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같은 열혈 마니아들
지난 6월 클럽에서 가장 연장자인 회원이 경북 문경에서 시합이 있으니 함께 나가자고 했다. 알고 보니 대한 체육회장배 전국 시도대항 대회였는데 얼떨결에 세종시 대표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시합은 각 연령대 별로 진행이 되었는데 60대 이상은 60 세부, 65 세부, 70 세부 개인전으로 진행이 되었다. 1박 2일에 걸친 시합은 첫날은 예선 리그전을 둘째 날은 본선 토너먼트로 진행하였다.
무엇보다 평소 지역 테니스장에서 마주치던 다양한 연령대의 테니스 동호인들이 세종시를 대표해서 함께 대회에 참가하니 연대감도 생기고 얼굴도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부터 구력이 얼마 안 되는 순수 동호인까지 다양하게 각 시도를 대표해서 참가했는데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부분 50대 이전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각 지역에서 고수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로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시니어 선수들임에도 마치 청년처럼 날렵한 움직임과 파워 있는 스트로크 그리고 노련한 경기 운영이 더해지니 오히려 젊은 사람들의 경기들보다 훨씬 보는 재미가 컸다.
거기에 각 시도를 대표해서 경기를 하니 선수들과 응원단의 열기도 뜨거웠다. 한편, 내가 속한 세종시는 B 그룹에 속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60 세부 테니스 마니아들 사이에서 어렵게 살아남아 예선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본선 토너먼트에서 잊지 못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었다.
첫 게임에서 충북 팀을 만났는데 내 파트너가 전에 살던 청주에서 알고 있던 선수들이며 모두 선수 출신이라 했다. 전날 그들의 경기 모습을 잠깐 보았는데 역시 일반 동호인들과는 파워와 기술 차이가 많아 보였다.
거기다 게임 시작 전 우리 팀은 응원단이 거의 없는 상태였고 충북 팀은 응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두 사람이 선출이기에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를 하고 응원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객관적 전력으로 볼 때 우리 팀이 당연히 패하겠지만 열심히 해서 두 세 게임이라도 따보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경기 전 몸을 풀며 공을 받아보니 역시 선출답게 볼에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내 파트너는 젊은 시절 전국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했던 사람이어서 경험도 풍부하고 게임을 할 때 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게임에서는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단단한 각오로 시작한 경기에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리하지 않는 침착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런데 파트너는 평소와 다르게 포칭 등 과감한 공격도 하고 수비도 더욱 끈질기게 하는 등 게임에 집중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팀이 예상외로 탄탄한 플레이를 펼치자 상대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백 쪽에 있는 상대방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고 나와 내 파트너가 그 선수를 집중 공격하여 경기는 6:3이라는 예상외 스코어로 우리가 승리를 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파트너가 왜 충북 팀과의 게임에 그렇게 초 집중을 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았는지 이유를 설명하였다. 파트너가 청주에서 살며 운동을 할 때 같은 지역 클럽에 있었음에도 본인들이 선출이라고 하수 취급을 하며 한 번도 게임을 함께해 주지 않는 등 설움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게임을 해서 이겨보고 싶은 상대들이었는데 가장 의미 있는 시합에서 그 기회가 왔고 그것도 당시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승리를 해서 오래 가지고 있었던 작은 소망을 이루었다고 했다.
경기 전 나에게 미리 얘기를 하면 내가 게임을 하면서 부담스러워할까 봐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얘기를 한다며 미안하고, 한편으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목표를 이루게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전남 팀을 만났다. 한 선수는 선출이고 나머지 한 선수는 경기 운영이 노련한 선수였다. 충북 팀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파트너가 그전 게임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는지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패하고 말았다.
아무튼 그렇게 처음 출전한 시도대항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파트너의 소망을 실현해 주고, 열정적인 시니어들의 테니스 세계를 잠시나마 경험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9월 전북 익산에서 개최되는 대통령 배 시도대항 대회에 협회의 요청으로 세종시 대표로 다시 참가를 하게 되었다. 그때는 문경에서 함께했던 파트너가 부상을 당해 처음 만나는 선수와 파트너를 해서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경기는 60 세부, 65 세부 및 70 세부 3팀이 원 팀이 되어 치르는 단체전 경기였다.
첫날 예선전에서 3경기가 치러졌는데 내가 속한 60 세부는 전승을 하였고 65 세부와 70 세부는 각각 2승 1패와 1승 2패를 하여 조 2위로 가까스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을 하였다. 그리고 본선 첫 게임에서 주최 측인 전북 팀을 만났는데 우승을 위해 자체 선발전까지 치르고 나온 선수들이라 했다.
첫 경기에 앞서 워밍업을 하며 살펴보니 에이스 선수의 실력이 출중해 보였다. 그래도 60 세부 첫 경기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65 세부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에 경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상대 에이스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밀려 순식간에 1:4로 뒤지게 되었다.
다시 전력을 가다듬고 경기에 집중을 해서 겨우 4:4 균형을 맞추었다. 그리고 노애드 상황에서 내가 공격적으로 발리를 한 볼을 상대가 가까스로 로빙으로 넘겼는데 그 불이 바람을 타고 높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내 파트너가 쫓아갔으나 볼이 불규칙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서 정상적으로 스트록을 할 수 없었다. 이후 그 공 하나로 인해 분위기가 급격히 상대로 넘어가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어진 70 세부 경기를 관람하며 가장 인상에 남는 선수를 보았다. 상대편 선수였지만 70 세라는 나이에 무색하게 멀리서 보면 몸매도 40 대이고, 뛰는 것도 40 대 같았고, 기술과 파워도 40 대 같았다. 오죽하면 우리 편 선수가 농담으로 진짜 70세가 맞는지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 정도로 믿기지 않을 플레이를 했다. 나중에 들으니 순수 아마추어 출신이고 지역에서는 아주 유명한 선수라고 했다.
아무튼 그날 최종적으로 동메달을 딴 것으로 경기를 마쳤다. 단체전으로 연령대별로 3팀이 원 팀으로 하는 경기인만큼 개인전보다 연대감이 훨씬 컸고 지역의 시니어 선배들과 좀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된 것 같다. 경기 전후에 시니어 테니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시간이 되면 모임에 함께하자는 초대도 받고 전국 시니어 대회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이상 두 차례의 시합에 세종시 대표로 참가를 하고 나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동기부여도 되었다.
어쩌면 나는 60세가 다 되어 전국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어 성공을 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70세가 넘어도 젊은이처럼 건강하게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보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물론 나처럼 늦은 나이에 시작하지 않고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시합에 나가 전국을 제패하고 숙성된 실력으로 코트를 누비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기 관리 등을 잘하기에 가능한 일이라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지역 선배들이 알려준 전국 시니어 연맹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60 세부부터 85 세부까지 5살 단위로 대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고 많은 시니어들이 시합에 참가하여 즐기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무튼 청년 같은 열혈 시니어 테니스 마니아들의 세계를 직·간접 체험해 보고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도 그들처럼 오래 건강하게 테니스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이를 위해 체력관리 등을 더욱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