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스스로 진상인 줄 모릅니다
예전엔 약을 부탁할 때도 “죄송한데요…” 하고 조심스레 부탁하셨습니다.
요즘은 그냥 약봉지를 보냅니다.
간단한 약부터 냉장 보관해야 하는 항생제, 복용 시간이 제각각인 약까지 다양합니다.
감기철엔 반 아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약을 먹습니다.
어떤 아이는 밥 먹고 바로, 어떤 아이는 공복에, 또 어떤 아이는 딱 11시에 먹여야 합니다.
그걸 모두 챙기는 건 결국 선생님 몫이고요. 혹시라도 하나라도 빠뜨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시계를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아이와 수업을 하면서도 한쪽 눈은 늘 시계에 가 있습니다.
놀다가 다쳤다고 항의 전화가 온 날이 있었습니다.
“감당이 안 되면 정원 수를 줄이셔야죠.”
순간 멍해졌습니다. 노는 공간에서, 교실에서, 이동 중에
아이들 간의 크고 작은 사고는 언제든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책임이 항상 교사에게 돌아옵니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도, 등 돌린 사이에 벌어진 일도,
모두 선생님의 관리 책임으로 남습니다.
물론 책임져야 할 부분은 있지만, 때론 이 모든 게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야외활동이 있는 날 아침이면
“오늘 자외선이 강하다니 선크림 꼭 수시로 덧발라주세요~”
하는 메시지를 종종 받습니다. 물론 저도 아이들 피부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아이들 줄 세우고, 물병 챙기고, 화장실 가는 아이들 살피고,
모래 먹는 아이 막고, 싸우는 아이 말리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수시로 선크림을 덧바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행히도 영유는 이제 필드 트립을 나가지 못하게 되어 안 가게 되었습니다.
키즈노트가 생기고 나서 학부모님과의 소통은 빨라졌습니다.
대신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은 늦어졌습니다.
밤 10시에 오는 메시지,
“선생님, 통화 가능하실까요?”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고,
이제야 겨우 숨 좀 돌리는 그 시간에 오는 연락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물론 긴급한 일이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지금 당장이어야 하는지는 조금만 더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말은 종종 이렇습니다.
“집에서는 안 그래요.”
“혹시 다른 아이가 먼저 그런 건 아닐까요?”
물론 아이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행동합니다.
집에서와 기관에서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때리고, 밀고, 욕을 했을 때 그 모든 상황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로 넘겨버리면
정작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가르침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필요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어렵거나 낯설면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쉽게 꺼냅니다.
도전보다는 회피, 시도보다는 포기.
그게 너무 익숙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저희는 더 천천히,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님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지 말아 달라”라고 하십니다.
물론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존중하는 것과 무조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건 다릅니다.
세상엔 하고 싶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영유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쟁이 많습니다.
어떤 반에서 먼저 생일파티를 외부에서 진행하면 그다음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벤트가 점점 커지고, 그 기준이 또 다른 부담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아이들도 생기고, 선생님은 그 사이에서 갈등을 조율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년 말쯤엔 이런 전화가 오죠. “내년엔 ○○이랑 같은 반 안 되게 해 주세요.”
어떤 반은 조용히, 서로를 배려하며 흘러가고 어떤 반은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아이들보다 어른들입니다.
예전엔 선생님과 학부모가 같은 편이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고생을 알고, 아이를 중심에 두고 함께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서로를 경계하고, 작은 실수도 바로 지적을 받습니다.
물론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배우려 애씁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관과 가정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서로를 믿고, 응원할 수 있다면 아이들도 더 따뜻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