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회 우승'을 버킷리스트에..
내가 제일 존경하는 테니스인은 고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 마니아셨고 소강배 테니스 대회 창설 등 테니스 발전에 기여하셨을 뿐 아니라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미수(88세)의 나이에도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테니스를 즐기셨다 한다.
나도 그분을 롤모델로 삼아 평소 체력관리를 열심히 해 부상 없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테니스를 즐기는 걸 원칙과 목표로 삼고 지내왔다. 그렇지만 더 높이 올라야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10년 넘게 레슨을 받았고 모대학의 테니스아카데미도 수강하고 각종 테니스 서적 등을 대부분 구입해 이론공부를 하는 등 실력향상을 위해 늘 노력은 해왔다.
아무튼 재야의 고수는 못돼도 동네의 숨은 실력자라는 평가정도면 만족하다고 여겼기에 구력이 오래 쌓여가는 동안에 전국대회 참가 등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 등에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취미인 테니스를 하면서까지 과도한 경쟁을 하는 건 피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취미로써 동네에서 아니면 직장 등에서 친선 테니스를 치며 즐기는 쪽을 선호했었던 내가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일이 생겼다. 몇 년 전 직장 때문에 세종으로 이사를 한 후 새롭게 가입하여 운동을 할 지역클럽을 찾다가 역시나 냉정하고 배타적인 테니스계의 현실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세종에서 테니스를 좀 잘 친다는 동호인들이 모여서 운동하고 있는 클럽에 노크를 해 보았으나 나이도 많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은 나의 가입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클럽도 찾아보았으나 딱히 마음에 드는 클럽을 찾지 못해 결국 그 클럽에 가입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실력과 인성 등을 지켜보는 한 달 동안의 검증기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회원들의 관찰대상으로 보낸 한 달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전국 대회 등에 도전을 해 입상 경력이라도 있으면 환영받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오랜 구력과 실력향상을 위한 노력으로 나름 실력이 평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입회를 위한 구차한 입장이 되고 보니 자존심도 상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클럽의 모임 일마다 나가 얼굴은 비추었지만 별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중도에 입회를 취소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시간들이 흘렀다.
그리고 한 달 후 가입여부 투표가 진행되었고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나를 회원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쉽지 않게 클럽에 가입한 후에도 나만의 느낌인지는 몰라도 회원들과 함께 섞이는 건 쉽지 않았다. 클럽에서 어울리기에 내가 그리 모자란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회원들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도 클럽에서 실력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별로 유쾌하지 않게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홀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이제라도 실력을 입증해 보이고 내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자는 오기가 발동했고 내 버킷리스트에 ‘테니스 전국대회 우승’을 덜컥 포함시키고 말았다.
사실 전국대회 우승은 젊고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기술과 체력 등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실력에 걸맞은 파트너를 구해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미션이고 큰 의미가 없는 일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이미 나이도 많고 운동신경도 기술도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수많은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준비를 잘하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그날의 본인 및 파트너 컨디션, 파트너십, 8게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 및 대진운 등 많은 이유들로 실패를 한다. 그래서 우승은 실력과 운이 함께 따라야 해 하늘이 정해준다는 테니스인들의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버킷리스트에 전국대회 우승을 포함하고 다음날부터 나름대로 꾸준히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이전부터 해왔던 근력, 지구력 운동 등의 강도와 빈도를 높이고 틈틈이 실력 있는 동호인들의 유튜브 게임 영상을 반복 시청해 게임 전술 등도 학습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개인 훈련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을 아무리 돌아봐도 시합에 함께 할 적절한 파트너를 구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직 그리 편치 않은 관계에 있는 클럽 회원들에게 파트너를 부탁하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던 어느 날 클럽의 월례회를 마치고 맥주 한 잔을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가 여러 번을 망설이다 전국대회에 한번 나가보려 한다고 하면서 회원 중에 누군가 파트너를 해 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클럽 후배 하나가 웃으며 뼈 있는 한마디를 한다. “형님! 시합에 다니시려면 젊었을 때 다니셨어야죠. 젊은 친구들이 파트너 해달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해요.”
맞는 말이었지만 술 한잔 한 김에 용기를 내어 한 말에 바로 들어온 후배의 공격에 현타가 왔다. 다른 건 몰라도 체력은 아직까지 젊은 사람들과 견주어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저 나이 든 사람으로 취급받으니 오히려 얘기를 안 한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고심 끝에 내 버킷리스트를 ‘전국대회 우승’에서 ‘전국대회 우승 또는 20번 참여’로 수정했다. 파트너조차 구하지 못하면서 우승을 해 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그냥 그만두기도 나 자신에게 뻘쭘하니 기회가 될 때 대회에 20번 정도 참여하는 걸로 만족하자. 그리고 20번의 시합 중에 혹시 좋은 성적을 내면 금상첨화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카파도키아 열기구 타보기 같은 나의 다른 버킷리스트들처럼 혼자만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을 버킷리스트에 포함했다는 자체가 모순이었다. 또 후배 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도전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불타올랐던 전국대회 출전의욕이 점차 사그라져가던 어느 날 클럽에서 몇 번 파트너로 게임을 하며 제법 호흡이 맞았던 후배가 고맙게도 함께 시합을 나가 보자고 제안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