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버킷리스트 완수
내 버킷리스트에 '전국대회 우승 또는 20번 참여'를 포함한 지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동호인대회가 많이 늘어나 겨울을 빼고 거의 매주 시합이 있었지만 내가 참가한 건 첫해 1번, 그다음 해 5번, 그리고 작년에 1번이었다. 그동안 시합접수도 어렵고,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만약, 누군가 요청을 해 왔을 때 수락을 안 했으면 그 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고 그다음 시합들은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처음 시합에 나가보는 후배가 요청을 해와 두 차례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성적에 관계없이 참가를 하기도 하고, 나머지 경기들도 파트너와 함께 사전연습을 하는 등 잘 준비해서 나가지 못했기에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던 지난 5월 마지막 주에 클럽 후배가 우천으로 연기된 시합이 일요일에 열리는데 대타로 한번 나가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일요일에는 예배를 봐야 해 시합에 못 나간다고 거절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 며칠 전에 다른 시합에 클럽의 다른 후배가 파트너 요청을 했을 때 일요일에는 시합에 못 간다고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있던 차에 다시 요청을 받으니 거절하는 게 미안하고, 또 이러다 버킷리스트 완수도 힘들듯 해 수요일에 먼저 예배를 보고 시합에 나가기로 했다.
참가요청을 해 온 클럽후배는 실력이 출중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수준이나 당시 엘보 등이 심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경기 참가 전 초급자들 경험시켜 준다고 2차례 함께 시합에 나갔다가 모두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해 스트레스를 받는 등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시합 당일, 6월 첫 주임에도 한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였다. 다행히 실내코트에서 예선 2게임을 치르고 조 1위로 큰 체력소모 없이 본선에 진출을 했다. 64강에는 시합장이 근거지인 예산 팀을, 32강에는 온양 팀을 만나 큰 위기 없이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16강 경기 상대는 천안에서 온 노련한 선수들이었는데 게임 시작부터 위기가 왔다. 전날 2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는 파트너가 잠시 컨디션 난조에 빠져 0:3으로 리드를 당하게 되었다. 위기극복을 위해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게임 중 관찰을 해 보니 상대방 선수들이 백 슬라이스를 많이 치고 있었다. 슬라이스는 발리로 대응하는 게 효과적이기에 내가 전략을 바꿔 평소보다 네트플레이를 더 적극적으로 하며 포치를 하거나 상대에게 부담을 주어 실수를 유도하는 작전을 펼쳤다. 때마침 파트너도 다시 게임에 집중을 해 쉽지 않았지만 승리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입상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경기인 8강에 돌입하였다. 사실 파트너에게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파트너 실력에 비추어 봤을 때 내가 보조를 잘하면 입상까지는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다른 게임보다 부담이 되고 긴장도 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8강 경기 중반에 다시 위기가 왔다. 파트너가 쥐가 난다고 하였다. 난감했지만 파트너에게 자리만 지키라 하고 내가 가능한 범위를 커버플레이 하며 게임을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다행히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했고 샹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나에게 더 많은 공을 보내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준결승은 보령에서 온 요즘 대세인 파워 넘치는 20대 젊은 선수들을 만났다. 파트너는 휴식시간에 쥐가 나는 종아리를 바늘로 찔러 피를 빼는 임시처방을 받았다. 그 덕분인지 조금 절룩거리기는 했지만 게임에 집중해 6:3으로 승리를 하였다.(경기영상은 주최 측에서 촬영하여 유튜브에 포스트, 필자 박기흥)
https://youtu.be/LQmlx679KFk?si=w1uFZLtThsVwgdyD
그리고 대망의 결승, 대전에서 온 체육교사를 한다는 에이스가 포함된 20대 강력한 우승후보인 선수들과 겨루게 되었다. 경기 전 상대편 준결승 경기를 관람했었는데 에이스 선수가 큰 키에 꽂아 넣는 서브 속도가 최소한 시속 170Km는 되는 듯하였다. 파트너가 알고 지내던 후배들이라는데 입상만 여러 차례 해 우승을 절실히 원하는 팀이라 하였다.
그런데 결승경기 전 천만다행으로 파트너가 날이 저물어 가니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파트너가 상대 팀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던 데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실력을 맘껏 발휘하니 결승전은 예상과 달리 큰 위기 없이 게임을 운영할 수 있었다.
준결승까지 파트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관계로 주로 내가 서브도 먼저 하고 노애드도 전담했었으나 결승전에서는 파트너가 중요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렇게 파트너의 멋진 플레이 덕에 결승전 답지 않게 6:0 베이글 스코어로 상대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https://youtu.be/LwxP5Hg7Mp8?si=Q0Khrd-nq0EZrvVV
우승이 확정되고 한동안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사실 2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국대회 우승은 젊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미션이고 큰 의미가 없는 일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운동신경도 부족하고 60세라는 늦은 나이에 체력소모가 많은 8게임을 집중해야 하는 도전은 한계가 있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근력운동, 유산소훈련 등 개인훈련 등을 통해 늘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혹시 부담을 줄까 염려되어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구하지 못하고 간혹 누군가 요청해 오면 참가하곤 했던 몇 번의 대회가 고작이라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도 못한 시기와 시합에서 우승이라는 버킷리스트를 갑작스럽게 완수하고 나니 실감이 안되었다.
잠시 60이 다 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클럽에서 실력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덜컥 버킷리스트에 전국대회 우승을 포함했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무모한 일이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어려운 도전이었기에 그 의미와 감동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덤이다.
시합을 복기해 보면, 객관적으로 내 실력은 부족했지만 상대적으로 운이 많이 따라 주었다. 날씨 때문에 연기된 시합으로 인해 실력 있는 파트너와 시합을 나갈 수 있게 되고, 일요일에 안 나가던 시합을 나가기로 하고, 경기 중 위기상황에서 여러 차례 행운이 따르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국도로 차를 몰았다. 어스름 해져가는 시골길에서 차창들과 선루프를 활짝 열고 가장 좋아하는 팝송인 Eagles의 'Hotel California'를 틀어 놓고 몇 번인가를 반복해서 목청껏 따라 불렀다. 마침 그달말에 34년 오랜 직장생활 은퇴가 예정되어 있었다. 수고한 내게 주는 선물로 가지고 싶었던 SUV 신차를 구입한 후 처음 나서는 장거리 드라이브였다.
그날 그렇게 60세의 유쾌한 도전을 마치고 'Hotel California' 노래 속에 나오는 경쾌한 드럼소리에 맞춰 힘차게 뛰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현실 60세인 나와 마음은 청춘인 또 다른 내가 어우러져 꿈을 꾸듯 구름 위를 날아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