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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Sep 06. 2024

아름다운 소리 내기

인생과 음을 꽉 채우기, 토널리제이션


선생님: (힝힝 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를 향해) 소리를 좀 더 꽉 차게 내셔야죠.

나 :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선생님: 활이 줄에 밀착되도록 힘 조절을 하셔야 해요

나 : 왼손에만 집중했는데 이제 오른손이 더 어렵네요. 하하    

 

  첼로 배운지 1년이 지나 스즈키 첼로 교본 3번에 들어와 보니 토널리제이션 tonalization 이란 용어가 나타났다. 각 레슨은 토널리제이션으로 시작하라고 되어 있다. 아름답고 정제된 음색을 내는 것이 관건이다. 왼손으로 지판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 정확한 음을 잡는 연습이 어느 정도 되지 이제는 오른손으로 활을 켜는 밀도를 높이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3권은 슈베르트의 자장가로 시작되었다. 같은 ‘라’음을 개방현으로 낼 때와 3포지션으로 낼 때 음색이 확실히 달랐다. 2포지션, 3포지션이란 같은 음이라도 왼손 손가락이 지판의 좀 더 아래 현을 잡는 것인데 이런 연습을 하도록 교재가 구성되어 있었다. 왼손으로 현을 누르지 않고 활만 켜는 개방현의 소리와 비교하면 현을 잡아서 내는 ‘라’ 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아련하게 들렸다. 피아노 피아니시모 같은 작게 치는 악상을 연주하려면 3포지션의 ‘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포지션이 바뀌면서 현을 잡는 것은 왼손의 할 일이 많아진다. 상하로 움직임이 많아지고 동선이 길어지니 정확한 위치로 훌쩍 뛰어넘으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감’으로 그 자리에 오는 연습도 많이 필요했다. 왼손이 이렇게 정신이 없는 중에 선생님은 오른손의 활로 ‘아름다운’ 소리를 ‘밀도’있게 내라고 주문을 하셨다.


  오른손으로 활 전체 면이 줄에 꽉 달라붙어서 깊고 깊은 소리를 내라는 것인데 조그만 삽이 아니라 포크레인이 깊이 땅을 파는 듯한 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용돈과 알바한 돈을 모아 오디오를 20대에 산 적이 있었는데, 저음이 잘 들리는 스피커를 골라 달라고 오디오샵 사장님께 부탁해서 Rogers 라는 스피커를 샀다. 지금까지 30년째 잘 듣고 있는 그 스피커를 설치하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피아노 소리만 집중해 듣다가 느린 악장에서 깊고 우아한 첼로 소리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스피커가 저음을 잘 잡아주니 주목하지 못했던 첼로가 명료하게 들렸다. 피아노 협주곡이니 피아니스트의 건반 터치와 기교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협주곡의 풍부한 사운드는 첼로의 낮은 음색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었다. 아마도 그렇게 따뜻하고 깊이 있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것을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것 같았다.     


  왼손 지판을 잡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오른손으로 활을 얼마나 힘을 줄 것인가는 나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 정량적으로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이 힘의 양을 조절하는 게 매우 어렵지만 재미있는 작업이다. 너무 힘을 주면 끽끽 소리가 나고 너무 힘을 안주면 힝힝 소리가 난다. 끽끽도 아니고 힝힝도 아닌 그 중간 소리를 찾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황금의 중용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 황금의 중간을 찾는 것은 내 귀를 믿고 내 손을 연마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론을 아무리 말해줘도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비밀. 몸이 알아서 해 줄 때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 좀 더 일찍 첼로를 배웠으면 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일이 덜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65세에 바이올린 시작하신 교수님도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제 수능모의고사를 치고 온 고2 학생이 해석해 달라는 34번 지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전문적 기술은 암시적이지 implicit 명쾌 explicit 하지는 않다. 그러니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설명이 알 듯 말 듯 하여 직접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는 습득할 수 없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습득에 가깝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   

  

  이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밀도 있는 소리는 또한 포르테와 피아노 같은 악상을 고려해서 내야 한다. 작은 소리를 내기 위해 포지션 이동이 필요했는데, 슈베르트의 <자장가>에서는 하모닉스 harmonix 라는 기교가 나왔다. 하모닉스는 현의 특정한 부분을 꾹 누르는 것이 아니라 살짝 손가락을 얹어 터치만 해서 내는 소리다. 아주 작은 소리를 내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자장가를 마무리하는 아주 작은 소리의 4박자 긴 음을 위해 낼 수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안개 속에서 비쳐오는 가로등 불빛 같았다. 청아하고 아련한 소리에 아이가 눈을 스르르 감고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린 내 딸이 내 품에서 잠들던 그 모습도 떠오르고, 그냥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붕 뜨는 듯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미세한 촛불의 흔들림에 영혼이 안식을 얻는 것처럼 그 작고 미세한 진동이 온몸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현의 소리와 떨림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첼로의 토널리제이션과 하모닉스로 내 인생에 말을 걸어온다. 아름다운 소리내기의 가장 근본은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은 중간의 힘을 찾는 데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함께 공존하고 그 둘의 최적의 중간을 찾거나, 아니면 그 공존의 긴장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능력이 좋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같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빨리 은퇴의 삶을 사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다. 언제나 건강하실 것만 같던 아버지도 80대 중반이 되니 아프신 데가 많아지고 마음도 약해지시는 것을 보면 건강한 나의 노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 일을 멈추고 싶기도 하다. 일이 주는 삶의 활력과 의미를 잘 알고 있어서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왔다 갔다 한다. 너무 많지도 없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첼로를 열심히 배우고 책도 한가히 읽고 힘닿는 대로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싶기도 하다.     


  한편 하모닉스. 그냥 턱 얹어만 놓아도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신기한 현의 지점. 나는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싶다. 아무 힘을 주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작은 소리가 나서 아름다움을 퍼뜨리는 그 지점에 내가 서고 싶다. 내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도록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첼로의 테크닉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몸으로 알아야 하는 인생의 여정이 있고, 힘을 빼고 조용히 들어야 한다는 교훈도 있다. 인생을 꽉 채우는 기술도 나온다. 다음 곡에서는 가보트에서는 또 무엇을 배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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