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이 상처를 준다.
"엄마, 오늘 점심은 육회비빔밥 어때?" 며칠 전 만들어 놓은 육회소스가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말했다.
"뭔 육회야, 육회는." 항상 부정적인 대답을 먼저 하는 우리 엄마의 대답이다.
그냥 한 귀로 흘려들으면 되는 엄마의 감정 섞이지 않은 말에 나는 또 울컥해 버린다.
"아니 엄마는 왜 맨날 말을 그렇게 해? 왜 맨날 부정적이야?"
"시끄러워!" 우리 엄마의 단골멘트가 나왔다.
여기서 한마디 더하면 서로 기분만 상할까 싶어 지갑을 들고 동네 정육점으로 향했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건지 쉬는 날에 집에 엄마랑 둘이 있는 게 좋다가도 불편해진다.
터벅터벅 슬리퍼 신고 동네 정육점에 들어갔다. 처음 가보는 정육점이라 조금 어색했는데 너무 친절하신 사장님께서 반겨주셨다.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시는 사장님 보고 엄마와 싸워 나빠진 기분이 풀렸다. 왜 낯선 이에게 받는 사소한 친절에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가족한테는 그렇지 못하는 걸까.
"육회 200g만 주세요." 내가 오늘 첫 손님이라면서 기분 좋게 육회를 썰어주셨다. 싱싱한 육회랑 비빔밥 재료를 사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가끔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숨 막힐 때가 있다. 내가 혹시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잘못된 걸까. 이 나이 먹도록 돈벌이를 못하는 나라는 인간이 집이라는 공간을 갑갑한 새장으로 바꾸어버렸다.
밥솥에 남은 찬밥을 넣고 사온 재료들을 때려 넣고 육회 비빔밥을 완성했다. 나갔다 온 사이 엄마가 식탁에 화분을 올려놨길래 살짝 옆으로 치우고 내가 만든 육회 비빔밥 사진을 찍었다.
"화분 좀 안쪽으로 들여놔. 떨어지겠다." 엄마가 내가 치운 화분을 보고 한 소리했다.
"알겠어."
맛있게 만든 비빔밥을 엄마랑 같이 먹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영상을 보는데 갑자기 엄마가 소리쳤다.
"화분 어딨어! 네가 치웠어?"
"아니야. 내가 안 치웠어." 내가 음식 사진을 찍기 위해 화분을 살짝 치운 다음에 다시 그 자리에 놓은 걸 엄마도 본 걸 아는데 갑자기 소리쳐서 당황했다.
"아니 네가 옆으로 치운 걸 봤는데. 네가 안 치웠으면 누가 치워!! 화분이 발이 달렸니? 진짜 어이없네 얘가."
"나 아니라고."
"아니 너 아니면 누구냐고!!" 점점 엄마의 짜증과 화가 섞인 목소리가 커진다.
내가 치운 게 아닌데 자꾸 몰아세워서 억울하지만 그냥 아니라고 부인하는 방법밖에 없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가 조용히 오더니 "내가 치웠어..." 엄마도 본인이 소리치고 화낸 게 미안했는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억울해서 화가 나고 또 미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짜증도 났다. 순간 울컥했는지 눈물까지 났다.
"나 아니랬자나!! 왜 안 믿고 소리치냐고. 엄마 치매야!!"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버렸다.
"엄마가 치웠어. 미안해. 그래 엄마 치매야."
그렇게 나는 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