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얘들아, 너희들은 왜 그 선생님들이 좋아?
학생 A : 똑똑하고 친절하고 젊으셔서요.
나 : 아이고 난 그럼 난 나이가 많아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는 거야?
학생 B :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젊어 보이는 선생님이 좋아요. 쌤은 젊어보여요!
지겨운 문법을 설명하다가 잠시 숨 돌리면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학교에 너희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시느냐고. 아이들은 앞다투어 선생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젊은 선생님이라는 말에 내가 태클을 거니까 젊은 선생님이 아니라 ‘젊어 보이는’ 선생님이라고 고쳐 말해주면서 나를 실망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써 주었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내려놓아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고 했다. 직장, 가정, 가족관계, 공동체, 모임 등에서 갖가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걸 다 해내느라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잊고 살지 말라는 충고이다. 한편 타인의 기대감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실험도 있다. 평범한 어린이들로 2개의 반을 만들고, 한 반에게는 영재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반에게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영재라고 생각한 아이들의 학급이 그렇지 않은 반보다 학습 성과가 좋았다는 심리실험도 읽어 본 적이 있다. 타인의 기대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데, 무엇이든 적절한 중간, 지혜로운 균형의 지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아이들의 기대를 내가 과외 선생으로 살아가기 위한 영양분으로 삼고 그들이 알아야 하는 지겨운 문법과 단어를 머리에 넣어주려고 늘 고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퓨전 수업이다.
인터넷 강의와 과외 퓨전
영어에서 문법이라는 산을 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이 산을 나는 인터넷 강의 (인강) 선생님의 손을 빌리고 있다. 주 1회 수업을 진행할 때 쓰는 방법이다. 문법은 이해하는 것이고 단어는 암기한다는 것은 잘못된 구별이다. 문법도 단어 암기처럼 새롭게 배우고 망각하고 다시 배우고를 반복해야 한다. 언어학자들이 외국어 단어를 처음 만나 완전히 암기하기까지는 약 7회 정도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7번 반복하는 것도 그냥 단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단어를 만나고, 일기나 단문 등으로 단어를 활용해보고, 원어민이 사용하는 단어의 활용을 듣기 자료에서 들어보고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단어를 활용할 때 암기가 된다고 한다.
문법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맥락에서 문법의 활용을 만나고 서로 다른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인강 선생님과 나의 설명을 동시에 듣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인강은 보통 소위 말하는 일타강사 중에서 고른다. 내가 추천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선생님을 택하고 그 교재를 아이들과 공유해서 인강 청취를 먼저 하고 교재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나와 수업을 한다. 틀린 문제 중심으로 문법 설명을 다시 해준다. 또 인강 선생님이 할 수 없는 칭찬이나 지적질도 하고, 간식도 같이 먹으면서 수다도 좀 떤다.
EBS 수능 강의를 듣거나 언어논리에 관한 인강을 신청해서 나도 많이 인강을 들어봤지만 30분 이상 집중하기 어렵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강사님이 지식을 꽐꽐 쏟아내면 머리에 모두 담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스크린 속의 인강 강사가 아니라 3차원의 세계에서 쌍방 의사소통이 가능한 과외선생님도 필요하다. 인강을 또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서 학생이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다시 강의를 듣도록 하고, 모든 강의를 2번 정도 반복해 들을 수 있도록 같이 계획을 세우고 진도를 나간다. 큰 그림은 내가 그려주고 작은 계획은 아이들이 세운다. 계획 수립과 실행 그리고 평가를 스스로 해보면서 자기 주도학습 효과를 기대한다. 과외를 하지 않는 다른 과목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보라고 한다. 한문 한국사 세계사 논술 과학 등 사교육의 가지 수를 늘리기 전에 자습서나 인강으로 우선 한번 혼자 해보라고 권한다.
이런 방식의 수업을 나는 줌으로도 실행하고 있다. 대전에 사는 학생과의 수업이다. 학생이 문법 강의를 인터넷으로 듣고 나면 학습한 부분에서 학생이 놓친 부분을 채우는 방식으로 수업을 한다. 틀린 문장 찾기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라면 왜 나머지 4문장은 틀렸는지 확인한다든지, 학생이 틀린 문제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물어본다든지, 무엇과 헷갈린 것인지 짚어준다든지 하는 방식이다. 줌수업이 가능해지니 이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과외수업이 가능해졌다. 수업을 받으려 멀리까지 가면 1년 이상 장기간에 걸친 일이라 시간과 돈의 부담이크다. 그래서 보통 부모님들은 되도록 집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선생님을 찾는다. 이렇게 글로벌 경쟁 상관없이 지역성이 매우 높은 과외업도 경쟁이 더 심화되겠구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요즘 내가 한 학생과 하는 줌 수업은 혁명적으로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글쓰기 수업과 영어과외 퓨전
나는 초등 고학년 학생이나 중학교 1~2학년 학생과 영어 수업을 할 때 원서를 사용한다. 200페이지 정도의 챕터북이 좋다. 로알드 달 작가의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책이다. 챕터가 나뉘어 있어서 한번 수업할 때 3챕터 정도 읽도록 하고 해석을 일일이 하지 않고 재미로 술술 읽게 한다. 단어도 모르고 문법도 약한데 어찌 읽느냐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맥락과 삽화로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말로 된 번역서를 먼저 읽기도 하고 영화로 각색되어 있다면 그 영화도 챙겨서 본다. 특히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적합하다.
감명받은 부분에 줄을 치라고 숙제를 내고 그걸 굳이 해석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문법 공부하면서 지겹도록 해석을 했으니 그냥 글을 읽고 의미를 아는 즐거움도 주고 싶다. 나와 같은 부분에 줄이 그어져 있으면 아이들은 선생님과 서로 같은 부분을 보고 감동했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매우 기뻐한다. 나도 마음이 통한 것이 너무 기쁘다. 선생님과 찌찌뽕! 왜 그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서로 얘기하다 보면 동지애 비슷한 것이 생긴다. 한 작가에 대한 또는 한 작품에 대해 감상자로서 말이다.
초등학교부터 수능까지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제집에 나오는 조각 글만 보게 된다. 긴 호흡으로 영어텍스트를 읽는 일이 매우 드물다. 사실 수능처럼 어려운 지문들도 더 많은 맥락을 주면 이해할 수 있는데 6~9개의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을 시간의 압박 속에서 파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제도 양자역학에 대한 수능특강의 지문을 해석하면서 해석은 했으나 정확한 의미를 몰라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직장에 가서 읽어야 할 텍스트는 그런 문제집에서 나오는 글들이 아니다. 논문을 읽거나 자료를 수집할 때 필요한 긴 글 읽기 연습을 하면 좋은데, 그걸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해본 것이 챕터북 읽기와 글쓰기다.
영어로 일기 쓰기도 좋은 영어 학습 방법이지만 영작이라는 너무 버거운 숙제 대신 나와 같이 읽은 영어 이야기책을 우리말로 요약해보거나 감상을 쓰는 식으로 글쓰기 수업도 같이 곁들이고 있다. 영어책이 아니라 내가 권해 준 동화책을 읽게 하고 뒷이야기 꾸미기나 인물 소개서 쓰기 같은 숙제도 내준다. 영어책 우리말 책 구별 없이, 외국어와 모국어 구별 없이 글을 읽는 행위는 같은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 즐거움을 마음에만 담지 말고 말로 글로 다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다양한 활동이 영어 공부에 자극이 되길 바라면서 활동을 통해 아이마다 가진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이 매우 크다. 그런 것이 과외 선생으로 살아가는 이유이다. 유식해 보이는 프랑스 말로 레종 데트르. Raison d’E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