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과 그림을 그린 사나이. 그의 색과 형상에 관하여.
때로 나는 나의 색을 본다. 그리고 오직 그 색만이 정확한 색이다. 조금 전 나는 눈을 맞으며 산허리를 걷다가 날아가는 까마귀 한 마리를 보았다. 바로 머리 위에, 마치 나를 공격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렇게 가깝게 까마귀의 발톱이 바람 속에서 눈 앞을 지나갔다. 몸통으로 끌어들여 도사린 발톱의 노란색을 나는 보았다. 햇빛을 받아서 금빛과 잿빛으로 어우러져 흔들리는 두날개도 보았고 하늘의 푸른색도 보았다. -그러자 넓은 대기의 표면이 열리고 그 위로 세 개의 색선이 그어지면서 한순간 내 눈 앞에는 삼색의 깃발 하나가 그림으로 잡혔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깃발이었다. 그저 세 개의 색으로만 구성된 무의미의 형상이었다. 그러자 늘 의미의 무게로만 내게 존재하던 실제의 깃발들도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관조의 대상으로 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 (의미로 충적된) 깃발들을 편안하게 (무의미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나의 상상력 속에 있는 것이었다.
P. 한드케, '세잔의 산을 찾아서'