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공화국은 동방정교 문화와 카즈베기 지역 산악지대에서의 트래킹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서방 카톨릭 문화를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만난다면 동방정교는 러시아나 조지아에서 경험할 수 있다.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동방정교 성당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설이지 않고 떠날 수 있었다. 서방 카톨릭 전통에서 보는 스테인드글라스와 고딕 양식의 첨탑이 있는 성당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고,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도시 카톨릭 대성당과 달리 이콘의 영성이 있는 동방정교 문화도 궁금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라는 도시를 향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경유해서 가는 바람에 1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인천에서 알마티까지 7시간 정도, 알마티에서 트빌리시까지 4시간, 총 11시간의 비행이지만 중간에 공항에서 4시간 환승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비행이 수월할 줄 알았지만, 공항에서 수속하고 대기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한 20시간은 걸렸다. 쉽다고는 할 수 없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트빌리시 공항은 매우 작고 입국 수속하는 직원들과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많은 멍멍이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 많은 개들이 어디서 온건지 어리둥절 했는데 꼬리를 치며 반겨주었다. 머리를 만져주니 내 다리에 몸을 비비기도 했다. 공항직원과 호텔직원들의 무뚝뚝함에 비해 개들의 모습을 얼마나 친절하던지 대조적이었다. 이 개들은 일주일 여행 내내 우리 주변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귀에 단추 같은 것을 달고 있었는데 시에서의 관리하에 광견병 주사를 맞았다 뜻이라고 한다. 견주는 따로 없고 시민들이 주는 밥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왠지 탁발승 같은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개모차를 타고 다니거나 온갖 정성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개들보다 조지아 개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것은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들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많은 광장이나 관광객이 넘치는 성당이나 관광 명소에서도 누워 잠을 자고, 엄마 개는 젖을 먹이고, 저희들 끼리 장난을 치고 놀았다. 이 개들이 멍멍 짖는 것은 딱 한 번 봤는데, 아할치헤 지역에 있는 라바티 성채 탐방할 때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잠자고 있는 강아지를 실수로 밟을 뻔해서 크게 짖었을 때였다. 개들은 먹을 것이나 잘 곳에 대해 걱정이 없어 보였고 목줄도 없이 도시를 활보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개들보다 지저분하기도 하고 어딘가 아파 보이는 개들도 있었지만, 조지아 개들은 단연 자연스럽게 또 행복하게 보였다. 개나 사람이나 물질의 풍요보다 영혼의 평화가 더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트빌리시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도시였다. 이것이 자발적 가난인지 강요된 빈곤인지 마음속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동방에서 온 방문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크고 작은 성당이 수없이 많았다. 트빌리시를 흐르는 쿠라강을 바라보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 저녁노을을 맞이하고 밤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그곳은 나리칼라 요새였고, 높은 위치에 있다 보니 트빌리시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여행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성당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섰다. 놀랍게도 동방정교 예배의식은 의자에 앉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성당에는 주교의 의자만 있고 장의자가 없었고 내부는 돔에 의해 천정이 높아 보이는 데 비해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높이에 비해 넓이가 좁은 그런 형태였다.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성화들이 많이 보였다. 예수의 탄생, 수난, 부활 같은 주제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를 바치는 곳에는 모래를 담아 놓았는데 모래 위에 꽂힌 촛불의 빛과 성화에서 나오는 빛이 어우러져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전통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이다. 조지아 옆 나라 아르메니아가 첫 번째, 뜻밖에 에디오피아가 두 번째, 그리고 조지아가 세 번째 나라라고 한다. 조지아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380년보다 앞서 33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는데 성녀 니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성녀 니노는 포도나무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녀의 십자가는 십자가의 가로축이 땅을 향해 있었다. 땅을 향한 그 모습이 그녀의 겸손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땅을 향해 신의 축복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일 것도 같았다. 아름다운 십자가도 많지만 성녀 니노의 십자가는 의자가 없는 소박한 교회 건축 전통과 함께 겸손함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성녀 니노의 모습은 조지아에서 처음 방문한 트빌리시의 성 니콜라스 성당에 비해 100배는 커 보이는 트빌리시 성 삼위일체 교회에서 보았다. 성 삼위일체를 뜻하는 것인지 3개의 지붕으로 된 구조물이 3층으로 축적된 외관이었는데 높이가 84m에 달한다. 조지아의 성당은 대부분 노르스름한 벽돌로 되어 있는데 성 삼위일체 성당의 연노랑 빛이 햇빛에 반사되어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1995년에 착공되어 2004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국민의 헌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이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신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구나 하고 느꼈다. 호텔마다 거리마다 만난 강아지들이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초라한 집에 살고 많은 것을 갖지는 않아도 영혼은 신과 함께 평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여행자가 여행지 사람들에게 갖는 환상일지라도, 대한민국 사회의 능력주의와 서열의식이 얼마나 우리를 피폐하게 하는지가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성녀 니노는 꽤 젊어 보였다. 한 손에는 십자가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전쟁으로 포로가 되었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공주의 위엄이 느껴졌다. 횃불과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지 머리카락이 목을 타고 가슴 쪽으로 늘어뜨려 져 있었다. 세속적으로 가장 높은 왕족에서 전쟁 포로라는 낮은 곳에 이르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십자가 가로축을 아래로 내려가게 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니노님 십자가는 하늘을 향한 화살표처럼 보였다. 가로축이 내려감으로 인해 화살표로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래와 위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이 절묘한 성화 앞에 나는 반대되는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내보내져 살아가지만, 세속적 성공과 지위를 탐하지 않고 눈에 뜨이지 않게 살면서도 충만하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년과 노년이기 되기를 니노님께 기도했다. 없지만 있는 듯 사는 것. 내가 갖고 싶지만 언제든 원하는 이에게 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을 배우는 방법은 침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싱잉볼이라는 놋그릇을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딩~~~ 소리가 나면 고요함은 아름다운 색을 덧입는 것 같다. 동방정교 전통의 침묵기도를 싱잉볼과 함께 실천해 볼까 한다. 조지아 여행에서 니노 성녀님 덕택에 좀 성숙해진다면 이 여행비가 아깝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에게 어린 왕자는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오직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고. 니노 성녀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