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0일
눈부신 나를 발견하는 특별한 시간
정여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었다. 한두권정도는 빠졌을 수는 있다. 아무튼 이는 내가 일종의 그녀의 팬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인데 나는 팬보다는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고 때론 의식의 교집합처럼 그녀의 따뜻한 감성과 시선에 희망의 눈길을 보낸다.
한국 작가중에 그녀 만큼 다작하고 많은 분야의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 것으로 본다. 그녀가 인용하는 명저의 내용이나 심리학, 철학, 인문학의 내용, 그리고 소설속 주인공에 대한 내면 파악은 심도 깊고 본질을 통과한다. 그렇지만 읽는 이를 고려하여 부드럽고 알기쉽게, 늘 친절한 글쓰기를 하기 때문에 그녀의 철학적 담론은 독자에게 늘 이해 가능하게 다가온다. 때론 너무 자상해서 이런 착한 글쓰기가 힘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글쓰기에는 음과 양이 있고 음의 세계에서의 어둠은 작가가 돌파해야 할 한 세계로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문득 글 쓰는 작가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어둠의 세계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건 작가로서의 숙명같은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녀의 돌파 방법은 여행일까? 사람일까? 영화나 소설 같은 또 다른 이야기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적도 있다.
2006년부터 저작 활동을 해온 저자는 약 서른권 분량의 책을 낸 부지런한 작가다. 2018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권씩 <월간 정여울>을 출간하는 프로젝트도 했으며 몇 개의 번역과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그가 그립다> 같은 책의 공저 활동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다.
나는 가끔 그녀가 번역한 <아무도 모르는이야기>(화보와 일러스트로 된 천사의 이야기며 정여울 작가의 책을 꽤나 본 사람에게도 그녀가 이책을 번역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를 펼쳐 본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떠오르게 하는 그림책인데 우울과 슬픔이 내 주위를 맴돌때, 어둡게 채색된 배경에 암암리 활동하는 소녀 천사의 이야기를 펼치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때론 힘들고 상처 받았던 검은 기운이 슬며시 투명한 세계로 스며드는 정화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작년 11월에 출간된 정여울 작가의 <데미안 프로젝트>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책이다. 인문, 심리, 예술, 선과악, 종교, 사랑, 운명, 우정 등에 대한 다채롭고 심도있는 이야기를 <데미안>의 주인공들과 시대적 배경, 철학과 심리학 등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는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 카를 융의 자취를 책속에 늘 담기도 해왔고 그들의 삶과 저작 그리고 그림에 감명 받아 왔다고 늘 이야기 해왔다. 이번 책에서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나 언급이 빠지지 않는데 특히 이번은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제목 옆에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헤르만 헤세의 수작 <데미안>을 주 무대로 삼고 담론을 펼처 나간다.
저자는 '셀프'와 '에고', '내면아이'와 '그림자' 개념 등을 통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숨겨진 감정을 데미안 속 이야기와 함께 마주하도록 한다. 살아가는 개개인은 책과 영화, 드라마 속 이야기나 예술 작품에서 자신을 보기도 하는데, 좀더 적극적인 자아성찰과 관련한 보기와 읽기, 쓰기의 매력은 이런 자신을 재통찰하고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 자신에게 따뜻해질 수 있는 기회 뿐만 아니라 때론 타인에 대한 연민의 시선,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쓰다듬을 수 있는 치유의 시간까지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자신과 타인에게 따듯해 질 수 있는 따뜻함의 감각이 정여울 작가의 글에는 늘 있다.
작가는 <데미안> 속 인물들의 상징과 그들이 대표하는 심리적 의미를 상세히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적 갈등과 자아의 성장은 우리 모두가 겪는 자아 탐색의 과정과 닮아 있기도 하며 이는 각자만의 영웅의 여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태동이나 가능성의 알이 누구에게나 품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구축되어 있는 '밝은 세계'와 그 이면에도 늘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때 데미안이라는 신비로운 청년이 나타나 기존의 세계관을 넘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까지의 여정에 이른다. 하지만 문은 스스로 열어야 할 것이다.
헤세는 "너의 길을 가라"라고 데미안을 통해 말한다면 정여울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사회적 규범과 기대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진짜 '나'를 찾기위해 가야하는 운명론적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데미안 프로젝트>는 바로 '질문하기'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하나의 프로젝트이자 각자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사람 안에 숨겨진 빛, 누구나에게나 발현할 수 있는 신성이 칼 융은 있다고 말했다.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한 감정과 욕망, 억압된 기억들이 쌓여 있으며, 이를 '그림자(Shadow)'라 불렀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경험하는 혼란과 방황은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된다. 책은 묻는다. "당신이 억눌러 온 세계는 무엇인가요", "당신은 그것을 생을 통해 어떻게 조화시키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요?"
소설 <데미안> 속 문장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혼자라도 결코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