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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없이사는사람 May 15. 2024

인생 최대의 위기를 해결한 그것

각 가정 필수품이 왜 필수품인가 알 수 있다

나무 혹은 고무 재질 막대 끝에 두툼하고 까만 반구 형태의 고무가 달려 있는 것. 흔히 뚫어뻥 (또는 뚜러뻥)이라고 불리는 것. 

※ 굳이 화장실 아이템을 보고 싶지 않은 분들을 배려하여 이미지는 첨부하지 않겠다.





인생 최대의 위기는 그렇게 조용히 다가왔다. 


변기가 막힌 어느 날 밤 10시가 다 돼 가는 시점에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 왔다. 평소에는 거의 변기 막히는 일이 없어서 집에 흔한 뚫어뻥 하나 없었는데, 근래 들어서 몇 번 막힌 적이 있다. 

다행히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뚫리던가, 옷걸이로 구멍을 몇 번 쑤시는 정도로 해결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이 정도로는 뚫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매우 우려하던 "미처 내려가지 못한 건더기가 변기 밖으로 넘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맑은 물만 찰랑찰랑 고여있어 그냥 두면 내려가겠거니 방치를 해버렸는데, 문제는 자연히 뚫리기 전에 내 배가 아파 온 것이다.


곧 12시가 될지도 모르는 시점에 어디 가서 화장실을 빌리기도 그렇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바로 그 뚫어뻥을 구하기 위해 마트 투어에 나섰다.

그러나 집 근처의 마트와 편의점에는 그건 없다는 대답뿐... 대기업에서 하는 좀 크다는 마트조차 '지금은 재고가 없네요'라는 말 뿐이었다. 결국 마트 3군데와 편의점 1군데, 다이소 1군데를 거쳐서 꿈도 희망도 없는 채로 배회하던 중 겨우겨우 다다른 바로 옆 블록 조그마한 구멍가게 슈퍼에서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나는 '대기업 꺼져! 00, 0000 다 필요 없어!! 동네 슈퍼 망하지 마!!!'를 외치고 있었다.


계산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시크하게 "이런 거 하나는 집에 필수로 있어야 돼요."라고 하시며 비수를 꽂으시고... 엑스칼리버를 얻은 것 마냥 뿌듯해져서 집으로 귀환했다. 아주 잠깐 '이것으로도 안된다면 어쩌지?'라는 우려에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며 우울해졌지만, 나는 믿었다, 이것을.


그리고 이 4500원짜리 물건은 자신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였다. 찬 바람맞으며 미친 듯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다행히 아픈 배는 수그러 들었으나... 급박한 30분이었다. 이런 가정 필수 아이템은 하나쯤 구비해 놓아야 한다는 교훈을 뒤늦게 깨달으며, 우리 집 변기는 막힐 리가 없어,라고 자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 이 글은 몇 년 전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이후 뚫어뻥은 항상 화장실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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