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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없이사는사람 May 29. 2024

하늘이 하늘색인 하루

언젠가 하늘색이 더 이상 하늘색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 때부터 느꼈다. 하늘색이 남다르구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SNS에 직접 찍은 오늘 하늘 사진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하늘 구경을 나섰다. 햇빛이 몹시 따사로워서 모자를 쓰고 나오기를 잘했다. 등과 겨드랑이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초여름이다. 


나무와 풀은 울창할 정도로 자라서 불과 한 달 전 사진과는 모양이 다르다. 어느새 사람의 키보다 크게 자란 수풀을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태양빛으로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니. 이 세상 모든 생명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식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의 기대대로 하늘은 맑고 파랬다. 군데군데 회색 구름이 껴 있긴 했지만 비의 기운은 전혀 없고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하다. 둥글게 뭉쳐있는 하얀 구름이 파란 배경 위로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로 들어섰다.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효과 좋은 미세먼지 측정기인 롯데 타워가 아주 깨끗하게 보인다. 바로 얼마 전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타워가 신기해서 사진으로 찍어놓았었는데 그때보다 비교도 없을 정도로 선명하고 진하게 보인다. 얼마만의 깨끗한 하늘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며칠 내내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씨와 미세먼지로 인해 우중충한 하늘만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는 하늘이 회색이면 우울하다. 게다가 그런 날씨가 몇 달간 지속이 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회색 하늘만 봐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쨍한 파란색 하늘을 올려다본 경험이 있으면 그 우울함은 배가 될 것이다. 그때의 하늘이 그랬다. 세상 근심 없는 긍정적인 인간도 며칠 동안이나 잿빛 하늘과 뿌연 공기 아래 있다면 무력과 초조를 느낄 것이다. 


반대로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빛 아래 눈을 감고 앉아 까만 시야 안에서 밝게 일렁이는 주황색 빛무리를 음미해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고작 하늘의 상태로 인해 기분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이 나약한 인간이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아마도 이래서 스몰토크의 주제로 가장 흔하고 쉬운 것이 '날씨'인 것인가. 






다행히 오늘 월요일 아침의 하늘은 투명한 파랑에 가까운 맑은 하늘색이다. 하늘이 하늘색이라고 하니 너무 당연한 문장 같지만 항상 이 당연한 문장을 쓸 수 있지는 않다. 얼마나 슬픈 시대인가. 앞으로 다가올 맑지 않은 날엔 아마 오늘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겠지. 


올여름은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사실 앞으로의 기상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나는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걱정해 봤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다가올 불행을 시뮬레이션해보며 우울해하는 것은 관두기로 한다. 


자, 이제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날씨가 좋을 땐 즐겨야 한다는 것. 단지 보기 좋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기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용기를 주니까.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해도 좋고 아름다운 하늘 사진을 찍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해도 좋다. 좋은 날씨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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