듣고 전율을 느낄때 '이 순간 하나로도 내 인생은 가치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서해안 꽃지 해수욕장에 가족과 함께 와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점심 먹고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와 사귀게 되었는지 여쭤보았다. 아버지는 그냥 군대 제대하고 시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갔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20대 청년이었을 때 엄마를 향한 마음이 저 붉은 해 같았을거라 상상했다. 그리고 수능특강 문제의 작가와 같은 어조로 이 순간 만으로도 내 인생은 가치가 있다라고 똑같이 말할 수 있었다. 서해안의 석양은 정말 소나무 사이로 해가 보여서 더 멋지고 아름답다. 바다가 온통 붉은 색이 되면 무아지경이 된다.


팀 켈러 목사님은 <자유>라는 얇은 책에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영 불편해 했다.  21세기 과대해진 자의식은 오직 자기 만을 생각하고, 자기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느라 안달이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불행해진다고 했다. 자존감이 높다 낮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내려 놓는 겸손함을 가지라고 했다. 내가 행복한가를 자꾸 질문하는 사람이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고, 나의 감정과 생각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계속 돈을 계산하는 것처럼. 지우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는 학생이 내 마음을 채울 때, 지는 석양의 짧은 순간이 주는 장엄함에 몸을 맡길 때 나는 충만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 자의식은 작아진다.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선함에 헌신하라는 말은 팀 켈러가 말하는 겸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정원에 장식으로 세워진 구조물에 쓰인 영어 문구가 들어왔다.


Sunsets are proof that no matter what happens, everyday can end beautifully. -Kristen Butler-

(석양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매일매일 아름답게 하루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크리스틴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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