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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삼백 Aug 18. 2022

엄마가 암 이래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막내딸 어디야?’

밖에서 친구와 놀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날라 온 문자 한 통. 그냥 평소와 같은 아빠의 문자였는데.. 왜인지 그날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응. 나 지금 밖인데 왜?’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을 보냈지만 내 뇌는 여러 가지 가상현실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 사고가 났나? 무슨 일이지?


‘차분하게 하고 들어. 오늘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받았는데 유방에서 혹이 발견됐대. 양성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대.’ 아빠 문자를 읽고 또 읽고 대체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일단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오늘 병원에서 잘 거야.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또 연락할게.’

‘응. 알겠어.’


이 문자를 받고 있는 이 순간에 친구랑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며 좋아하는 연예인 근황 토크로 신나게 웃고 떠들던 내가 바보 같았다.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이냐 지금? 그러는 정작 너의 엄마 아픈 것도 몰랐다고?


컴컴한 집으로 들어가니 키우는 강아지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나를 반겼지만 난 전혀 반갑지 않았다. 현관 앞에 그대로 앉아 멍하니 아빠 문자를 또 읽어봤다. 차분하게 읽으니까 인제야 이해가 됐다. 엄마 유방에서 혹이 발견되었고 그게 양성으로 판정 나면 암일 수도 있다는 뜻...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엄마가 암 이래.'

다음날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가족이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제일 먼저 드는지. 아마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 거다. 주변에서 누가 암 이래, 누가 암으로 죽었다더라 이런 소리를 전해 들었을 때도 나는 우리 가족과 나만 아니면 돼..라고 일관했었는데 이기적이었던 나의 마음이 하늘에 들려 벌을 내리셨나..


결국 엄마는 암 1기로 판정이 났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른 수술을 하는 것이란다. 그대로 엄마는 입원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1기라서 완치가 가능하다는 소리에도 내 뇌는 최악의 상황만을 그려내고 있었다. 멍청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을 짓이다.


아빠가 집으로 와서 엄마 짐을 챙겨 나가는 데 얼른 따라나섰다. 엄마의 얼굴을 꼭 봐야만 했기 때문에 병원에 오지 말라는 엄마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반겨주는 엄마가 미웠다. 왜 거기에 앉아있는 거야 대체 왜.... 그렇게 평생을 나에게 강하고 무서웠던 우리 엄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데 하루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돼서 앉아있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암이라는 소리에 가장 먼저 무너졌을 우리 엄마. 얼마나 무서웠을까. 감히 상상도 안된다.


아빠는 출근을 하러 가고 나는 알바를 빼고 병실에서 엄마를 돌봤다. 커피 사러 간다고 밖으로 나가 애같이 엉엉 울고 자는 엄마를 보다가 눈물이 나올 거 같아 로비에 가서 펑펑 울었다. 눈물이 마른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거야. 슬픔은 끝이 나질 않는다.


다음날, 수술실에 가기 위해 간호사분들이 오셨다. 수술 전에 엄마 얼굴을 보고 싶은 데 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 얼굴을 보면 울 거 같으니까. 내가 여기서 울면 엄마가 더 힘드니까 엄마의 손만 계속 봤다.

참 우리 엄마도 많이 늙었구나.. 손에 언제 이렇게 주름이 많이 생겼지?


간호사가 수술실로 엄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휠체어에 몸이 다 가려질 정도로 마른 우리 엄마가 수술을 잘 버텨내 주기를 기도하며 대기실에 앉았다. 아빠와 앉아있는데 잠이 쏟아졌다. 잠깐 졸았나 했는데 벌써 3시간이 흘러 수술 종료 화면에 엄마 이름이 떴다. 그 찰나 고모가 아빠 이름을 부르며 우리가 앉아있던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거의 2년 만에 보는 고모 품에 안겨서 병원이 떠내려가라 울었다.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고모.. 우리 엄마가 너무 아파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살려달라고만 계속 외친 거 같다...

‘그래그래.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나를 안아주시며 조용히 우시던 고모의 품이 너무 따뜻했다.


마취가 풀린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비를 맞고 추위에 떠는 강아지처럼 떨던 엄마. 30년 동안 처음 보는 그때의 엄마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엄마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를 마음속으로 말하고 또 말했다. 내 마음을 들었는지 엄마도 힘 있게 내 손을 잡아줬다.


수술 후 앞으로 항암치료를 다녀야 하고 머리가 다 빠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우리 엄마는 출근부터 걱정했다. '지금 그게 문제야?'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제일 약하게 해 주세요. 머리 덜 빠지게..' 의사 선생님께 부탁하던 우리 엄마. 아직 대학생이던 내가 엄마 대신 돈을 벌어다 줄 수 없기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게 엄마의 마음일까? 아직 엄마가 돼보지 못했기에 아픈 엄마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술 후 병실에서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내가 옆에 없으면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강하고 무서움 뒤에 숨어있던 엄마의 약함이 안쓰러웠다. 내가 아픈 엄마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돈 없는 30대 이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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