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가다...
설날 엄마가 안부 전화 온 사촌 언니에게 콧구멍에 바람 쒀러 가자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빠가 계실 땐 아빠랑 드라이브도 많이 다니고 여기저기 다니다 작년 봄부터 아무 곳도 다니지 못했던 엄마는 많이 답답했었나 보다. 바쁜 딸들에겐 어디 가자 말 하지 못하고 언니에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계획에도 없이 동생의 주말 스케줄을 확인하고 장소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작년에 내가 갔던 강릉 호텔을 예약하고 엄마한테 2월 셋째 주 주말 어떠냐 물어보고 30분 만에 모든 예약을 끝냈다.
엄마는 괜찮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웃고 계셨다.
그렇게 원하는걸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 써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빠 없는 첫 가족 여행을 떠났다. 호텔과 교통비를 동생과 내가 낸 것이 미안하다며 엄마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아주 근사한 걸 먹자고 했다. 이곳저곳 식당을 찾던 중 엄마가 대게를 먹고 싶다는 걸 알고 대게 식당을 알아봤다. 호텔 근처에 다행히 대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그곳에 갔고 시가로 대게 값을 매기는 곳이어서 생각보다 너무도 비쌌다. 동생과 눈짓으로 반반씩 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딸들 너무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본인이 대게 값을 지불하겠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그냥 받기로 했다. 비쌌던 만큼 대게는 엄청난 맛이었고 소식좌인 엄마도 많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너무도 기뻤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에디슨 박물관을 방문했고 거기에 전시되어 있던 오래된 가전과 옛날 물건들을 보며 엄마는 옛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냈다. 그리고 너무도 즐거워하셨다.
한참을 둘러보고 차를 마시러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갔고 엄마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가장 가까이 사는 이모랑도 요즘 사이가 서로 소원 해져 있었고 엄마의 절친이었던 아빠가 같이 안 계시니 이런저런 얘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빠랑 대화할 때 보면 엄마가 대충 말해도 아빠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서로 말을 계속 이어 갔었는데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니 답답한 것도 없지 않으셨으리라 생각된다. 두 분이 대화할 때 나는 못 알아듣는 적도 많았었다.
엄마가 말하는 동안 아빠를 생각했다.
순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참아냈다. 엄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눈물이 나려 했다.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하고 자리를 피했다.
카페에서 나와 해변가를 걷고 엄마와 동생 우리 셋은 사진을 찍었다. 동생과 엄마, 엄마와 나 그리고 우리 셋이... 셀카를 찍으며 서로 웃느라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었다. 찍힌 사진들 확인해 보니 엄마는 몇 년 사이 너무도 늙어있었고 허전한 아빠의 자리는 어떤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사진을 찍고 호텔로 돌아왔다. 체력이 약한 엄마를 위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호텔 체크인을 하고 저녁 먹기 전까지 좀 쉬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호텔 안에 있는 옛날 경양식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옛날 경양식 집에서 돈가스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엄마와 나 동생은 한방에서 오랜만에 같이 잤다.
이튿날 일정은 아침에 순두부를 먹고 오죽헌을 들렀다가 장 칼국수 먹는 일정을 짰다. 다행히도 음식에 까다로운 엄마가 이번여행에서는 모든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오죽헌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자세히 관찰하며 하나하나 보는 엄마가 새삼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내가 또 언제 여길 올까?' 이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화를 냈다.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기차에서 돌아오는 길에 같이 여행 와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엄마는 말했다. 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하며 나는 날이 따뜻해지면 엄마가 가고 싶은 곳 생각 해 놨다가 말하라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너무 좋아하셨다.
또 한 번 죄송했다. 바쁘다는 핑계와 내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엄마의 허전한 외로움을 외면했던 건 아닌지…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엄마였을 텐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갈까? 셋이 기차 타고 가는 첫 여행 잘했으니 다음엔 어디로 가는 기차를 예매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