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
지난 2월 제주도 혼합복식 입상과 6월 챌린저부 전국대회에 우승을 하고 난 후 약간의 인지도가 생겨서인지 여기저기서 몇 차례 시합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을 해 왔다. 그렇게 기회가 되어 지난해 마스터부 시합에 한번 참가하고 베테랑부에도 두 번을 참가하게 되었다.
전국대회 우승자들이 겨루는 마스터부에 출전을 해보니 역시 파워가 넘치고 다이내믹하였다. 파트너는 생활체육협회 랭킹 1위 선수였는데 처음 만나 게임을 하니 파트너십이 잘 맞지 않았다. 거기다가 주로 백사이드에서 게임을 하던 내가 포사이드에서 게임을 하려니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실력발휘도 좋은 성적도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력자들이 모인 시합에서 수준 있는 게임을 할 수 있었기에 배울 점이 많았던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초 어느 날 저녁 11시가 다되어 클럽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 중 하나가 다음날 베테랑부 시합에 나가는데 파트너가 사정이 생겨 못 나가니 나보고 대신 좀 나가달라고 요청을 했다. 거절을 하지 못해 다음날 준비도 없이 출전을 했는데 마침 파트너도 부상을 당해 정상적인 게임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처음 출전해 본 베테랑부 시합의 분위기나 수준등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마스터부, 베테랑부 시합을 한 번씩 경험을 해보니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스터부는 출전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젊어서 그런지 파워위주의 플레이들이 주를 이루었고, 베테랑부는 정교하고 노련한 플레이를 펼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두 부서 모두 대부분 전국대회 우승 경험들이 있고 실력과 경험을 모두 갖춘 선수들이라 쉬운 경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한 번씩 새로운 부서의 경기를 경험해 보고 난 얼마 후 다시 한번 베테랑부 시합에 참가요청을 받게 되었다. 파트너는 우승을 몇 차례 한 선수라 참가요건을 맞추기 쉽지 않은데 내가 나이가 많아 점수요건을 맞추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요청을 해 온 것 같았다.
파트너는 클럽단체전에서 상대편으로 만나기도 하고, 가끔 우리 클럽에도 놀러 오던 상위랭킹 선수였다. 사실 경기에 참가하기 전 일반적으로 랭킹이 높고 실력이 있는 파트너와 페어가 되면 게임을 비교적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경기를 함께 해보니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파트너의 실력이 뛰어나면 상대팀은 대부분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공격을 한다. 따라서 보조역할인 나는 어떤 상황에서나 긴장하고 공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하는 등 일반적 게임보다 집중력이 필요하고 에너지 소모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나의 경우 그동안 대부분 백 쪽에 서서 게임을 주로 했었는데 에이스에게 백 쪽을 맡기고 포에서 게임을 하려니 마스터부에서의 게임과 같이 여러 가지 어색한 게 많아 실력의 50~60% 정도 이상이 발휘되지 않는 듯했다.
세 번째로 센터의 볼과 찬스 볼을 내가 치거나 끝낼 수 있음에도 에이스인 파트너에게 자꾸 양보를 하다 보니 정상적인 플레이가 안되었다. 또한 파트너도 에이스로서 본인이 칠 수 있는 볼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한 플레이를 해 실수를 하는 등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참가해 보았던 마스터스부 및 베테랑부 경기 경험을 떠올리며 부족한 점을 짧은 시간 내에 보완하여 게임에 임했고 그 덕분인지 게임을 해 갈수록 파트너와 호흡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았다.
여러 게임 중 32강에서 첫 번째 위기가 있었는데 파트너가 점심을 먹은 게 체해서 얼굴이 하얗게 되어 게임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높은 볼 등으로 랠리의 템포를 떨어뜨리고 무리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다행히 파트너가 코트 체인지 시간에 약을 먹고 상태가 조금 좋아져서 어렵게 위기를 극복하고 16강에 진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6강에서 다시 한번 위기가 왔다. 상대팀은 우승을 해도 손색없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별히 약점도 없어 보였다. 치열하게 접전을 펼치다 4:5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30:40 매치 플레이에 몰리게 되었는데 파트너가 강력한 스핀 서브를 넣어 서브포인트로 듀스를 만들었다. 다음 포인트도 우리 팀은 서브를 시작으로 공격 위주로 상대는 지키려는 수비위주로 플레이를 해 우리 팀이 게임을 가져왔다. 이후 분위기를 잡은 우리 팀이 타이브레이크에서 운 좋게 승리를 했다.
한편, 예선전은 클레이 코트, 16강 까지는 인조잔디 코트, 8강부터는 하드 코트에서 경기를 했는데 코트마다 그 특성이 달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종류의 코트로 바뀔 때마다 코트적응을 위해 20분 이상씩 난타를 쳐야 했다. 평소 주로 인조잔디에서 게임을 많이 해서 인조잔디의 경기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클레이와 하드는 바운드 등이 달라 시합에 나가기 전 코트특성에 맞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드코트에서 진행된 8강 경기는 강팀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팀이었는데 상대 중 백사이드에서 플레이를 하는 에이스선수가 포백 모두 양손으로 치는 특이한 선수였다. 처음에 적응을 못해 타이밍을 못 맞추다가 일단 버티는 작전으로 나가 계속 랠리를 이어가자 상대가 욕심을 내기 시작해 비교적 어렵지 않게 6:1로 승리를 했다
그리고 결승을 향하는 4강 경기는 날이 어두워져 조명을 켜고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파트너가 백 쪽에서 서브 및 스매싱을 할 때 계속 눈으로 빛이 들어온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마침 상대편이 로브를 빈번히 하는 선수들이어서 더욱 쉽지 않았는데 4:4까지 접전을 벌이다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2번째로 출전한 베테랑 대회에서 처음 만나는 파트너와 입상까지 하게 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게 아닌가 싶다.
두 번의 베테랑 경기에서 느낀 점은 참가선수들의 기술적 수준이 높고, 포지션 플레이 등이 뛰어나기 때문에 입상 이상의 성적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집중력과 뛰어난 체력이 필요한 듯했다. 모두 실력이 일정 수준을 넘기에 게임에 집중하지 않는 어설픈 플레이는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다. 또한 본선 3회전 이상 게임이 진행되면 나이들이 있어 순발력과 지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평소 체력훈련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게 파이널까지 살아남는 비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