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놀고 있는 아이를 향해) 숙제 다 했니?
아이 : 네에!
엄마 : 정말 다 했어?
아이 : 아니, 엄만 날 못 믿겠다는 거에요?
숙제 확인을 어찌하오리까
숙제 검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 어머니들은 아이가 과외수업을 다녀와서 숙제를 다 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신다. 내신 성적으로 등급이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나오는 잔인한 고등학교 시기가 아니라, 도대체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제대로 되는지 궁금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학년보다 한두 해 더 앞서가는 교재를 보면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건 맞는데, 학교 중간 기말고사로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숙제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아이가 ‘여기 보세요!’하며 교재를 가지고 나와 보여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자기를 못 믿는 거냐며 엄마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망과 힐난이 섞인 대답을 듣기 십상이다.
아이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처럼아이의 학습교재나 문제집 풀어 놓은 것을 대놓고 보여달라 하지는 못하고 어머니들은 그냥 숙제 다 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대화는 단절된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숙제를 다 했는지 못했는지 결과를 묻지 말고 숙제를 하는 과정이 어떠한지 물어보는 것이다.
수업 교재를 같이 보면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그 과목의 숙제량이 많은지, 숙제가 어려운지 아니면 너무 쉬운지, 숙제를 다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수업 이해가 잘 되는지,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은 숙제를 잘 해오는지,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잘하고 계시는지, 여러 과외 숙제 중에 어느 과목이 가장 어려운지 등등 숙제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다. 한마디로 예 또는 아니오 가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하는 개방형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숙제 다 했니?’라는 질문은 그냥 ‘놀지 말고 공부 좀 해라’이거나 ‘난 널 못 믿겠어’와 같은 말로 들린다. 아이가 ‘수학을 왜 공부 해야하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수학학습의 이유를 진지하게 묻는 것이 아니라 수학 공부하기 싫다는 말과 같은 이치다. 언어의 표면이 아니라 그 이면을 읽어야 하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공부 사연을 말하게 해주어야 한다. 학교나 과외 수업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살짝 아이 가방이나 책장에 있는 교재를 훑어 보면 된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아이의 사연이 이해가 될 것이고 사춘기 아이들의 짜증 세례를 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세세히 설명하거나 두 번 세 번 말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내 딸도 성질을 낼 때면 내가 할머니에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숙제를 잘하는 것이 과외수업의 가성비를 결정한다. 또 숙제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하느냐가 공부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숙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이 숙제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물어보는 어머니와 자녀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있다. 어머니는 지불하고 있는 교육비에 대한 결과를 원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해서 그러하고, 아이는 엄마가 나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숙제를 보여달라는 모순된 태도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렇다. 한마디로 숙제 다했니?라는 질문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있는 자녀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다.
숙제검사보다 멘토를
미국과 소련의 이념전쟁에 희생양이 된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제주 4.3사건을 13살 여자아이의 눈으로 그려낸 장성자 작가의 <모르는 아이>를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토벌대가 들이닥치고 더는 피해 다닐 수 없는 주인공 연화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 나와 아이들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광복 이후 이념 대립으로 친구와 이웃을 서로 죽이는 일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다, 대한민국이 풍요롭게 되었음에도 자살율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이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25.7명이다. 2020년 957명의 청소년(만9~24세)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 2.6명에 해당하는 숫자다.
과외 선생으로 곁에서 보는 아이들은 공부로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요즘 같이 3월이 되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은 몸이 더욱 힘들다. 아직도 비평준화 지역인 내가 사는 곳은 야간자습시간을 시킨다. 아침에 8시에 등교한 아이들이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밤 12시 30분까지 자습실에 앉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숙사에는 가지 않은 여학생은 야간 자습 10시에 끝나고 자정까지 일주일에 세 번이나 과외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제발 12시가 되면 잠을 자라고 부탁했다. 6시간도 안자고 어떻게 사느냐고. 잠을 안 잔 뇌는 술 취한 뇌와 같다고 말해준다. 술 취해서 공부할거냐고 해도 상위권 학생들이 고1이 되면 비장한 마음으로 몸이 부서지게 공부를 하겠다고 덤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가히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돈과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 학생들 대부분이 스트레스가 많은데 그 중심에는 성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학교에 머물며 보내는 학습시간이 살인적으로 길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너무 많은 사교육을 시킨다. 그것도 모자라 방학이면 기숙학원에 보내서 하루에 15시간씩 자리에 앉아있는 일을 하게 한다.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으면 이렇게 말해 달라는 분들도 가끔 있다.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받는 상처를 ‘성장학교별’의 교장 선생님이자 정신과 의사인 김현수 저자는 <공부 상처>라는 책을 통해 유형별로 정리해 주었다. 내 학생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과잉의 상처였다. 다른 말로 하면 만성 학습 피로 증후군이다. 부모와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다. 초등고학년까지 성적 유지 이후 중고등학교 때 최상위 권에 있지 못하고 상위권과 중위권으로 밀려나는 학생들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은 강요에서 자율과 존중으로 선택과 의사결정을 하고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멘토는 부모 또는 선생님이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멘토에게 성적과 학교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면서 고등학교 3년이라는 어려운 기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다. 숙제 다 했니? 라도 묻기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봐 주는 게 먼저다. 나는 과외 선생으로 숙제를 내주는 사람이고 숙제를 검사하는 사람이다. 숙제 검사는 아이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보는 가장 정확한 검사지이다. 과외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 검사지를 통해 멘토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선생님이 될 수는 없어도 진실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공부 서사를 듣는다. 그 시간에 영어 문장 하나 더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많이 들어준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거만이 그랬다. 교회는 행복한 곳이라기보다 솔직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끝없이 문제를 풀고 암기해야 하는 입시 공부를 해야 하는 수업시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 할 수 있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있다면 공부는 참을 만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