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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Sep 01. 2023

첼로를 사고 말았으니

굳은살이여 어서 오라


시은 : (옆에 앉아있는 사촌 언니에게) 언니, 첼로 한번 배워봐.

지우 : 음...난 시간이 없을 거 같은데.

시은 : 언니, 내가 해보니까 첼로는 16음만 잘 내면 웬만큼 연주할 수 있어.

나 : 16음만 배우면 된다고? (내 가슴이 뜨거워지며) 정말? 진짜?     

눈부시게 푸른 하늘에 두둥실 뜬 흰 구름이 위풍당당한 태양에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여름날, 나는 내 최연소 학생이자 사촌지간인 두 여학생을 데리고 신정호 옆에 있는 수영장에 다녀오는 길이였다. 십수 년 전 꼬맹이 딸아이랑 물놀이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작은 참새처럼 종알거리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어린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집으로 오느라 운전을 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시은이는 뜬금없이 언니에게 첼로를 배워 보라고 제안했다. 언니인 지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자, 시은이는 다른 악기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16개 음만 낼 줄 알아도 들어줄 만한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혼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토요일마다 우리 동네 해봄 센터라는 곳에서 무료로 레슨도 해주고 연주도 한다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설명에도 언니는 시큰둥한데 운전하고 있던 나는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첼로를 배워 보고 싶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첼로를 배워 보겠다고 했다. 내가 첼로를 켜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고 했더니, 설레는 것이 있다면 당장 해야지 하며 용기를 주었다. 저 나이에도 설레는 것이 있다니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정말 이런저런 악기를 배워 보려고 평생 시도해 왔지만, 피아노를 제외하고 다 실패했다. 사실 피아노도 반주법을 배우려 레슨을 받았지만, 실력이 기본기에서 늘지 않아 그마저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생각고쳐먹었다.      


첼로라는 악기는 설령 배움을 포기한다 해도  악기를 또 중고로 팔 수 있고, 악기가 보기에도 아름다워서 그냥 집안에 ‘장식품으로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지고 그 소리를 상상만 해도 위로가 되는 악기가 첼로이다. 첼로는 저음의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 집안에서 일할 때 노동요로 들을 때 나는 첼로 곡을 선택한다. 결혼하기 전에 90년대 중반에 알바로 모은 돈을 몽땅 찾아서 원효로 전자상가에 갔다. 로저스라는 스피커와 뮤지컬 피델리티라는 앰프를 구입해 설치하고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방안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 묵직하고 중후한 첼로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첼로 소리가 저런 소리였단 말이야 말하는 내 턱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악기 배우기다가 실패한 경험은 20대 30대 40대에 걸쳐 꾸준히 있었다. 대학교 입학했다고 친척분들이 준 축하금을 몽땅 모아서 종로 세고비아 기타라는 악기사에 가서 플루트를 샀다. 그 악기를 들고 중앙일보 문화센터에 가서 배우다가 나는 도저히, 도저히 복식호흡을 하지 못해 절망하다가 악기를 벽장에 집어넣었다. 엊그제 그 악기를 꺼내 보았는데 불어보니 이제는 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다. 30대에는 기타라는 악기가 배우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쉽게 배우는 악기 같아서 포크 기타를 시작했는데 코드를 잡아야 하는 왼쪽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그 아픔이야 참을 수 있겠으나 문제는 내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팝송과 가요를 배우면 뭐 하는가? 내가 노래하기 싫어하는데. 그냥 반주만 치고 있자니 그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1차 기타 포기.      


40대에 들어서 내가 노래를 못하니 클래식 기타를 하면 되겠다 싶어 재도전에 들어갔다. 예산에 막 이사 온 10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이 시골 동네 예산에는 클래식 기타를 가르쳐줄 학원도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다. 실용음악 학원에 가서 기타가 전공도 아닌 원장님께 무조건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원장님은 한 곡만 일단 완성해보자고 하시면서 그 유명한 ‘로망스’ 악보를 들이미셨다. 앞으로 2달 후에 예산역 광장에서 연주회가 있으니 거기서 로망스를 연주해보라고 했다. 클래식 기타에 대한 아무 이해도 없이 정말 용감하게 주야장천 로망스만, 오직 로망스만 연습해서 두려웠던 연주회를 사고 없이 마쳤다. 심장이 얼마나 뛰던지 심장이 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연주회 이후에 비틀즈의 곡들을 원장님이 연주해 보라고 했지만 뭔가 체계가 없는 학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로망스가 정말 싫다. 아무튼, 이렇게 2차 기타 포기.     


이제 50대 다시 나는 첼로를 시작했다. 레슨을 딱 3번 받아 보니 이 악기는 절대 쉬운 악기가 아니며 나는 시은이의 ‘유혹에 넘어간 선생님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나마 악보를 볼 줄 알고 음감도 좀 있고 기타를 연주해 봐서 현을 잡아야 하는 왼손이 얼마나 아픈지도 알고 16개 음만 알아도 연주가 어느 정도 된다고는  한다. 허나 그 16개 음을 정확히 내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다시 한번 측정해 보는 기회일 것이다. 그래도 신생아 돌보기만큼 어렵진 않겠지. 그래도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비싸지 않게 악기를 구입했고 첼로 소리를 사랑하니까 한 1년쯤 고생하면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있다. 아 그놈의 설렘. 아무래도 첼로와 로망스’가 시작된 것 같다. 사랑을 시작할 때 이런 설렘을 기억한다. 다른 남자를 사랑해서 설렘을 느끼면 불륜이 되지만 새로운 악기를 사랑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아 다행이다.     


현악기의 울림은 참으로 아름답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달리 그 울림이 그 진동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기타는 내 품속에 악기를 안고 있어서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퉁겨지는 소리가 귀를 스칠 때, 아르페지오로 현을 하나씩 뜯을 때는 음악의 여신 뮤즈가 된 것 같은 황홀함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소리의 기타를 두 번이나 배우기 포기했지만, 첼로는 천천히 할지라도 꾸준히 손가락에 굳은살을 고이고이 모아 흰머리 휘날리며 할머니가 되어서도 연주하고 싶다. 기타를 배운 경험은 첼로를 배울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일단 현을 누르는데 필수적인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첼로 선생님의 손가락을 보니 현이 지나가는 모양대로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체육관에 몇 년 다니면서 근력운동을 하니 손바닥에 손가락 바로 아래 살에 굳은살이 박였는데 이제 왼손 손가락 아래도 굳은살이 생겨야 한다. 굳은살의 두께는 노력한 시간과 실력의 증거가 될 것이다. 섬섬옥수를 포기하자.     


어제는 세 번째 레슨이었다. 아직 현을 누르면서 음계를 익히기 전 단계라 현을 누르지 않은 채로 개방현을 연주를 했다. 선생님은 멜로디를 연주하고 나는 반주를 했는데 ‘반짝반짝 작은별’과 멜로디만 아는 영화 OST 두 곡이었다. 두 대의 첼로가 함께 하니 너무 멋진 소리가 났다. 남편과 둘이서 피아노 연탄곡으로 간단하기 그지 없지만 ‘그린 슬리브’를 쳤을 때 느꼈던 무한 감동 재현되었다. 둘이서만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첼로 대여섯대가 있는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 안에서의 소리는 어떨까 상상을 해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에 패하고 연설할 때 선거에 실패했다고 하지 않고 drawback이라는 단어를 썼던 기억이 난다. 약간의 문제 장애가 생겼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실패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뿐이고 아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뜻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라는 말도 있다. 30대와 40대에 기타를 배웠지만 두 번이나 포기한 것을 나는 첼로를 배우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동네 오케스트라나 앙상블 연주단에서 연주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정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영어 단어 문장을 외우고 지겨운 문법을 공부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서, 나도 왼쪽 손가락 밑의 아픔과 연습의 고통을 맞이하려고 한다. 힘든 과정과 첼로를 향한 사랑을 섞어 달콤쌉쌀한 연주의 맛을 보고 싶다. 굳은살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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