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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로 걷기 Jan 24. 2024

서산 전국대회 첫 출전

시합보다 어려웠던 컨디션 조절

21년 코로나로 인해 전국 대회가 자주 열리지 않는 가운데 파트너를 하기로 한 클럽후배가 어렵게 11,13에 개최되는 서산시장 배 대회에 어렵게 접수를 했다고 연락이 왔다. '전국대회 우승 또는 20번 참여'를 버킷리스트에 포함한 이후 처음 출전이고 몇 년 전에 경험 삼아 지인과 참가를 해 본 이후 오랜만에 출전하는 전국 대회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파트너와 함께 연습을 하며 대회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시합 준비를 열심히 하는데 갑자기 복병이 나타났다. 대회를 9일 앞두고 인사발령이 났는데 직장에서 가장 바쁜 부서로 소문난 부서인 ㅇㅇㅇ법 운용 책임자자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전날 7개 회사의 법 위반 사건을 심의하는 위원회가 개최 예정되어 있고 회사들을 상대로 다툼을 해야 하는 심사관역할을 해야 했다. 


퇴근길에 알게 된 갑작스러운 인사에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음날부터 위원회 개최 전일까지 매일 밤늦게까지 심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위원회가 개최 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담당 사무관 등의 든든한 백업이 있었지만 심사관으로서 혼자서 김&장등 7개 회사의 법률대리인인 14명의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들을 상대하며 치열하게 법리 및 주요 쟁점에 대한 공방을 벌여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 상태로 서로의 의견 등에 대한 다툼을 벌여야 했는데 일부 사안에 대해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 등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위원회 심의가 끝나자 눈은 뻘겋게 충혈되고 입에서는 쇳내가 나는 등 몸은 거의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며칠 동안 준비를 위한 강행군 그리고 위원회에서의 혈투가 끝나고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널 부러져서야 다음날 시합 생각이 났다. 파트너에게 미리 상황 등을 이야기하고 참가 취소를 하거나 파트너를 바꾸라고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 미처 그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시합에서 도저히 게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제 와서 못한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위원회에서 변호사들과 공방을 벌였던 일들과 하지 못했던 얘기 등이 계속 떠올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새벽녘에 눈도 안 떠지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픽업을 하러 온 파트너의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 올라서 시합을 위해 준비하며 기다렸을 파트너에게는 그저 며칠 동안 업무로 바빠서 연습을 못해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산으로 가는 동안 파트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깜빡 졸다가 얼마 간을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시합 장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단잠 덕인지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진 듯했다. 


시합이 시작되어 예선전과 본선 1회전 경기까지는 역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공도 정확히 맞지 않고 뛰는 것도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려 버티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집중했고 파트너가 맹활약을 해준 덕에 시합 전 참가 목표성적이었던 32강에 안착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32강에서 파트너가 장단점을 잘 아는 상대를 만나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를 하였다. 그러나 16강 경기에서 위기가 왔다. 무리한 일정으로 체력이 바닥났을 뿐 아니라 상대는 출전 팀 중 가장 강력한 팀이었는데 특히 백 쪽에 있던 왼손잡이 선수가 힘 있고 정교한 샷을 치는 데다가 서브도 까다로웠다. 


코트 체인지를 할 때 가방에 비상식량으로 두었던 초콜릿과 비타민 음료를 먹고 겨우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게임 중 파트너와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타이밍을 빼앗고 변칙적인 플레이 등 전략적 게임 운영을 한끝에 어렵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8강전을 맞이했다. 사실 동호인 전국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가 8강인데 8강에서 이기면 최소한 공동 3위로 입상자라는 타이틀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파트너가 그동안 많은 시합을 다녔지만 번번이 8강에서 통과를 못해 늘 아쉬웠었다고 하곤 했던 그 8강 경기였다.


8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파트너가 초반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내가 천천히 하자고 몇 차례 파트너를 다독였다. 그런데 이번엔 마침 상대방이 입상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무리한 샷을 난발하며 여러 차례 실수를 해주어서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고 드디어 4강에 진출을 했다. 


8강 경기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며 때마침 경기참가 후 응원을 해 주었던 클럽의 다른 후배가 다가와서 입상 축하 인사를 건네자 파트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 오랫동안 기다리던 입상을 기대도 안 했던 경기에서 갑자기 하게 되어 감격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쁨도 잠시 준결승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팀은 힘도 기술도 좋은 젊은 선수들이었는데 입상도 하고 마음을 비우니 갑자기 몸이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파트너도 한결 가벼운 몸놀림으로 경기에 임해 6:3으로 승리하고 대망의 결승에 진출했다.(주최 측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을 포스트함, 박기흥이 필자)


https://youtu.be/DCYeV0drD0U?si=_VkoBaOJwaG5ALEr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진행요원들을 포함해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관람을 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경기는 팽팽하게 전개되었는데 스코어 4:4 내 서브권을 가진 유리한 상황에서 잠시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해 연속해서 실점을 하고 결국 4:6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렇게 결승 경기는 졌지만 아쉬움은 1도 없고 오히려 아직 우승을 할 실력은 아니기에 잘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예상치도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거두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비로소 파트너에게 내가 며칠 동안 겪었던 직장에서의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파트너가 크게 놀라워하며 포기하지 않고 참가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컨디션 난조의 상황에서 준우승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파트너가 역할을 잘해 준 덕분이고 그다음은 대진운 등이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라 마음 비우고 힘을 빼고 게임에 임한 것이 오히려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고 그동안 꾸준히 해 왔던 근력운동과 지구력 운동이 얼마간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니스 입문 후 가장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어떻게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아무튼 그날 클럽 단톡방에 많은 축하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처음으로 클럽 이름을 걸고 참가한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준우승을 하며 클럽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등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후 클럽에서 운동을 할 때 후배들의 눈치를 좀 덜 보고 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PS 위원회 심의는 원안에 가깝게 결정되어 7개 회사에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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