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일상
미식가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듯이 애주가인 내게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지만 술도 함께 마시는 사람이나 분위기에 따라 맛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때마다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각자의 일상이 있기에 쉽지 않다. 와이프라도 대작을 해주면 좋으련만 술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체질이라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
그렇다면 요즘 흔한 혼밥처럼 술도 혼술을 하면 되지 않을까? 혼밥은 1인 세대 등이 매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기에 식당이나 집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한, 생존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 행위가 아니기에 굳이 혼자서 까지 할 필요 없이 모임 등에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 때만 하면 되지 않을까?
술을 싫어하거나,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나 같은 애주가의 경우는 생각이 좀 다르다. 혼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각종 모임 및 지인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지면 되겠지만,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을 지향하는 터라 공식적 자리 외에 불편한 술자리는 가능하면 피하다 보니 종종 니드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처음에는 반주로 혼술을 시작했다. 혼자 마시는 술맛은 별로였고 이렇게 알코홀릭이 되는 걸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점 때문에 혼술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첫째, 언제나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술 약속은 최소 며칠, 몇 주 전에 누군가와 미리 약속을 해야 성사된다. 정작 그날에 술을 마시고 싶은 상태인지와 관련이 없고 컨디션이 안 좋아도 자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혼술은 기다릴 필요도 없고, 미리 약속할 필요도 없이 그저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에 하면 된다.
둘째,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을 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마실 때 상대들의 기분을 살피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페이스 조절을 해야 되는 등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하지만 혼술은 그저 나에게만 충실하면 된다.
때때로 듣고 싶은 음악을 배경으로, 와인, 맥주 등 그날 마시고 싶은 주종과 안주를 마련해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기분 좋을 만큼 마시면 된다.
셋째, 가성비가 좋다.
식당이나 주점 등에서 먹는 술값은 대체적으로 비싸다. 더구나 몇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다 보면 분위기가 업되고 서로 술을 권하다 보면 평소의 주량보다 많이 마시게 되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그러나 혼술은 일반 술뿐 아니라 식당이나 주점 등에 구비되지 않은 여러 주종의 퀄리티 높은 술을 구입해서 마셔도 훨씬 경제적이다.
이상의 장점들로 인해 혼술과 친근해졌지만 쉽게 마실 수 있는 혼술이라도 갈증이 날 때 냉장고 안에 맥주가 보인다고, 저녁식사에 술을 부르는 안주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하지는 않는다.
십여 년 전부터 좋아하는 술을 오래 즐기기 위해 최대 주 2회로 음주 횟수와 1회당 주량을 제한해 놓은 이유도 있지만, 참고 기다리다 마시는 술이 그 효용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술에 진심이다. 누군가와 술 약속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컨디션 조절을 한다. 컨디션이 좋아야 술도 기분 좋게 마시고 상대의 말에 귀도 기울이는 등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분위기를 다운시키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스스로 즐길 수 없다면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리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혼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혼술을 하는 날은 보통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고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든다. 그래야 나에게 집중하며 술이 가지는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술을 마시면 평소와 다르게 나에게 관대해진다. 직업의 특성상 오랫동안 엄격한 도덕관과 절제를 요구받았기에 술을 통해 잠시나마 정신적 일탈과 자유를 원하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특히, 혼술은 유연해진 사고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을 할 수 있게 해 주어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가다듬어 주고, 자신감을 주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
혼술일지라도 예정한 날은 아침부터 소풍을 기다리듯 설렘이 있다. 그 과정 자체도 술이 주는 효용이 아닐까 싶다. 만약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면 설렐 일이 무엇이겠는가?
오늘 며칠을 기다리다 혼술을 했다. 와인 몇 잔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 빛깔처럼 세상을 아름다워지게 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몇 가지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술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며 다음에 다시 마법의 잔을 들 수 있는 날을 설레며 기다릴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