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카즈베기 지역에서 트래킹을 꿈꾸며 떠날 것이다. 카즈베기는 조지아 북부 지역으로 높은 산이 있고 트래킹 코스가 유명하다. 여행 3일 차 되는 날 밤 스노 벨리라는 곳에 도착해서 스노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 나라는 9월에는 난방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스노 벨리가 이미 1750m에 달해서 기온이 곤두박질. 몹시 추운데 호텔 난방이 안 되는 바람에 옷을 잔뜩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호텔도 잠시 정전이 되기도 하고, 화장실 세면대 배관이 빠지는 등 약간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마당에 서보니 구름 아래 웅장한 만년설의 설산이 보였는데 그것이 카즈베기 산이라고 한다. 가까이 보이는 저 산이 5천m가 넘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트래킹이 어떨지 걱정을 하며 1시간 넘게 버스로 달려서 카즈베기의 주타 마을로 이동했다. 주타 마을은 트래킹의 성소 같은 곳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장비를 갖추고 이동 중 이었다. 어떤 중국인 같은 분에게 영어로 인사를 하고 보니 한국 청년이었고,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중국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릎이 아파서, 트래킹이 아니라 하이킹 정도만 하기로 마음 먹고 노트북을 들고 나섰다. 중간 지점 쯤 되는 곳에 있는 멋진 산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학원에서 수강하는 과목의 숙제를 할 심산이었다.
주타 마을을 향해 걸어가며 처음 만난 고산 지대의 풍경은 참으로 낯설었다. 산에는 나무가 없고 풀만 자라 있었다. 나무라고 하기엔 아주 낮은 관목들도 보였다.주름이 가득가득한 산 비탈에는 돌맹이가 하얗게 흩어져 있기도 하고, 산의 주름 사이로 작은 폭포가 실처럼 흘러내렸다. 엄청난 계곡이 절벽처럼 깎아져 있고 저 편으로 보이는 산들은 한국에서 보던 산들과 전혀 달라 보였다. 이 고요하고 장엄한 모습에 종교적인 느낌마져 들었다. 이런 것이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가 말한 ‘누미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약간은 무섭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마냥 편안하기만 한 풍경은 아니었다.
주타 마을은 이미 해발 2200m에 위치해 있었다. 개똥 소똥과 돌멩이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좁은 돌길을 힘들여 올라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나고 주타 마을 초입에서 본 것보다 더 크고 다정한 어머니 품 같은 큰 산이 떡 하니 눈 앞에 나타났다. 나무가 없는 산도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감탄이 나왔다. 와아~~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내 앞에 선 그 큰 산은 이름이 차우키 산이라고 한다. 차우키 안녕! 갑자기 나타난 평평한 공간에 나무로 지어진 아름다운 산장의 이름은 ‘다섯 번째 계절’ Fifth Season 이었다. 영어로 lodge 라고 하는 이곳은 방이 몇 개 없을 것 같은 작은 숙박시설이 2층에 있고 1층은 카페였다. 카페 창문에서 바라본 산은 창틀에 싸여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페는 산을 오르 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트래킹을 더 하기 위해 떠났고 나는 카페에 앉아 차우키 산의 비경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루돌프 오토가 말하는 누미노제는 두가지 감정의 혼합이라고 하는데 미지의 공포심과 매혹적인 신비감이 공존하는 것이다. 주타마을 초입이나 전날 4륜구동 미니밴을 타고 바라보았던 트루소 밸리 같은 곳은 알수 없는 두려움을 일으켰다. 날씨마저 흐리고 길은 엄청나게 울툴불퉁한데 수염을 기른 운전사 아저씨는 전혀 덜컹거림을 괘념치 않고 달렸다. 차창 밖의 나무 없는 산과 폭포수와 급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서웠다. 태어나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외감과 공포감이 매혹적인 신비감으로 바뀐 것은 바로 ‘5번째 계절 Fifth Season’이라는 카페에서 본 차우키 산의 매력 때문이었다. 5번째 계절이라니! 이 세상에는 없는 계절에 와서 이 세상에는 없고 천상에나 있을 법한 하늘과 독대하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감탄과 감사라고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크건 작건 감탄을 할 때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차우키 산을 보고 턱을 떨어뜨리며 감탄사를 발할 때 나는 큰 감사를 나의 부모님과 가족에게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없지 않고 여기 이 아름다운 곳에 있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눌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트래킹을 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조용히 카페에서 창문 밖으로 차우키 산을 계속 바라보며 그 감격한 마음을 커피에 담는 것도 좋았다. 두 세시간 만에 돌아온 남편과 다른 여행객들은 트래킹에서 장관을 보았고, 한편 냇물을 건너느라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저 위를 상상하며 다시 주타 마을로 내려와서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을 방문했다. 구름이 많아서 카즈베기 산 아래의 장관은 볼 수 없었다. 일명 곰탕뷰. 뿌연 구름만 보였으나 아름다운 차우키산의 위용을 마음에 담을 것으로 충분했다.
컵이나 접시를 살 때 나는 3개를 산다. 우리 집 식구가 3명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하나가 깨져도 둘은 남으니까 그렇다. 물건이 하나만 있을 때보다 두 개가 같이 있으면 안정되어 보인다. 물건이 여러 개가 있더라도 쌍을 이루어 있으면 정돈되어 보인다. 마치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들 처럼. 하느님도 세상을 만들고 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안 좋아 보여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혼자보다 둘이 더 낫다고 늘 생각한다. 심지어 영어 수능 만점의 비결도 ‘짝’을 찾는 데 있다. 논리와 내용이 모두 어려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주제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주제를 드러내는 문장이 2개는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빈칸 문제를 풀 때, 빈칸이 있는 문장은 주제문이고, 이 주제문과 같은 쌍둥이 문장을 찾으면 정답을 고를 수 있다.
감탄과 감사도 쌍둥이 문장처럼 같이 다니는 커플이다. 담벼락 시멘트를 비집고 자라는 채송화도, 마당에 핀 작은 꽃들도, 어쩌다 우리 집 화분에 와 앉은 애기 청개구리을 보며 나는 감탄하곤 한다. 광대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카즈베기 산과 차우키 산의 주름도 큰 감탄을 자아낸다. 조지아라는 먼 나라에 와 카즈베기에서 압도적으로 큰 산들과 대면했다. 참으로 숭고하고 장엄한 자연이었다. 동네 작은 산에만 올라가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보이고, 누구를 미워하고 아등바등하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지는데, 이 엄청난 높이와 크기의 산 앞에서 나는 정말 작아진다. 더 갖고 더 유명해져 봤자 무엇이 그리 크게 다르겠는가 싶다.
여행은 감탄의 강도를 좀 세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감탄이 세지면 감사도 더 커진다. 조지아 여행을 하면서 성당이나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 자주 들렀다. 컵도 두 개, 성화도 두 개, 초콜릿도 종류별로 두 개씩, 스카프도 네 개 이렇게 쌍으로 샀다. 이 기념품들을 누구에게 줄까 생각해 보니, 다 내가 감사를 돌리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작은 기념품을 사서 주고 싶은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