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국

영국의 크리스마스

2024년 12월 24일

by 노태헌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부활절(이스터)과 더불어 서양 최대의 명절이다.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곳은 독립신문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의해 크리스마스와 기독교가 탄압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부터 기독 탄생일이라는 명칭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날짜는 지역에 상관없이 12월 25일이다. 엄밀히는 12월 24일 일몰부터 25일 자정까지로 서방에서는 그레고리력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낸다. 최근 특이점은 우크라이나는 과거 정교회 문화의 영향으로 동방의 율리우스력 12월 25일(=그레고리력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냈으나, 2023년부터는 러시아와의 전쟁 영향으로 서방과 마찬가지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변경하였다.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동심을 불러 일으키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산타클로스는 4세기에 활동했던 대주교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곤 했는데, 특히 어린이들을 좋아해 매년 12월 6일이면 선물을 나눠주곤 했다. 그의 생전에 이런 선행이 유래가 되어 산타클로스가 생겨났고, 가톨릭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여겨왔다. 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는 상상 속 인믈로 발전해 지금의 산타 클로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빨간 옷과 흰 수염의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상업 광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다. 잠시 생각해 보면 빨간 색은 유독 상품에 많은데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키캣, 몰티저(영국 초콜릿), 프링글스(오리지널)등이 있다. 크리스마스의 색은 하얗고 빨갛다. 이 색들이 겨울에, 상품에, 크리스마스 용품에 쓰이면 더 친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영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미란 종교적인 것을 넘어 한국인들이 설날과 추석을 지내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조금 더 가족적인 명절이라 한다면 영국인들이 최고로 여기는 따뜻한 가족 행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준비가 12월 24일 전야제와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절정을 이루고 26일에는 여운을 남기는 모습을 본다. 12월 25일에는 우버(택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으며, 마트도 상점도 식당도 대부분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기에 12월 크리스마스 전 주부터 백화점이나 마트와 주요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가족과 친지들과 모임을 갖거나 선물을 사고 쇼핑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레스토랑은 크리스마스 디너 파티라고 해서 특별한 요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가게들도 연말 세일이 절정에 이른다.


영국 런던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쳐도 사람들의 표정 속에 온기와 따뜻함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발산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친절해지고 마음이 나긋나긋해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팁을 주는 문화가 없는데, 그런데도 크리스마스에는 블랙캡(영국의 전통적인 검은 택시)을 타면 다들 잔돈은 가지라고 하거나 인심으로 팁을 더 주기도 한다. 마트에서는 기부 코너가 세워지고 그 코너에 사람들이 이웃을 돕기위해 기증한 식료품이 산더미 같이 쌓인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도 이 때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부터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 등 성의를 담은 물건과 돈을 건네 주기도 한다.


영국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시즌 전후 학교에서 교회를 간다.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인데 1970년대부터 '크리스팅글'이라 해서 오렌지 초를 가지고 아이들 주도로 성탄절을 기념하고 자선 기금을 모으는 행사를 한다. 매해 11월부터 성탄절까지 영국의 어린아이들은 칵테일 스틱에 사탕을 꽂고 그것을 오렌지에 꽂는다. 그 위에 초를 놓고 소원을 빌고, 단체로 노래한다. 찬송가를 부르는데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단체 행사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이 참석하지만 예외는 가끔 있다.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율법을 따르는 아이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학교에 남기도 한다. 이것이 영국 런던에서 볼 수 있는 크리스팅글 행사다.


크리스팅글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1747년에 존 배터빌이란 종교인이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도록 시도하였다. 그때 당시에는 빨간 리본이 달린 초를 가지고 행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와 함께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젤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크리스팅글이 활성화 된 건 20세기 후반이다. 1968년 존 펜섬이 어린이 단체 자선기금 모금 행사로 '나의 크리스팅글'이라는 글을 교회 신문에 기고한것을 시작으로 영국 곳곳의 학교에서 어린이들은 집에서 어른들로부터 돈을 받거나 평소에 모은 용돈을 기부하고, 초를 꽂은 오렌지를 교회에 가져와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1972년 교회 신문은 이 행사를 주요 기사로 타전하며 그 폭발적 인기를 영국 전역에 알렸다. 이제는 자선을 위한 것보다는 영국 크리스마스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 아이들이 연말을 따뜻하게 보내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영국의 가정에도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고유의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 명절에 윷놀이, 제기차기, 쥐불놀이, 강강술래를 즐긴다면 영국에서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거나 보드 게임을 한다. 맥주나 와인과 같은 음료는 빠질 수 없고(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위 국가답게)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은 문 연 가게가 없기 때문에 가정마다 식료품 사재기를 해둔다. '몰드 와인'이라 불리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진과 토닉워터를 섞어 마신다. 럼 베이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가족 친지들과 왁자지껄하게 파티를 한다. 그러면서 25일이 되는 밤 12시에 서로 준비해 온 선물을 교환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모아둔 선물을 열어보고 손으로 쓰고 만들기도 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는다. 그러고 테이블에 앉아 크리스마스 아침을 보낸다. 대표적인 영국인들의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민스파이,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칠면조 구이, 크랜베리 쿠키와 잼,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와 같은 홍차와 커피 같은 것을 먹고 마신다. 그리고 후식으로 영국식 푸딩을 먹는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각종 크리스마스용 디저트들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여러 마트마다 보기 좋게 진열되어 영국인들이 각자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영국은 찰스 디킨스의 나라답게 <크리스마스 캐럴> 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하기도 한다. 거리에서 일인극을 펼치는 모습도 종종 본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핑거 퍼펫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찰스 디킨스 소설이 원작으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이야기다. 국내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1843년 12월 19일에 출판된 이 소설은 초판 6천 부가 단 하루 만에 매진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와 명성을 얻은 찰스 디킨스는 또 다시 이 작품으로 이름을 떨치면서 영국민이 자랑스러워 하는 위대한 작가로 인정 받았다. 원래 다섯 권으로 구상된 '크리스마스 책' 중 한 편이었다.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단 몇 주 만에 완성한 첫번째 작품이다. 이후 디킨스는 잡지의 크리스마스 부록으로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중단편을 발표했지만 어떤 작품도 이 작품에 필적하진 못했다. 어쩌면 단순할 수 있는 권선징악적 구조로 당시 평론계는 구태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나 명쾌하게 작가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고, 알기 쉽게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성탄절 의미와 융화되어 대중의 흥미를 지금까지도 유지하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다.


인류가 지키고 가꿔 온, 추운 계절을 따뜻하게 보내는 지혜라고도 생각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많은 사람이 서로의 온기로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날씨가 추워지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특히 최근 반세기 동안 지구가 여름에는 더 더워지고 겨울에는 더 추워지고 있다. 한국과 영국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추운 시절에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 24시간 비상대기를 하는 구급대원과 의료진들, 24시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타지나 타향에서 도심으로 상경해 홀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몸을 싸매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연말이다. 한해가 1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욕심 부리고 무리 했던 지난 한 해도 생각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조금 절실히. 조금 더 가까이.

tempImageCtsj7y.hei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런던의 여우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